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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인터뷰] 지창영 시인, 강철의 육체 위에 맺힌 이슬처럼 시대를 견뎌낸 우리의 통증과 희망
  • 정해든 기자
  • 등록 2025-10-15 00:00:01
  • 수정 2025-10-15 01: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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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둠 속에서 전류처럼 흘려보내는 시대의 증언들
  • - 차가움과 따뜻함、 해로움과 이로움이 공존하는 송전탑의 이중적 존재
  • - 고통받는 타자들을 향한 몸짓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연대의 시편들

지창영 시인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앞서 가볍게 질문드립니다. 10월을 어찌 보내고 계신가요? 

 

모처럼 숨을 돌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추석 연휴 덕분이죠. 9월까지 글쓰기, 강의, 번역 외에 몇 가지 행사와 활동에 매달려 온 데다가 9월 27일 출판기념회에도 신경을 써야 했지요. 10월 되니 잠시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휴식을 잠시 누리고 계시는군요. 그러나 늘 치열한 삶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활발한 시민단체 활동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세 단체에 소속돼 있어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인천노사모에서 통일위원장으로 활동합니다. 10월 4일에는 10.4선언 18주년을 맞아 인천노사모에서 성명서도 발표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약속했으나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약속이 성사되지 못한 것을 지적하면서 자주적인 자세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인천자주통일평화연대에서는 공동대표를 맡고 있어요. 이 단체의 원래 이름은 6.15 인천본부였지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합의하고 발표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자는 뜻으로 활동하다가 최근 정세가 바뀌는 바람에 단체 이름을 바꾸게 되었죠. 평화협정운동인천본부 공동상임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여 오고 있습니다. 평화협정을 촉구하다 보니 이를 거부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는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하죠. 특히 주한미군 주둔을 둘러싸고 미국이 과도한 요구를 하는 요즘에는 미군 철수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세 단체의 결은 비록 다르지만 큰 틀에서 그 핵심은 자주와 통일이라고 생각하고 활동합니다.

 

짧은 휴식 뒤 조만간 또다시 동분서주하시겠네요. 시민단체의 역할이 정치권 감시 기능에서 직접 참여 양상으로 바뀐 듯합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지난해 말 일어났던 내란을 진압한 것은 사실상 시민의 힘이었죠. 정치권에만 맡겨 두어서는 일이 안 된다는 것을 현실로 느끼게 됐습니다. 특히, 응원봉을 들고 거리를 메우고 동장군에 맞서 자리를 지킨 신세대들은 과거로 돌아갈 뻔한 역사의 물꼬를 미래로 바꾼 주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당 활동에도 적극적인 시민들이 있어 권리당원으로서 실력을 행사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정치권 내부에서만 눈치 보며 보신하던 정치인들은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됐죠. 시민들이 눈을 뜨고 지켜보면서 그들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변화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은 또 있습니다. 바로 외세의 벽인데요, 우리가 자주를 이루지 못하면 애써 키워 온 민주주의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을뿐더러 다시 허물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미국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봅니다. 한반도 남쪽의 정치판은 해방 이후 미국이 짜 놓은 판인데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내란을 막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의 힘으로 이제는 외세를 극복해야 합니다. 미국의 횡포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하고 불평등한 한미동맹에 맞서 자주적인 입장을 추동해야 합니다. 정치권에서 내지 못하는 소리를 과감히 낼 때 우리의 민주주의도 지킬 수 있고 평화도 보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결국 그렇게 될 것으로 낙관합니다. 

 

시민활동에 대한 의견에 이어 우리 사회에서 시와 시인의 역할을 듣고 싶습니다. 

 

시대적 사명에 부응해야죠. 여러 사명이 있겠습니다만, 제가 주목하는 분야는 자주와 통일입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던 독립투쟁기에는 나라의 독립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부여안고 고뇌하고 작품을 쓴 시인들이 있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화가 시대적 사명으로서 많은 시인이 이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지금은 자주의 목소리,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서 작품을 써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군사적으로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시가 하나의 돌파구를 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자주와 통일을 지향하고 그 목소리와 몸짓을 표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모든 시가 다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요, 그런 역할을 하는 시도 있어야 하고 더 많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1집 '송전탑' 발간 뒤 15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송전탑 이슬'을 발간했습니다. 소감을 듣고 싶네요. 

