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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소요 2편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8-23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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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속에 뛰어들기가 싫었다. 언제 끌어온 바닷물인지 정수된 물인지 알 수 없는 물에서는 고인 물에서 나는 특유의 물비린내가 났다.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을 풀어놓아도 곧바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물속에 들어가는 상상만으로 팔다리에 물때가 끼는 것 같아 께름칙했다. 더군다나 아침에 예기치 않게 생리가 터졌다. 익숙하지 않은 생활 탓인지 예정일보다 나흘이나 일찍 시작되었다. 기대고 있던 소나무에서 등을 뗐다. 물컹, 뭉쳤던 혈이 흘러나왔다. 축축하고 불쾌했다. 안전요원들이 사용하는 탐폰을 미리 구비 해놓지 않아 일반 생리대를 사용했다. 덩어리 피가 흘러 생리대 옆으로 새는 기분이 들었다. 저 연인들을 끝으로 보트 운영시간은 마감되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핸드폰으로 노를 젓고 있는 남자 사진을 찍었다. 카누가 내 구역에서 멀어졌다. 돌고래상 앞에 서 있던 안전요원이 호각을 불었다. 카누는 돌고래상이 있는 지점에서 돌아오는 것이 원칙이었다. 안전요원은 여자에게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여자가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안전요원은 집요하게 호각을 계속 불었다. 호각 소리와 여자의 핸드폰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다. 배가 뒤집혀 여자가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을 보고 싶었다. 

응급 의료 전용 헬리콥터가 섬으로 다가왔을 때, 낡은 목선의 바닥을 검붉게 적셨던 피가 꾸덕꾸덕 말랐다. 나는 아버지의 머리를 담요로 감싸 꾹꾹 눌렀다. 겁에 질려 피가 멈췄는지 확인할 수 없었고 피가 보이지 않도록 담요를 겹으로 둘둘 말았다. 헬리콥터는 소요가 보낸 거였다. 아버지가 배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머리통을 찌르고 있던 병목을 뽑아 들자 내 머릿속 피가 빠져버린 듯 앞이 하얘졌다. 어디로 구조요청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섬주민들은 소요를 섬에서 쫓아낸 후부터 우리를 피했다. 그래서 나는 다신, 연락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던 소요의 번호를 눌렀다. 나는 헬리콥터 안에 소요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얀 헬리콥터가 섬을 한 바퀴 돌아 선착장에 착륙했다. 파란색 제복을 입은 두 명의 구급대원이 이동식 침대를 가지고 와 아버지의 머리에 지혈하고 압박붕대를 감을 때까지 나는 헬리콥터 출입문 아래 내려진 계단을 바라보았다. 눈살을 찌푸린 소요가 침을 뱉으며 계단을 내려올 것 같았다. 헬리콥터가 병원 옥상에 착륙하고 대기 중이던 의료진과 응급실로 내려갔을 때 의자에 앉아 있던 소요가 몸을 일으켰다. 내 시선이 그의 목뼈에 닿을 정도로 훌쩍 키가 커졌다는 것을 알았다. 니가 급할 때는 잘도 연락하는구나. 소요는 휘청거리는 앙상한 소년이 아니었다. 정신없는 응급실 사람들과 부딪혀도 흔들림이 없는 크고 단단한 소년으로 변해 있었다.

인디언 카누가 뱃머리를 돌려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돌고래 상 앞에 서 있던 안전요원도 천천히 걸어왔다. 저기요, 사진 좀 찍어줘요. 인디언 카누가 강기슭 쪽으로 바짝 다가왔고 여자는 팔을 길게 뻗어 핸드폰을 줬다. 사진을 찍고 핸드폰을 돌려주려 하자 여자가 한 번 더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연이어 세 컷을 찍었다. 핸드폰을 받은 여자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어? 여자네. 저기, 빌딩들이 보이도록 다시 찍어주세요. 여자의 요구대로 사진을 찍고 핸드폰을 돌려주기 위해 상체를 뻗었다. 쿨럭, 하며 하체에서 덩어리 피가 흘러나왔다. 여자가 핸드폰을 받기 위해 손을 뻗자 카누가 출렁거리며 좌우로 흔들렸다. 남자가 노를 기슭에 지지하자 카누는 중심을 잡았다. 돌고래 상 앞에 있던 안전요원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소요 언제 와요? 이곳 안전요원이었던 소요는 사흘만 자기 자리를 지켜달라고 했다. 소요가 어떻게 말해놨는지 내 수영 솜씨를 확인한 관리실장은 최근에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을 복사한 뒤 돌려주며 나를 소요가 있던 자리에 배치했다. 사흘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록 소요는 연락이 없었다. 어떤 사이에요? 녀석한테 볼일 있는데. 나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강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 다리에 매달려 아래를 보는 여자아이의 손에 빨간 풍선이 매달려 있다. 그 모습은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무서웠던 오르골의 세계 같았다. 인디언 카누를 타는 연인들 위로 아치 다리가 있고 다리 난간에 매달린 아이의 손에는 풍선이 들려져 있고, 아기를 안은 아빠와 흰 모자를 쓴 여인. 바디 원판 아래 태엽을 감으면 오르골 음악이 흘러나오며 밀랍으로 만든 인형들의 몸이 돌아가는 오르골 상자처럼 슬프고 무서웠다. 오르골 상자는 소요의 것이었다. 난 커서 이렇게 안전하고 화려한 세상에서 살 거야, 너도 돌려봐. 소요는 오르골을 내밀었다. 나는 오르골의 태엽을 팽팽하게 감았다. 태엽이 풀리며 똑같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내부 아이스링크 위의 피큐어가 한 방향으로 회전하며 돌아갔다. 활짝 웃으며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밀랍 인형의 안전한 세계가 나는 소름 끼쳤다. 내 표정을 살피던 소요가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닫힘과 동시에 화려했던 세계가 훅, 꺼져버렸다. 태엽이 풀리며 인형이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슬펐는데 오르골의 태엽이 망가져 한자리에 들러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인형은 슬픔을 지나쳐 무서웠다. 나는 소요 몰래 오르골을 썰물 때의 모래에 파묻었다. 소요가 섬을 떠날까 봐 두려웠다.


-계속-


박정윤 소설가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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