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나 틱톡커 같은 인플루언서들은 연예인만큼 유명하다. 아주 최근의 일이다. 1927년 문을 연 경성라디오방송국에서는 당시 최첨단 방송을 이끌 상징적인 존재로 여성 아나운서를 내세웠다. 이들은 '보브컷'이라 불리는 단발을 하며 패션과 유행을 주도한 셀러브리티였다."
- 류수연 작가
류수연 지음 / 소명출판 / 19,000원
1920년대 경성은 식민지 근대화의 물결에 편입됐다. 그곳에서 '신여성' 혹은 '모던걸'이라 불리는 여성들은 전 시대에서는 볼 수 없던 서구적 외양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 시선을 끌었다. 그들의 가장 두드러진 표지는 단연 '단발'이었다.
소명출판에서 일제강점기 근대가 추구한 외적·내적 변화와 미용 담론을 분석한 류수연 문화평론가의 《근대라는 외장》을 펴냈다.
우리 문학사에서 근대는 일제강점기 전체를 관통하는 시대적 목표이자 망국의 비극에서 벗어날 유일한 동아줄처럼 여겨졌다.
근대적 외장(外裝)에 대한 집중은 여기서 시작한다. 단순한 치장이 아닌, 살아가는 방식의 변화다. 근대인의 일상을 이끈 실질적인 동력은 무엇인가.
이 책은 크게 3개의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근대 여성교양으로서의 미용과 패션을 살피고 있다. 근대 미용담론은 사실상 부녀를 교양의 대상으로 삼아 의식적으로 기획하고 확산됐다. 그들은 문학작품 속에서 사회적 조건을 반영하는 인물로 묘사됐다.
다음은 근대 신체와 근대적 장소라는 가시적인 근대성에 주목한다. 근대 미용담론은 결국 신체에 대한 관심에서 촉발됐다. 작가는 근대적 신체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신체담론의 '양가성'을 확인한다. 우생학, 운동회, 응접실, 보건교양 그리고 대동아전쟁까지. 근대성의 가시화는 신체뿐 아니라 장소의 의미를 분석하며 구체화된다.
세 번째 항목은 근대과학과 소설이다. 미용에서 신체로, 다시 전쟁으로 이어진 끝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욕망은 바로 근대과학이었다.
명실상부한 기계의 전투였던 2차대전은 식민지 조선 작가들에게 새로운 꿈을 품게 만들었다. 이광수의 《개척자》에서 지식인들은 과학을 어떻게 상상했는지 보여주며, 김남천의 《사랑의 수족관》에서는 근대적 테크노크라트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작품을 재해석했다.
작가는 근대미용의 여러 담론을 연구하며 근대문화의 중심지 '경성'의 소설지형도를 감각적으로 사유하고, '첨단'의 이름 아래 등장한 모든 유행이 동시대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고찰한다.
류 작가는 "오늘날 한국문화는 동아시아 전체 문화를 이끌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확산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근대 초기의 담론들을 되짚어보고, 이를 오늘의 한국문학연구 안에서 현재화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한국문학 안에서 소외된 '미용의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고 싶었다"고 말한다.
문학·문화평론가 류수연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으로 등단했다. 인천문화재단 이사를 지냈고, 현재는 인하대 프런티어창의대학 교수다. 《문학으로 다문화 사회 읽기》《함께 내딛는 찬찬한 걸음》을 썼다.
류수연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