 

게을렀죠.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하는데 직무유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시의 힘을 믿지 않았던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입니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 시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 생각하며 소홀히 여긴 것이죠. 시가 읽히든 안 읽히든 시인으로서 할 일은 해야 하죠. 이제부터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다음 시집 제목까지 생각해 두었는데요. 「송전탑 신화」입니다. 이렇게 다음 시집 제목을 미리 밝히는 것은 저 자신이 게을러지지 않도록 채찍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말한 것은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시집 『송전탑 이슬』,도서출판b, 12,000원 시집 속에 담긴 큰 주제들을 시인의 목소리로 듣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문명의 양면성인데요,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지만 문명 역시 빛과 그림자가 있지요. 편리함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제가 화두로 삼고 있는 송전탑도 이로움과 해로움이 공존하는 이중적 존재입니다. 그중 문명의 이기에 대한 부정적인 면은 「하얀 밤」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밤새 눈을 부릅뜨고 있'는 '형광등 탓'에 밤다운 밤을 맞지 못하고 낮의 연장과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해가 지면 활동을 마무리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소통하고 스스로 깊어지는 시간도 가져야 하는데 그럴 만한 여유를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진보하지 못하고 '황량한 불임의 땅'으로 변해 가죠. 어느 정도는 자연에 순응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대지의 페이지에 스며드는/ 빛의 서사시를 받아써야 할 때'라고 마무리했습니다. 

두 번째는 도시의 고단한 삶입니다. 그 실체를 나타낸 시로 「거미의 도시」를 언급하고 싶은데요, 사람의 선한 본성을 억압하고 경쟁에 시달리게 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그려 보았습니다.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거미줄은 그 상황을 표현하기 적합한 아바타죠. 굳이 '아홉 가닥'이라고 한 것은 글을 쓸 당시 서울 지하철 중 숫자로 표시된 노선이 9호선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자 꿈을 찾아 이리저리 오가지만 자본주의라는 큰 그물 속에서 서로 경쟁자가 되어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시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세 번째는 분단의 상흔입니다. 그 맥락에서 「달빛 미스터리」에 '야수의 이빨 같은 철창 안에/ 동지의 눈빛을 묻고 돌아온 날'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한때 감옥에 갇혀 있던 이적 목사님을 면회하고 느낀 정서를 표현한 것입니다. 참 속상했죠. 남과 북이 평화를 약속하고 이행하고자 하는 것을 미국이 방해하고 있어서 항의의 표시로 맥아더 동상에 불을 질렀는데, 그 때문에 옥살이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가 치밀기도 했죠. 사람을 상하게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당시 대통령이 문재인이었는데,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달님이라고 불렀어요. 저 또한 그분을 좋아했지만, 미국 앞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에는 답답한 마음이 있었죠. 그런 속마음을 직설로 표현할 수는 없고, 그저 미스터리 정도로 해서 스스로 달래 본 것입니다. 

이어서 소개할 「너를 보며 나를 묶는다」에는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투쟁하는 소녀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유튜브 생중계로 본 장면이 제 기억에 생생히 박혀 있어요.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잖아요. 극우 무리가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지원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녀상을 침탈하고 있었죠. 아주 험악한 분위기였어요. 그 가운데에 애국 청년 몇몇이 소녀상을 둘러싸고 지키는 거예요. 소녀들이 현수막을 길게 찢어 만든 끈으로 자기 몸을 묶어 소녀상과 연결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약한 소녀로만 보이는 그들의 강한 의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렇게 싸우고 있는데 나는 뭐 했나 반성도 많이 했지요. 분단의 역사, 청산하지 못한 굴종의 역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젊은 세대가 고생하고 있지요. 그런 현실 인식이 창작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주제인 생태적 위기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투발루와 같이 바다에 잠겨 가는 나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지죠.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플라스틱 눈물」에는 그런 마음을 담았습니다. '플라스틱이 태평양을 점령하고/ 서서히 혈관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표현은 절박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시집 전반에 대한 메시지가 한눈에 보입니다. 이쯤에서 작품 한 편을 감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눈치 보지 않고

