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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화가의 수요수필] 또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다.
  • 김형희 화가
  • 등록 2025-03-19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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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캔버스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여자
  • - 꿈, 사랑, 도전 이것이 인생이다.


나는 6인실에서 여러 명의 환자와 함께 지냈다. 간병인 아주머니도 구했다. 내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어머니는 나와 같은 환자 가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어 척수손상 환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많이 알고 계셨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공기 침대도 사야 했고 대소변 처리를 위해 필요한 도구 등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다행히 나 같은 환자들만 모인 병동이라 경험이 많은 간병인 아주머니를 만나서 병원 생활은 무난하게 시작되었고, 그동안 제한되었던 면회가 자유롭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와주었다. 나는 면회 온 분들을 만나느랴 내 상태를 고민해 볼 여유도 없이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혼자서는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하루하루 인식해 가면서, 바로 옆 침대 환자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천정만 쳐다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서글픔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손으로 눈물을 닦을 수가 없어서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슴 밑바닥부터 복받쳐 오르는 울분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고 나와 같은 환자들이 다 맞는다는 항생제 주사인데 나에게만 부작용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손가락과 몸 군데군데가 빨갛게 반점이 생기더니 하루하루 지나면서 온몸으로 퍼지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주치의에게 이상 증상을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계속 두고 보자며 방치하다 갑자기 열이 40°를 넘어 증상이 심해지자 1인실로 옮겨 격리치료를 시작했다. 


‘스티븐 존슨’이라는 주사 부작용은 치사율이 60% 이상인 위험한 증상이다. 그때 나의 증상은 피부가 빨갛게 부어올라 꼭 화상 입은 것처럼 온몸에 물집이 생기고 물집이 터져 피부가 벗겨지면서 손톱, 발톱이 모두 빠진 심각하고 아주 위험한 상태였다. 그런데다 수술한 목뼈가 붙지 않은 상태여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니 치료하기가 매우 힘들어, 한번 치료하려면 6~7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두 멸균된 옷으로 갈아입고 치료를 했다. 


이 치료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고 물집이 생겨 피부가 자꾸 벗겨져 세균에 감염되지 않게 멸균된 분무기에 소독약을 넣어 온몸에 뿌리고 화상 연고제를 발라 백열전등으로 말리는 화상 치료처럼 했다. 치료를 받는 나 또한 온몸이 불에 타는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진통제로 살았고, 통증이 너무 심해 몸의 떨림이 턱으로 전해져 이가 위아래로 계속 부딪쳐 혀를 자꾸 깨물어 위험했기 때문에 거즈를 양쪽 어금니로 물고 치료를 받았다. 하루에 2번씩 정말 악몽 같았다. 열이 40°를 오르락내리락, 정신도 혼미해지고 살고 싶다는 의욕도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엄마! 나 이젠 더 이상 견딜 힘이 없어! 나 그냥 보내 줘." 

"형희야!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너 엄마 사랑하잖아. 엄마도 너, 너무너무 사랑해. 

그러니까 엄마하고 끝까지 견뎌보자!" 응..형희야? 엄마의 확고한 의지가 힘이 되었다. 

엄마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병원에 있는 기도실에서 간절히 기도를 하셨다. 어느 날은 기도실에서 올라오신 엄마 얼굴에 두 줄기의 선명한 눈물 자국이 빨갛게 나 있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딸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삶을 포기하고자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삶을 향해 최선을 다해 보고자 마음먹었다. 사투를 벌이며 일주일을 버텼다. 조금씩 열이 내렸다. 열이 내리니 마음도 편해졌다. 부모님께서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좋아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병원 천장에 피자, 치킨, 군만두, 떡볶이, 도넛츠 등 평소 다이어트 때문에 먹지 못했던 음식들이 둥둥 떠다녔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엄마가 계속 물었다. 

죽다 살아나자마자 식욕이 왕성해진다는 것이 창피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많이 먹어야 피부가 재생된다고 식욕 촉진제를 처방했다는데..효과가 없나?” 물집이 터지고 그곳에 새살이 돋아나게 만드는 단계가 되자 식욕 촉진제를 처방했다. 뜬금없이 식욕이 왕성해진 건 모두 약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다이어트 때문에 먹지 못한 음식들을 맘 놓고 열심히 먹었다. 먹는 것이 치료였고 그 상황에서 나는 치료를 위해서 못 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마음껏 먹어도 되는 타당한 이유가 생겼으니까.. 


두 달이 지나자 온몸을 덮고 있던 까맣게 탄 피부는 낙엽처럼 바싹 말라 우수수 떨어졌다. 그때의 고통은 미치도록 가려운 것이었다. 손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박박 긁었을 텐데.. 나한테는 그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가려움증도 피부가 타는 고통 못지않았다.


“엄마, 거울 좀 줘 봐요.” 

“거울은 왜?”

"그냥, 보고 싶어서." 

"안 봐도 이뻐!"

엄마는 이상하게 거울을 보여 주지 않았다. 거울 얘기만 하면 엉뚱한 핑계를 대셨다. 

그러던 어느 날 X-ray 촬영을 하다가 기계 렌즈에 비친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내 얼굴이 아니었다. “누구지?” 순간 고민했다. 몸무게가 60kg이 넘을 정도로 뚱보가 되어있었다.

“엄마, 나 왜 이렇게 뚱뚱해졌어요?”

“뭐가 뚱뚱해. 보기 딱 좋구먼.”

“살은 나중에 빼도 돼.”

부모님은 나를 위로해 주셨지만, 완전히 변해 버린 내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나는 당장 식욕촉진제를 끊었고 매일 거울을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참 우울했다. 그러나 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기적과 같은 일들은 생겼다. 사고 당시 목 수술로 인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성대가 있는 목 앞쪽 수술을 한 번 더 하기로 했으나, ‘스티븐 존슨’ 치료를 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워 나오지 않는 소리를 지르다 갑자기 목소리가 트여 수술이 필요 없어졌다. 사실 그 목 수술은 많은 위험이 따르는 것이었다. 성대를 잘못 건드리면 영원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언어장애가 생길 수도 있었는데 그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달을 1인실에서 보내고 2인 병실로 이동했다. 병원에서는 치사율이 60%가 넘는 ‘스티븐 존슨’ 주사 부작용이 치료된 사례는 처음이라며 해외 제약회사 담당자들이 나와 살펴보고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며 무척 놀라워했다.

김형희 / 모정 / 2009년/ 27.3 x 22.0 /  Oil on Canvas


이제는 휠체어를 타기 위해 조금씩 앉는 연습을 하라고 의사가 처방했다. 

하늘이 보고 싶었다. 4개월이라는 사투의 시간을 이겨내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사고 전에 본 유난히 아름다웠던 푸른 하늘, 그때 내가 본 하늘의 느낌과는 또 다른 하늘이었다. 같은 하늘인데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하늘이 달라 보였다. 하늘이 참 푸르렀다. 하늘이 참 눈부셨다. 하늘이 참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더 초라했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김형희 화가는 성균관 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했으며 CHA의과학대학교 통합의학대학원 임상미술치료 전공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후, 자신이 설립한 장애인예술단체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대표를 거쳐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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