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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소요 4편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9-06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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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에서 끌려 나와 수압 차와 스트레스로 죽어버린 민어를 아버지는 곧바로 회로 떴다. 아가미를 따고 쓸개, 지느러미를 떼어내고 비늘을 긁어내고 조심스럽게 부레를 잘라내어 기름소금에 묻힌 후, 소요의 입에 넣어주려 했다. 아버지가 회를 뜨는 모습을 목을 꺾고 보던 소요는 휘청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사내놈이 그렇게 비실거려 어따 써? 이 민어 부레가 최고의 강장 음식이야. 아버지는 피 묻은 목장갑을 낀 손으로 소요의 겨드랑이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소요는 마지못해 기름이 돌돌 도는 민어 부레를 받아 두어 번 씹고는 삼켰다. 그 모습에 만족한 아버지는 소요의 겨드랑이를 놓아주었다. 나는 소요의 손을 잡고 모래언덕을 뛰어다니다 불가사리를 발견하면 소요의 손에 놓아주었다. 우리가 윗옷을 걷어 보자기를 만들어 수북하게 불가사리를 모았을 때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여자의 발치에는 흉측하게 생긴 생선이 팔딱거렸고 아버지는 퉁퉁 부어오르는 여자의 검지와 손등을 살폈다. 아버지는 미역치라고 했다. 미역치의 독침은 뾰족한 등지느러미는 물론 아가미 근처의 가시와 가슴, 배, 지느러미에도 있고 독성이 강해 통증이 심하고 마비가 오기도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오른쪽 면장갑을 벗어 왼손에 겹쳐 끼고 미역치의 아가미 바로 밑을 꽉 움켜잡았다. 팔딱거리던 미역치가 잠시 움찔하는 순간, 아버지는 회칼로 미역치의 눈알을 도려냈다. 도려낸 눈알을 짓무른 후 눈알에서 나오는 액체를 여자의 손등에 골고루 발랐다. 신기하게 부풀어 올랐던 손등은 모래언덕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기도 전에 가라앉았다. 들 물 때가 되자 운동장만 했던 공간이 서서히 좁아졌다. 소요와 나는 모래언덕의 가운데를 팠다. 우리의 팔이 들어가는 깊이만큼 파고 그곳에 불가사리를 넣고 모래로 덮었다. 발목을 적시며 목선에 올라 뒤를 돌아보았다. 배꼽처럼 솟아난 모래언덕에 붉은 불가사리들이 떠오르다 모래언덕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환상처럼.


바다를 매립해 세워진 신도시의 높은 건물 틈새로 드러난 하늘에 흰 구름이 두텁게 뭉쳐 있었다. 음식점과 학원가가 밀집한 지역을 벗어나면 금세 도로는 텅 비었다. 타워크레인이 달린 공사 중인 건물 어디에도 일하는 인부들이 보이지 않았다. 차는 간헐적으로 지나다녔고 아파트와 높이 치솟은 빌딩 입구 근처에서만 간간이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고정 인구와 유동 인구가 살고 있는지 아는 바가 없었지만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와 상가에 비해 살아가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는 것은 하루만 이 도시를 걸어보면 셈이 나왔다.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름 안개가 짙어지는 초저녁 하늘에는 구름이 빌딩들을 훑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겹친 구름이 만들어 내는 회색 테두리를 유심히 보았다. 테두리에서부터 모래가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얼굴 위로 빗물이 떨어졌다. 한 점, 두 점, 내리 떨어지던 비는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세차게 쏟아졌다. 간간이 인도에 보이던 사람들도 비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촘촘히 쏟아지는 비는 순식간에 옷과 몸을 적셔놓았다. 양산이래도 있었으면 비를 피할 수 있었을 거였다. 붉은 양산을 떠올리며 걸음을 빨리했다. 세계의 여러 국기를 꽂아놓은 텅 빈 대로변을 걷다 보니 어느결에 비는 멈췄고 어디선가 접은 우산을 든, 젖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다시 음식점과 학원가가 밀집해 있는 지역 앞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물을 짜낸 구름이 삶아 빤 옥양목처럼 하얬다. 모두 바짝 말랐는데 회색 도로와 나만 젖었다. 방향을 바꾸어 근린공원을 향해 걸었다. 웃자란 공원의 여름 잡초에서 날벌레들이 튀어나왔고 인공연못에서는 물비린내가 났다. 연못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소나기가 내렸음에도 연못의 수위는 아침보다 한 뼘은 낮아졌다. 밤에는 다시 물이 차오를 것이다. 연못의 바닥은 원래 이곳의 바다에 닿아 수위가 바뀌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아버지 머리에 고였던 피는 머리에 구멍을 내고 호수로 뽑아냈지만, 서서히 다시 고였다. 아버지의 몸속을 돌던 피들이 머리에 몰려 올라간 듯 피가 고였고 빼고 나면 다시 밀려들어 찼다. 의사는 종이에 머리통의 윤곽을 그렸다. 머릿속을 감싸고 있는 막은 일반인의 것보다 세 배는 얇았다. 피는 왼쪽 뒷머리 근처 혈관이 터진 것과 상관있지만 피가 고이는 속도로 봐선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머리에 구멍을 뚫고 피를 뽑아낼 때마다 아버지의 얼굴은 핏기가 가셔 점점 하얘졌다. 세 번째 머리에서 피를 뽑아낸 후 대학 병원 의사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며 난감해했다. 다시, 저절로 피가 머리에서 빠지지 않을까요? 내 질문에 의사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고였던 피가 저절로 마르기도 하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버지를 재활병원으로 옮긴 후부터 나는 아침이면 병원에 들렀다.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고 웃는지 원래 무안해지면 웃던 습관 때문인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핏기 없이 얼굴이 너무나 말갛게 웃고 있어 나는 슬픔을 토해내지 못하고 삼켜버렸다.

소요는 커피숍 흡연실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유리문 너머로 소요를 바라보았다. 흰 셔츠를 입은 소요는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앉아서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커피숍 밖을 지나가던 여자들이 흘긋거리며 소요를 쳐다보았다. 이 도시로 와 소요를 만날 때마다 변한 모습을 발견했다. 뭉툭했던 코끝은 날렵해졌고 눈은 쇳조각을 뚫을 듯 쏘아보았다. 손바닥만 한 얼굴은 근육이 굳어 바라보는 사람을 얼어붙게 했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흡연실 안으로 가 바로 앞 의자에 앉자 소요는 비에 젖은 내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소나기를 만났어.”

소요는 가방에서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나는 말없이 구김이 없는 흰 셔츠와 각을 맞춰 접어놓은 손수건을 봤다. 강력한 에어컨의 냉기가 젖은 옷에 닿아 소름이 돋았다. 

“이미 스며들었는데, 뭐.”

소요는 손수건으로 조각도로 새겨놓은 듯 얇은 입가를 훔쳤다.

“아침에 또, 아래층에서 인터폰이 왔어.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린대. 집주인 전화번호를 알려달래. 아래층에 물이 새면 윗 층에서 방수 공사를 해야 한다더라.”

“나도 집주인이 누군지 몰라. 당분간 욕실에서 물 쓰지 마.”

“집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내가 있어도 되는 거야? 보트 하우스에서도 널 찾던데.”

“일하러 가야 해. 내 연락처 함부로 알려주지 마.”

 

-계속-


박정윤 소설가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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