플레이보이 콘돔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익숙한 손길로 슬롯에 코인을 쑤셔 넣고

한 줌 욕망을 넘버로 찍으면

점지된 알을 낳는 둔탁한 소리

 

음부에 손을 집어넣다 말고

홀연 누이를 생각한다

 

구멍가게 누이는 늘 반겨 주었는데

할머니는 어떠시냐며 안부도 물었는데

때로는 오줌싸개라 놀리기도 하지만

엄마 심부름으로 산 수세미 위에 

눈깔사탕 하나 살짝 얹어 주기도 했던

 

붉어진 얼굴 들지 못해

지그시 눈을 감으면

타임머신은 몇 세기를 지나쳐 왔는지

말하고 계산하는 기계들의 뉴월드

 

어둠은 세상을 짓누르는데

외계인 기지처럼 홀로 눈부신 

자본주의 캠프

 

커피 캔 하나 집어 들고 

차가운 유리문을 나서면 

24시간 꺼지지 않는 

성형 광고 모델의 사이보그 미소

 

눈웃음도 따뜻하던 

구멍가게 누이는 어디로 갔나


-지창영 시인, 「무인 점포에서」 전문 

 


괜찮으시다면 창작 노트를 좀 들려주시죠. 

 

누구나 가끔 문명의 이기에 길든 자신을 문득문득 발견해요. 몸은 편해졌는데 마음은 공허합니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을 잃어버린 거죠. 그 점을 돌아보고 싶었어요. 한밤에 무인점포를 이용하다 작품을 착상했습니다. 24시간 운영되는 무인 점포는 남의 눈치를 볼 일도 없고 분명 편리하긴 한데 비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린 시절 경험했던 풍경과 극명하게 대비됐죠. 동네 구멍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면 그 집 딸이 늘 웃으면서 맞아 주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집안 어른들 안부도 묻고 그랬죠. 때로는 나이 어린 저를 놀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인간적 교류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생각해요. 

 

혹시, 그 옛날 구멍가게 누이와 닮은 얼굴들이 지금도 시인의 눈에는 보입니까? 

 

저는 자동차에 하이패스 단말기를 장착하지 않았습니다. 편리하다 싶어 준비는 했지만 달지 않고 있어요. 요금소를 통과할 때 잠깐이지만 수납원과 마주하는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때로는 미소도 교환하고 인사도 나누고 하는 것이 운전하는 데 새로운 느낌을 줘서 좋아요. 모두가 하이패스를 이용해서 수납원이 필요 없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마음 한편에는 있어요. 자본주의는 매정합니다. 편리함을 끝없이 추구하지만, 인간성은 챙기지 않습니다. 그런 점이 안타까워요.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읊었는데, 오늘날 죽어가는 것들은 자본주의에 짓밟히고 있는 인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으로서 그러한 것들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하죠. 지금은 볼 수 없는 구멍가게 누이는 오늘날 요금소 직원이기도 하고, 자동화로 사라져 가는 직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동화도 좋고 첨단화도 좋지만, 사람은 자르지 않으면 좋겠어요. 할 일이 적어지면 그만큼 일하는 시간을 줄여 주면 되죠. 그것이 자본주의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쯤은 잘 압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실현되리라고 믿어요. 지금은 비록 꿈같은 얘기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이 시인이기도 하죠.

 

역시 매순간 사유하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불쑥 던진 어리석은 물음에 성실한 답변 고맙습니다. 1집 '송전탑'에 대한 에피소드와 더불어 2002년 등단작 '송전탑'도 궁금합니다.

