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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인터뷰] '여순항쟁역사화전' 박금만 화가
  • 정해든 기자
  • 등록 2025-06-13 07:03:41
  • 수정 2025-06-15 14: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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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항쟁의 역사가 생생하게 들리는 작품세계

그림을 위해 동학 전사 차림을 한 박금만 화가(아들 박율 촬영)

안녕하세요? 바쁜 시간 내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찾아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가볍게 여는 질문입니다. '화가 박금만'이 생각하는 '화가'란 무엇인가요?

 

화가는 작품과 인생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이 투영되어야 제대로 된 예술이죠. 그래야 대중에게 설득력도 있고요. 그런 맥락에서 현장과 늘 함께하려 합니다. 사실 여러 가지로 어렵지만 화가로 살아가면서 이 원칙을 지키고 싶습니다. 

 

답변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화가로서 '여순항쟁'과 만난 인연이 궁금합니다.

 

여수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여수에서 보냈고 서울과 경기도에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주로 인간의 심리에 관해 탐구했는데요. 그러다가 2015년 깡통전세로 집을 잃고 귀향했습니다. 2017년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기록을 여수에서 찾았습니다. 경찰 기록에 '총살로 돌아가셨다'는 것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뒤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고민하다 모든 그림을 중단하고 '여순항쟁' 작품에 몰두했습니다. 왜곡되고 알려지지 않는 여순의 역사를 널리 알리자는 게 목표였습니다. 여전히 그 각오와 행동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운명이 느껴집니다. 이어질 질문이 많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보편적 질문을 드립니다. '화풍'이라는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화풍이란 작가의 그림 그리는 경향 또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 토대에서 화가가 그리려는 대상의 인식은 화가의 태도가 결정합니다. 관심을 두고 뚫어져라 본 그 결과로 그려진 새로운 그림이 예술이고 그 그림을 관객이 호응할 때 시대적 화풍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 꿈을 구현하는 게 화가의 바람이고 창작의 고통을 견디는 게 예술가의 운명이죠. 화가의 작품세계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긴 시간 고민하고 행동한 결과로 만들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박금만 화가'의 '화풍'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의 화풍은 한마디로 인간을 그리며 그 속에서 인간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할아버지에 대한 사건 기록을 만난 뒤 인간의 내면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리던 시절은 사실을 오도한 가짜였습니다. '여순항쟁'이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진 듯하지만 아직도 진실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 구석까지 골고루 퍼져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정확히 인간이 얼마나 숭고한 존재인지 인간의 의미를 찾아가는 방식은 '인간이 얼마나 인간답지 못한 상황에서 쓰러져 갔는가'로부터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순항쟁'을 예술로 승화시킬 나만의 메시지를 꾸려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최초 화가를 꿈꾸게 된 특별한 시점이나 계기가 있었는지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산에서 파온 찰흙으로 태권브이를 만들었는데 형이 발로 밟아버려서 너무 서운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다 '내가 만든 것이, 참 소중하다' 깨달은 때부터 그림이든 무엇이든 예술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타고난 건 아닙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것도 아닙니다. 그저 호기심이 많았고 만드는 게 재미였습니다. 지금도 즐겁기는 하나 버거울 때도 많습니다. 계속 정진해야겠지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려고 다짐한 만큼 관련 책도 많이 보았을 것 같습니다. 그림을 잘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할 책 한 권 소개 부탁합니다.

 

어쩌죠? 한 권이 아니고 두 권인데요. 동양미술사와 서양미술사를 권합니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만만치 않은 책들입니다. 이 책들이라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림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동양과 서양은 분명히 문화가 다릅니다. 그런데 사조는 달라도 그림의 궁극과 기초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림의 원리를 넓게 파악하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방향을 보다 빨리 정립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기초가 중요합니다. 건물도 운동도 그러하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두 권의 책은 기초에 충실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 빨리 자신이 만들어갈 화풍의 기초가 될 책들입니다. 

 

개인전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지금은 흐릿해졌을지도 모를 첫 개인전이 궁금합니다.

 

첫 개인전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삼정 갤러리'에서요. 다양한 표정과 인물의 심리를 그려보려 했습니다. 한국화였고 재료도 실험적인 걸 사용했습니다. 한 사람의 표정이 떠올랐다 사라지듯 어렴풋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아슴아슴한 생애 첫 전시회의 작품을 소개해 주십시오.

