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고라니가 운다
우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는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잠이 오지 않는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잠 못 드는 밤,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질해 주시곤 했는데
여름이 오면 물컹한 복숭아 입에 한가득 넣어 주셨는데
엄마 아빠는 잠들었고
나는 깨어 있다 혼자
낮에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조만간 이 집을 정리하자고, 돈은 나중에 공평하게 나누자고
이불을 덮으면 이렇게나 할머니 냄새가 나는데
자주 입으시던 꽃무늬 바지 여전히 빨랫줄에 걸려 있는데
할머니만 없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고라니가 울어서
그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정다연 시인의 시 '여름 이야기' 전문
정다연 시인의 시집 《햇볕에 말리면 가벼워진다》 에 실린 시다.
어린시절 방학만 되면 할머니가 계신 강릉에 가곤 했다. 대문을 들어서며 "할머니!"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일손 놓고 달려와 반갑게 맞아주셨다. 방학 끝나 돌아갈 땐 산모퉁이 돌 때까지 담장 앞에서 어서 가라고 손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에서 "고라니" 는 할머니 부재에 대한 어린 화자의 슬픈 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우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는 마음은 알 것도 같다. 오늘처럼 잠 못 드는 여름밤이면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질해 주시곤 했는데, 물컹한 복숭아를 입에 한가득 넣어 주셨는데" 할머니가 없다. 어른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조만간 이 집을 정리하자고, 돈은 나중에 공평하게 나누자고 한다.
이불을 덮으면 이렇게나 할머니 냄새가 나는데, 자주 입으시던 꽃무늬 바지 여전히 빨랫줄에 걸려 있는데, 고라니가 내 마음을 알고 대신 밤새 우는 것 같다.
이 시는 "여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통해 가까운 할머니의 상실을 겪으며 존재에 대한 애틋한 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했다. 할머니에 대한 따스한 사랑과 추억을 간직하며 화자는 잘 성장해 나갈 것이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