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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미역이 올라올 때 4편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6-13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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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까지 태워줄게.” 

미라는 머리칼에서 머리리본을 빼며 택시를 불렀다고 했다. 나도 댓돌에 앉아 신발을 벗어 발을 모래에 묻었다. 먼 바다에서 구름이 몰려왔다. 하얗게 헹군 구름 뒤로 검은 구름이 빠르게 쫓아왔다.

“네 시에 엄마 면회가 가는데 같이 갈래?”

빠르게 쫓아오던 검은 구름이 하얀 구름을 덮쳤다. 미라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앞으로 길게 내뿜었다. 검은 구름이 흰 구름을 모두 업어 흰 구름은 테두리로만 남았다. 미라는 일어나 댓돌 옆에 벗어 둔 신발을 신었다. 미라의 검은 구두 안으로 모래가 따라 들어갔다. 모래는 미라를 따라 도시까지 갈 것이었다. 도시까지 따라간 모래는 당분간 미라에게 바다를 생각나게 할 것이다. 모래는 몸을 죄어주던 바다를 풀어놓아 미라를 바다로 이끌지도 몰랐다. 우리는 도시로 갈 때, 신발 안에 모래를 잔뜩 넣고 갔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발바닥에서 모래가 버석거렸다. 일부러 털어내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신발 속의 모래는 사라졌다. 미라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신발을 벗어 발에 묻은 모래를 말끔히 털었다. 손을 넣어 신발 안의 모래도 털어 냈다. 도로 쪽에서 경적이 들렸다. 미라는 담배를 모래에 파묻고 일어났다. 미라가 탄 택시가 출발할 때 묵직한 검은 구름이 바다로 떨어질 듯 가라앉았다. 미라가 앉았던 댓돌에 공책을 들고 앉았다. 솔밭이었던 콘도 쪽에서부터 서서히 물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개는 바다로 번져 몰려오는 파도와 뒤섞여지고 있었다. 공책을 펼쳤다.

  

알몸으로 바다에서 나오는 엄마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어두운 창에 매달렸다. 할머니는 이불을 들고 허겁지겁 모래사장으로 나갔다. 바다에서 나온 엄마의 매끄러운 몸에 달빛이 미끄러졌고 풀어헤친 머리칼에서 바닷물이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엄마의 몸에서는 야릇한 빛이 흘렀다. 할머니는 모래사장을 달려가 커다란 이불로 물로 번들거리는 엄마 몸을 둘둘 말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엄마는 낯선 사내를 따라 도시로 갈 때까지 비 오는 밤이면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왜, 엄마는 바다에 뛰어드는 것일까?”

 나는 미라에게 물었다.

“넌, 왜 빨간 방갈로를 좋아하지?” 

라고 미라가 되물었다.


할머니는 방안에서 사내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곱게 화장한 엄마는 싱글거리며 마루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와 방안을 기웃거렸다. 할머니는 우리를 내쫓았다. 우리는 방갈로에 누워 그는 누구일까 생각했다. 미라는 나의 아버지일 것이라 했고 나는 미라의 아버지일 것이라 했다. 우리는 헤어지더라도 이 방갈로에서 만나자고 바다를 걸고 맹세했다. 그는 우리 둘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었다. 그는 자주 왔고, 그가 올 때마다 할머니는 우리 손에 옥수수를 쥐어주고 놀다오라고 했다. 우리는 비 오는 바닷가에서, 모기가 척척 둘러붙는 방갈로에서 옥수수를 한 알씩 떼어먹었다. 할머니의 계획대로 엄마는 바다를 떠났다. 바다를 떠날 때 엄마는 활짝 웃었다. 머리칼에는 모래사장에서 주운 큐빅 빠진 머리핀이 꽂혀 있었다.


우리는 엄마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가끔, 모래사장에 떨어져 있는 머리핀이나 모자를 볼 때면 바다로 뛰어들었다. 우리는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의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를 찾는 사람이 적었고 파도도 여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재빨리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오리 바위까지 먼저 가기 내기를 했고 암초에 붙어있는 홍합을 땄다. 가끔, 미라는 헤엄치지 않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놀라 미라에게 다가가면 그제야 푸우, 하며 위로 올라 왔다. “바다 속에 가라앉는 느낌이 좋아. 가라앉다 보면 물이 내 몸을 죄여오면서 말을 걸어. 멀리 계곡에서 온 물, 강에서 흘러든 물, 어느 집에서 흘러온 물, 하늘에서 내린 비가 내 몸을 죄여오면서 말을 걸어. 그 모든 소리들이 내 귓속을 쿵쿵거리며 돌아다녀.” 나도 바다 속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오래 견디지 못하고 바로 올라와 버렸다. 물 위로 떠오른 우리는 손을 맞잡고 누군가 방갈로 벽에 적어놓은 미라보 다리, 라는 시를 읊었다. “손에 손을 맞잡고 마주 대하자 우리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시간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방학이 끝나고 내가 도시로 가려고 할 때, 엄마가 왔다. 엄마를 데리고 갔던 사내는 할머니에게 화를 내곤 돌아갔다. 엄마의 몸은 멍으로 울긋불긋했다. 엄마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예전처럼 웃는 일도 없었다. 개강 날이 훨씬 지났지만 나는 도시로 갈 수 없었다. 엄마는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바다로 뛰어들었다. 내가 머리채를 잡아끌고 나올 때까지 한없이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할머니는 미라의 아버지가 그 바다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할머니와 나는 엄마를 사설 병원에 입원시켰다. 당분간의 병원비는 내 등록금으로 남겨 둔 돈으로 냈다. 할머니는 미라에게 비밀로 하자고 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미라는 할머니에게 미쳤다고 욕했고 우리를 무시했다. 


나는 공책을 한 장씩 뜯어 드럼통 안에 넣고 불을 붙였다. 오그라드는 종이는 금세 검은 재로 변했다. 네 명의 여자 이야기는 재가 되어 화르륵 사라졌다. 

엄마는 푸른 환자복을 입고 목에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막자란 머리칼이 어깨 위로 내려왔다. 스카프를 풀었다 다시 묶다가 열려진 문을 두드리자 달려 나와 내 어깨에 매달렸다. 

“배가 고파, 뭐 좀 먹을 것 없니?” 

엄마의 입에서 시큼한 약 냄새가 났다. 나는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 주었다. 엄마는 과자 봉지를 옆 환자에게 흔들어 자랑했다. 봉사 활동을 나온 미용사는 옆 환자에게 머리를 감으려면 코트를 벗어야 한다고 달래는 중이었다. 옆 환자는 원피스로 된 환자복 위에 검은 코트를 입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엄마는 과자 봉지가 뜯어지지 않자 봉지를 마구 문질렀다. 내가 봉지를 뜯어주니 배가 고픈 사람처럼 허겁지겁 과자를 먹었다.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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