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
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
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병일 때
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
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릴 지를 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
이런 때
나와 엄마는 꼭 밥을 먹고 있었다
- 안주철 시인의 시 '밥 먹는 풍경' 전문
안주철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 에 실려 있다.
이 시를 읽으면 필자도 일터에서 밥 먹다말고 손님과 마주하는 풍경이 오버랩되어 가슴이 뭉클해진다. 동네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생필품을 사기도 하고, 술판을 벌이기도 하는 구멍가게가 공간적 배경인데 시인은 그곳의 저녁 무렵을 잘 포착하여 섬세하게 그려냈다.
가게는 밥 먹고 살게 해주는 소중한 일터지만 아이러니하게 때가 되면 밥을 제대로 못 먹게 한다.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밥을 먹기 위해 버는 풍경과 실제 밥 먹는 풍경이 동시에 겹친다. 그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말한다.
화자가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소리쳤을 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으로 침울한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고 통쾌하게 끌어올려 준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여러 감정이 묻어나는 처절한 삶의 풍경이지만 시인이 그것들을 껴안고 진솔하게 대상화하는 모습에서 이런 것 또한 삶을 지탱해 나가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밥"이 언어를 너머 아주 위대하게 느껴지는 시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