 

첫 시집『송전탑』은 2010년에 냈는데, 등단(2002) 후 8년 만이었죠. 그때 저를 지배했던 감정은 설렘이라거나 기대도 있었지만, 조급함이 가장 컸어요. 차분히 준비해서 2011년에 낼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서둘렀죠. 요즘 일어나고 있는 격변의 징후를 그 무렵 감지했던 겁니다. 그래서 격변의 조짐을 내용으로 하는 시 4편을 급히 써서 '세기예감'이라는 제목으로 4부에 배정했어요. 그중 한 작품인 「신국의 아침」에는 '구만리 장천을 날아온 주작(朱雀)이/ 불타는 하늘을 열어젖히면/ 먹빛 장막이 일시에 걷히고/ 붉은 여의주가 솟아오른다'느니, '폭풍우 속에 고이 숨겨 두었던/ 동방의 빛이 떠오른다'느니, '숨죽였던 반도에 열리는 쾌청의 하늘/ 심봉사 눈을 뜨듯 천지가 개벽하고/ 제국(帝國)보다 찬란한 신국(神國)의 아침이 열린다'느니 하는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그 당시 제 생각으로는 미국이 금방이라도 무너지고 남과 북이 통일로 가면서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으로 판단했던 겁니다. 돌이켜보면 오판이었죠. 생각처럼 쉽게 그리 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나 그 방향만큼은 변함이 없다고 믿어요. 변화가 비록 생각보다 늦게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결국 그대로 될 것 같아요. 미국은 보통국가로 주저앉고 남과 북은 통일로 갈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는지 또 두고 봐야죠. 

 

문명의 도시를 벗어나 

언덕으로 산으로 줄달음치는 

거구의 사내가 씽씽 운다

 

일체의 눈물을 모르는

산 같은 무게로 우뚝 선 채

모든 잔소리는 땅속에 묻고

눈길은 언제나 먼 하늘로 뻗는다

 

눈보라 몸서리치는 밤이면 

줄줄이 손잡은 채 함묵하는 파수병

온갖 부귀로도 달래지 못할 

서러움을 못질하며 씽씽 울다가

 

바람 부는 능선마다

붉은 피 배어나면

북녘으로 남녘으로 치달리며

기운찬 산맥 줄기줄기

지신 밟는 사내가 교신한다

-지창영 시인, 「송전탑」 전문 


시집 『송전탑』, 문학사계, 7,000원

3집도 '송전탑 신화'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긴 세월 '송전탑 시인'으로 시세계를 펼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을 듯합니다. 

 

저에게 송전탑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진리의 메시지, 생의 비밀을 전해 주는 매개체입니다. 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고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하며, 때로는 희소식을 전해 주기도 합니다. 송전탑에는 긍정적 요소도 있지만 부정적 요소도 있지요. 세상에 빛과 열을 제공해서 인간의 삶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명을 앗아가는 불상사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송전탑은 인공 구조물이죠. 사람이 필요에 따라 만든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고 갈등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편리성과 위험성을 양면으로 지니고 있는 것은 모든 인공물의 공통점이기도 하죠. 사람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 순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지니게 되죠. 아무리 좋은 사람도 100%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고, 아무리 악한 사람도 어느 구석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게 마련입니다. 송전탑을 보며 저를 돌아볼 때가 많습니다. 저 또한 살면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만 알게 모르게 위험한 면도 지니고 있지요. 생각으로 또는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요. 생명을 유지하려니 식물이나 동물도 먹게 되는데, 먹히는 처지에서는 제가 얼마나 위험하고 혐오스러운 존재겠어요. 송전탑과 저 사이에는 동병상련의 정이 흐릅니다. 반성하면서 좋은 역할을 더 많이 찾아서 시로 승화시킨다면 부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속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송전탑'이라는 제목의 소제목을 붙여서 첫 시집에 여러 편을 실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송전탑과의 교신은 유지할 것이라는 지창영 시인의 선언과 더불어 지창영 시인의 시세계는 어떻게 펼쳐질까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역사와 사회 속에서 시의 씨앗을 찾고 이를 작품으로 만드는 일에 열중할 것입니다. 인간의 정을 앗아가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감시하면서 그 속성을 파헤쳐 드러내고 싶습니다. 현 세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 민중의 힘을 바라보고 때로는 함께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제 시가 예언적인 요소를 지닌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투사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영광이겠습니다. 그 방향으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2001년부터 발간한 번역서도 다수입니다. 자유롭게 소개 부탁합니다. 

