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호역에서 여자들이 붉은 함지를 들고 기차에 올라탔다. 그중 한 명이 할머니에게 빈자리냐고 묻고는 함지를 의자 사이 틈에 내려놓고 함지 위에 얹어 놓았던 바구니를 그 옆에 내려놓았다. 할머니가 여자에게 오늘 잡은 물고기냐고 어디로 팔러 가냐고 묻자 여자는 영주까지 간다며 함지에 덮어놓았던 검은 보자기를 들었다. 여자는 오징어도 있고 가자미도 있는데 우럭 물이 좋다며 검은빛이 나는 생선을 집어 들고 물기 촉촉한 검은 눈동자가 보이도록 할머니에게 보여줬다.
“또록또록하네요.”
할머니가 만져볼 기미를 보이질 않자 여자는 두 손으로 생선의 통통한 몸통을 쓰다듬고는 함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할머니가 바구니를 손으로 가리키며 잘 말렸냐고 묻자 여자는 바구니를 덮었던 보자기를 거뒀다. 여자가 붉은 생선을 뒤적거리다 한 마리를 할머니에게 건네줬다. 생선이 내 눈앞에 보이자 쿰쿰한 냄새가 확 났다. 나는 할머니를 흘겨보았다. 할머니가 붉은빛이 도는 생선을 손으로 잡아 코에 대고 킁킁거렸다.
“열갱이 뽀득하니 잘 말렸네. 거 세 마리만 잘 쳐주우.”
할머니는 손을 가제 손수건에 닦고 허리춤에서 지갑을 꺼냈다. 여자는 신문지에 생선을 돌돌 말았다. 몸빼바지에 손을 문지르고 돈을 받았다.
“마수를 기차에서 잘해 오늘 저녁 되기 전에 털고 올 것 같네요잉.”
여자의 몸빼바지에 불투명한 생선 비닐이 말라 비틀어 붙어 있었다. 들러붙은 비닐을 보자마자 속이 뒤집혔다. 나는 눈을 감고 창가로 바싹 다가앉았다. 입 속에 신 침이 자꾸자꾸 고였다. 잠든 척하고 그 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새 점퍼에서 나는 석유 내가 비린내로 뒤집힌 속을 조금 진정시켜주었다. 여자가 할머니에게 두 오누이가 예쁘고 다정하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누나 노릇은 못 하고 속 창지가 까칠하다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내가 왜 누나야. 이제 오늘만 지나면 안녕이야. 나는 속으로 혼잣말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일어나. 일어나 봐. 거꾸로 가고 있어.”
그 애가 흔들어 깨워 잠에서 깼다. 그 애 말대로 기차가 거꾸로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겪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가파르게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차는 방향을 바꿔 거꾸로 갔다. 생선 장수가 창밖을 내다보며 예전에는 통리재에서 심포리역까지 걸어서 올라갔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창을 내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두 손으로 팔짱을 끼곤 애들 할아버지가 역무원이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곤 입을 다물었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강삭철도를 없애고 통리, 심포리, 흥건, 나한정에 지그재그로 철도를 놓을 때 역무원들까지 매달렸다고. 해발 오백 미터가 넘는 지대에 철도를 닦다가 발밑 협곡으로 인부들 여럿 떨어 죽었다고. 부역장까지 했던 할애비는 지금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독한 약만 삼키고 있다고.
“애들 아비도 지금 철암역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애들 이모부 한 명은 옥계에서 한 명은 강릉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이고. 집안이 죄 철도 집안이구만요.”
나는 할머니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시시콜콜 말하는 것이 못마땅해 앞에 놓인 가방을 발끝으로 툭툭 찼다. 지그재그로 산을 올라 온 기차가 달렸다. 나는 거꾸로 멀어지는 협곡을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지가 역무원인 것은 알았지만 이 구간 철도를 닦을 때 통리역에서 근무한 것까지는 몰랐다. 묵호역에서 근무하다 퇴임했기에 묵호역에서만 근무한 것으로 알았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한글을 가르쳐줄 때 기차역 이름으로 가르쳐주었다. 영주, 상고사리, 하고사리, 통리, 철암, 조치원, 의정부. 나이는 내가 많았지만, 민석이 나보다 키도 크고 받아쓰기도 잘했다. 덧셈과 뺄셈도 빨랐다.
-계속-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아이즈 앨범' 1999년 어느 겨울 새벽
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얼어 붙은 땅에 노란 납매 그리고 동백
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