 

첫 전시회 작품은 '여성 마술사'였습니다. 상당히 차가운 성격을 가진 분이라 몹시 대하기 힘들었어요. 6개월을 쫓아다니면서 겨우 사진을 찍고 작업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아쉽게도 그 작품은 소실됐습니다. 지하 작업실에 물이 찼거든요. 1회 개인전 작품들도 거의 소실됐죠.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 생애 첫 작품들은 늘 서글픔을 몰고 오곤 합니다. 


마술사 J, 160×130cm, 장지 위에 혼합재료, 1995

잠시 쉬어가죠. 여수에 가면, 꼭 들러 볼 장소 한 곳을 그 이유와 함께 소개해 주십시오.

 

'용골'을 권합니다. 만성리굴을 지나면 나오는데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습니다. 군인들은 절벽에서 사살 후 떨어뜨리거나 길에서 바로 학살 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이곳은 '물골'을 메운 후 길로 만들다 보니 오목하게 들어가 자연 구덩이가 된 곳입니다. 여수사람들은 한동안 이곳을 지날 때 말없이 돌을 던져 마음속으로 추모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 수영하러 가면서 돌을 던졌죠. 추모의 의미는 커서 알았습니다. 

 

쉬어갈 질문이 아니었네요. 소개한 장소가 붓으로 그린 영상처럼 느껴집니다. 의미가 있는 장소 한 곳을 더 소개해 주십시오.

 

다른 한 곳은 14연대가 봉기했던 곳입니다. 지금의 신월동 한화 공장 자리인데 14연대는 "동포를 죽일 수 없다"며 제주도 출병을 거부하며 봉기합니다. 여순항쟁의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14연대 군인들은 봉기했다는 이유로 가담자나 가담하지 않은 자나 모두 색출돼 감옥을 가거나 총살을 당합니다. 이 곳은 일제의 해군 주둔지이기도 합니다. 당시 군수물자도 만들었고요. 지금은 14연대 취사장 굴뚝만 남아 당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종대 미술학과 대학원 졸업 논문도 벽화에 드러난 역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던데요.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벽화에 나타난 공간 개념과 기법 연구입니다. 대부분 자기 작품을 논문으로 쓰는데 저는 벽화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한국벽화연구소에서 동유화 벽화를 시공하는 연구원으로 있었죠. 그러다 보니 가장 가까이 있는 대상 그리고 가장 세밀하게 파고들어야 하는 주제였습니다. 

 

느닷없습니다만, 내 생애 가장 감명 깊었던 그림은 무엇인가요?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티피에스'의 <십자가+R>입니다. 천재죠. 그의 작품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그릴 수 있나" 하며 힘이 빠집니다. 비구상 작가인데 모든 작품이 계산된 듯하죠. 너무 자연스러워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더 이상 뺄 수도 더할 수도 없는 그림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그림들을 만난 뒤 비구상 작품을 하지 않았습니다. 

 


안토니오 타피에스의 「십자가+R」, 1975, 나무에 혼합매체, 162.5×162.5cm, 에스파냐, 바르셀로나 미술관

원론적이지만, 그림의 유래를 알 수 있을까요?

 

동굴에 벽화가 남아있는 걸 보면 그림의 역사는 동굴에서 사냥물을 그리면서 시작됐을 거라 봅니다. '동굴생활'에서는 장식적인 면도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잡았는지 기록을 남기는 거죠. 

 

그런 맥락일까요? 본인의 그림 속에서 동굴 속에 그린 역사가 들립니다. 특별히 '여순항쟁'과 인연 깊은 예술인 한 분을 추천해 주십시오.

 

정숙인 소설가입니다. 2018년 여수에서 모두들 '여순사건'이라고 할 때 흔들리지 않고 '여순항쟁'을 말하던 소수였습니다. '여순항쟁'으로 전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갤러리에서 압력을 받았습니다. 결국 '여순사건'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정숙인 작가와 저는 전시그룹에서 나왔습니다. 그 인연으로 '여순항쟁' 알리기 동지가 되었습니다. 