 

가장 아끼는 번역서가 『명상으로 얻는 깨달음』(2001)입니다. 생존해 계신 14대 달라이 라마의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요, 영어로 된 것을 우리말로 옮겼죠. 인내가 그 주제입니다. 번역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배웠죠. 아무리 수행을 해도 현실에서 인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가르침, 인내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길이므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오히려 은인이라는 내용 등이 뇌리에 박혔어요.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나를 근거 없이 모함하거나 괜한 일로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면, '아하, 나에게 인내를 통해 성장할 기회를 주는구나' 생각하죠. 그러면 적대감을 뒤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요. 그런 여유를 바탕으로 현실을 직면하고, 나를 괴롭히는 상대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죠. 그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면 일이 쉽게 풀려요. 최소한 더 꼬이지는 않죠. 그 밖에도 호주의 여성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우먼 파워』(2001)가 있고요, 코칭을 잘하는 유능한 지도자의 길을 안내해 주는『성공 리더의 7가지 조건』(2003), 그리고 마라톤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마라톤 그 아름다운 도전을 향하여』(2002)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 발간한 번역서가 안 보입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책을 번역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데 비해 대가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출판계도 열악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지요. 저는 당시 프리랜서로서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책 번역보다는 기술 번역에 치중하게 됐어요. 컴퓨터 매뉴얼, 기계 장치 설명서, 기업 관리 소프트웨어 등을 주로 하는 기술 번역은 문장도 쉽고 결제도 빠르다 보니 먹고 살기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했죠. 최근 들어 기술 번역도 거의 안 하게 됐습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죠.

 

혹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이유가 최근 사회복지전공 학사 취득과 관련이 있습니까? 

 

늦은 나이지만 2023년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사회복지학과 공부를 마쳤고 사회복지사 1급 시험에 도전하여 자격증도 땄습니다. 당장 생계를 위한 것은 아니고요, 어쩌다 보니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그리했던 것입니다. 공부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 매력 있는 분야더군요.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의·식·주와 공부 그리고 건강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만큼은 개인이 걱정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세상을 염원하는 저에게 사회복지의 발전은 관심의 대상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노인문화센터 조리 급식 봉사도 하고 치매 어르신을 위하여 공공후견인 활동도 합니다. 한 분의 후견인이었던 적이 있는데 피후견인이 안타깝게도 지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기회가 있으면 또 할 생각입니다.

 

그야말로 바쁜 삶을 스스로 확보한 시인입니다. 시집에 나오는 장소를 독자들도 꼭 가보았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까? 

 

자유공원에 가 보시면 좋겠어요. 제 시 「자유공원의 꽃」을 읽고 가셔야 합니다. (웃음) 외국인 장군이 그 꼭대기에 왜 있어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해 보고, 우리의 자존심을 생각해 본다면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친김에 한 곳 더 소개합니다. 스타벅스는 흔히 가실 겁니다. 가실 때 제 시 「스타벅스에서」를 생각해 주신다면 그 자체로 저는 뿌듯할 것입니다. 전철을 타실 때 제 시 「거미의 도시」를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운현궁에 가실 일 있으면 그 뒤꼍에 제 시 「운현궁에서」에 나오는 신우대가 정말 있는지 확인도 해 보시고요. 아, 혹시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에 가신다면 「봉화산 해맞이」를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웃음)

 

맡은 일이 많고 해야 할 일이 선명합니다. 그래도 여쭙습니다. 현재와 더불어 향후 보탤 계획이 궁금합니다. 

