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지음 /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000원
"청소할 땐 청소해야지, 청소하는 게 먼지에 대한 보복이라고 얘기하면 됩니까?"(적폐청산)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사법개혁) "돈 봉투도 국민에게 뿌리면 안됩니까?"(복지) "평양올림픽으로 변질됐다 그러면 평양냉면도 문제삼아야죠."(평화)
창비에서 노회찬의 질문을 담은《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를 펴냈다. '6411의 목소리' 프로젝트의 두 번째 책으로 전작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의 성과를 잇는다.
노회찬은 서울 노원과 경남 창원시 성산구 등지에서 국회의원을 3번한 진보정당계 대표 정치인이었다. 그의 말들은 진보정당 이미지를 강렬함에서 위트로 바꾸기에 차고 넘쳤다.
이 책은 노회찬의 명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 사회를 뒷받침하는 이름 없는 노동자들 이야기와 현장을 담았다.
책은 4부로 구성된다. 1부 '증언하고 기록하다'는 가습기 피해 유가족, 팔레스타인 난민, 제주 해녀, 시각장애인 안마사 등 다양한 직업과 사연을 증언으로 기록한다. 각자는 "삶의 무게를 견디며,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자 했다"고 밝힌다.
2부 '견디고 움직이다'는 세탁소 운영자, IT개발자, 연예인 매니저, 환경미화원 등 사회적 보호망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일상과 버팀을 그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오늘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3부 '맞서고 고발하다'에서는 셔틀버스 기사, 간호사, 난민 출신 기자, 인권활동가, 홈리스 상담가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이들은 "불합리한 구조와 싸우는 작은 외침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으로 현실과 마주한다.
4부 '연결하고 돌보다'는 대안학교 교사, 사회복지사, 협동조합 활동가 등 연대와 돌봄의 현장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홀로가 아닌 공동체의 삶, 함께 사는 오늘을 향해 '같은 광장에서 만나는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모든 글에는 '다시 듣는 노회찬의 목소리' 코너가 있어 "차별 없는 존엄과 약자를 향한 정치는 끝끝내 포기하지 않겠다"는 '6411 정신'을 전한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우리를 민주주의라는 버스에 태우지 않았던 사회에 맞서 이제 우리가 직접 그 버스를 몰아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고 사회적 책임을 환기한다. 황인찬 시인은 "나는 당신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데서 연대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각자의 목소리는 '함께 살아가는 길'을 향한 묵직한 질문이다.
이 책은 구체적이고 진실한 노동 서사의 집합이다. 숫자와 통계로만 읽을 수 없는 현장과 개인의 고유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공감과 연대를 만든다. 장항준 영화감독은 '6411 투명인간들'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새로운 낭만주의 시대'를 언급하며 이 책이 사회를 향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모두의 퇴근'을 묻는 질문에서 시작해 서로의 삶과 내일을 비추는 기록은 고단함을 넘어 연대의 따듯함으로 이어진다. 타인의 삶을 비추는 질문 하나가 우리 사회의 풍경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