 

최근 개인전은 언제 어디에서 있었고 그때 전시한 작품들을 설명해 주십시오.

 

지난해 대구예술회관에서 전시했어요. 2017년부터 그리던 4m 넘는 여순항쟁 작품들을 모두 펼칠 수 있어 매우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에서 '여순항쟁'을 발표하게 돼 뿌듯했습니다. 더군다나 대구 민주시민들의 모금으로 이루어진 전시라 더욱 뜻깊었습니다.  


시민의 항쟁(잉구부전투), 450×195cm, 캔버스 위에 오일페인트, 2023

기획 중인 전시회가 있습니까?

 

6월 중 세종시 '소피아갤러리'에서 '여수(麗水) 전'을 열 예정입니다. '여수바다'를 내륙의 중심인 세종시에서 전시하는데 여수바다와 백도, 개도 등 섬의 풍광을 선보입니다. 이 전시에서는 현재의 여수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풍경 이외 여수의 또 다른 느낌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백도, 116.8×91cm, 콘테, 2025

'전남도립미술관'과 '광주시립미술관'에 소장 작품이 있습니다. 그림 제목들과 그림에 담긴 메시지가 궁금합니다. 

 

그 두 곳에는 10년 전 작품들 'Armed lady'가 있습니다. 2015년 여수로 돌아왔을 때 아이나 저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어느 날 아이가 자기의 보호막이 되어달라고 제 가슴을 누르는데, '아이의 로봇이 되면 어떨까. 우리들의 놀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며 작품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인간성 보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23년 '녹테마레갤러리'에서 21회 개인전이 있었죠?

 

네! '여순의 삶-순이·영수 그리고 불가사리'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림 소설인데요. 말하자면 그림으로 소설을 쓰는 형식의 작품입니다. 소년·소녀가 1948년 10월19일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삶을 보여주죠. 아이가 자신의 집과 꿈 등을 비롯해 모든 것을 파괴한 괴물을 잡겠다고 전봇대와 싸웁니다. '여순항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아이가 정신착란으로 전봇대와 싸우고 불가사리라는 괴물의 먹이인 쇠를 찾아 유인한다는 내용입니다. '아이들이 불탄 여수에서 살아남기 위해 쇳덩이를 캐내며 생활을 영위했다'는 근거로 만들었습니다.  


사투(死鬪), 162×130cm, 콘테, 2023

단체전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 지난해 연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광주 동곡미술관)' 소개를 부탁합니다.

 

동학에 대한 전시였습니다. 여기서는 '영호도회소'라는 여수 동학 조직들이 남해에 상륙해 영호남이 함께 싸우는 장면을 형상화했습니다. 동학의 민주 정신이 '여순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그 정신이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죠.


1894년 영호도회소 남해 서상포 입성, 245×194cm, 콘테, 2024

곧 개인전이 있습니까?

 

올해는 그리는 시간을 좀 줄이려 합니다. 한마디로 좀 쉬어가려는 거죠. 지난해 규모가 큰 전시를 열면서 힘들었거든요. 그러나 어디서든 '당장 전시하자' 해도 항상 준비돼 있습니다. 여순 작품만 130점 정도가 있어요. 전시에 맞춰 그리기보다 작품을 만들어 놓아 어떤 기획이든 전시회든 충분히 열 준비를 해 놓는 거죠. '쉬려 하면 바빠진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좋지요. 전시회는 몸이 힘들어도 보람이 따라오니까요. 

 

긴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계획과 인사 부탁합니다.

 

세종시 소피아갤러리에서 여순을 기억하고 알리는 <그날의 기억>을 4월 14일 ~ 6월 7일 전시했습니다. 여수·순천의 화가와 시인 들이 함께했어요. 이어 <여수에서 구례까지, 여례>를 16일부터 7월 6일까지 합니다. 1관에서는 여수의 바다를 그린 제 작품이,  2관에서는 구례 유족의 기록사진이 전시됩니다. 여수바다가 그냥 아름다운 바다가 아니며 구례의 인물사진 또한 그냥 범부의 사진이 아닙니다. 모두 지난한 여순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늘 전시회를 통해 다시 만날 것이고 화가로서 의미 있는 작업을 이어가겠습니다. 곧 바람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늘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더불어 '여순항쟁'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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