 

글 쓰는 일에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자 합니다. 다음 시집은 15년 만에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글을 쓰게 하는 일, 그러니까 글쓰기 강의와 코칭에도 더 집중하여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문학 작품이 되지 않더라도 글 쓰는 일 자체로 치유와 행복을 찾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기회를 가능하면 많이 열어 드리고 싶습니다. 사회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일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자주와 통일을 위해 모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를 바라보고 때로는 찾아가면서 현재의 아픔을 나누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그리고 싶습니다. 세계적으로 펼쳐지는 격변의 역사를 주시하면서 시대적 사명을 되새기고 그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2025년 9월 27일(토) 열린 『송전탑 이슬』출판기념회

긴 시간 고마웠습니다. 놓친 말씀과 더불어 인사 부탁합니다. 

 

오랜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도 하고 인터뷰까지 하게 되니 시인의 본분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시가 독자에게 시간 낭비만 안겨 준다면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해요. 독자가 시간을 내서 내 작품을 읽고 때로는 돈을 내고 내 시집을 산다고 생각하면 엄숙해집니다. 작품 세계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더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늘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면에서 언제나 변변치 않은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아무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모쪼록 가내 두루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지창영 시인은 한국방송통신대 영문과를 나와 선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사회복지학과를 다시 졸업했다. 2002년 계간 '문학사계'를 통해 등단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인천작가회의 회원, 인천노사모 통일위원장, 인천자주통일평화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송전탑', '송전탑 이슬',번역서 '명상으로 얻는 깨달음'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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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모과의 귀지를 파내다 모과에 핀 얼룩을 손으로 쓱쓱 문지르니점액질이 끈끈하게 배어 나온다얼굴에 핀 검버섯처럼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반짝거린다 모과의 귀에 면봉을 깊숙이 넣으니갈색의 가루가 묻어 나온다너는 그것이 벌레의 똥이라고 우기고나는 달빛을 밟던 고양이들의 발소리라 하고천둥소리에 놀라 날아들던 새의 날갯짓 소리라 하고새벽바람에 잔..
  2. [새책] 번아웃 겪는 2040세대를 위한 제안 《셀프 콤마》···하루 5분 '일상돌봄 코칭' 끝없는 경쟁과 정보 과잉 속에서 번아웃과 무기력을 호소하는 2040세대가 늘고 있다. '더 애써야만 살아남는다'는 압박감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소중한 자신을 갉아먹는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왜 마음은 늘 허탈하고 공허한 것일까?새로운제안에서 15년 차 HRD(인적자원개발) 교육전문가 이종미의 첫 책 《셀프 콤마》를 펴냈다. 과부하...
  3. 11월 '코리아세일페스타' 가전 라이벌전···삼성 'AI·상생' vs LG '할인·구독' 정면승부 대한민국 최대 쇼핑 축제 '2025 코리아세일페스타'가 11월 1일 시작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0년 연속 행사에 참여하며 대대적인 할인 경쟁에 돌입한다. 삼성전자는 AI 가전 패키지와 소상공인 상생 혜택을 전면에 내세웠고, LG전자는 높은 할인율과 구독 서비스를 무기로 맞불을 놓으며 11월 소비자들의 지갑 공략에 나선다.삼성...
  4.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접히다 "지금 화장 중입니다"승화원 전광판에는 뜨거운 불길이 일고한곳에 모인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 없었다전광판이 바뀌고눈물이 마르기 전 냉각을 마친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육중한 철문이 열리고철제 침대가 끌려 나왔다붉은 장미로 채운 관과 황금빛 수의는 간 곳 없고주검을 눕힌 그 자리타다만 뼈 몇 개와 재만 놓여 있...
  5. 2025년 포엠피플 신인문학상 주인공 22세 이고은 "시 없인 삶 설명 못 해" 올해 《포엠피플》신인문학상은 22세 이고은 씨가 차지했다. 16일 인천시인협회 주관하고 인천 경운동 산업단지 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1,351편의 경쟁작을 뚫고 받은 것이다. 행사 1부는 《포엠피플》 8호 발간(겨울호)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2022년 2월, 문단의 폐쇄적인 구조를 타파하고 회원들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기치 아래 창간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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