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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레가 만난 사람] 벽화로 그리는 사람 사는 세상, 이진우 화가
  • 고요레 기자
  • 등록 2025-08-18 13:12:56
  • 수정 2025-08-18 21: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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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람과 함께, 사람 속에서, 사람을 그리다

 고흥 갯벌에서 이진우 화가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 인천 열우물마을은 벽화마을이라 불렸다.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색적인 마을 풍경에 인천시는 여행 추천 목록에 이곳을 올리기도 했고,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 벽화마을이라는 통영 동피랑마을보다 먼저인 1997년 이곳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사람은 자칭 '왕거미'인 '거리의 미술가' 이진우 화가다. 서구 강남시장에서 한참을 걷다 도착한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큰 키만큼이나 씩씩한 목소리로 밝게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지금 두 곳에서 개인전 중이라고 들었는데,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송도 연수김안과갤러리에서 27번째 개인전 <마주하다>를 하고 있어요. 인천 북성포구, 전남 영광군 송이도, 제주의 밭담길, 고흥의 바다 등 살면서 마주한 풍경과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고흥에 있는 녹동 수에즈카페갤러리에서는 26번째 개인전 <고흥연작>이 전시 중이고요.


태어난 고흥을 떠난 지 오래되셨는데, 고흥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보았습니다. 작가님에게 고흥은 어떤 곳인가요?


1964년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로 고등학교 갈 때까지 살았습니다. 인연 따라 살다 보니 지금은 인천에서 살고 있지만 저는 고흥미술협회 소속 작가입니다. 그만큼 저에게 고흥은 정체성의 한 축입니다. 지금도 자주 가는 이유이지요.


어린 시절, 소 먹이러 날마다 산에 갔어요. 그 때마다 바라본 노을과 고흥의 풍광은 미적 영감이 됐고, 평생 그림을 그리는 씨앗이 됐어요. 흔히 고흥을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미술관에서 자란 셈이지요.


바다의 밭, '감태걷이 2', 60.6  x  72.7cm. 캔버스에 아크릴. 2020

1980년에 광주동신고에 입학했어요. 남다른 고1을 보내셨을 거 같은데요?


맞아요. 입학하자 미술부에 들어갔어요. 활동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어요. 텔레비전에서는 간첩이 소요 사태를 일으켰다고 떠들고 있었는데, 제가 본 것은 달랐어요. 전남대 입구 굴다리에서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을 직접 봤으니까요. 총 맞은 시민들의 처참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공수부대가 떠난 뒤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에 분노했고, 무자비한 폭력이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몰라 떨어야 했어요. 책임지지 않은 폭력이 오랫동안 묵인되는 걸 보면서 언론의 무책임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진실은 어떻게 호도되는가에 대한 생각도 했고요. 국가에 의한 폭력을 직접 겪은 고등학교 시절 경험들은 제가 살아가는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지요. 고2 미술 시간에 꽃병 정물화를 그리는데, 피흘리는 꽃을 그릴 정도였으니까요.


대학생활도 광주에서 하셨는데, 인천 삶과 어떻게 연결이 될까요?

 

1987년, 군 제대 후 3학년 복학 전에 학비를 벌려고 인천에 왔어요. 누나가 살고 있었거든요. 석남동 사출공장에서 일을 하다 복학했어요. 이것을 계기로 인천에 정착하게 됐을 거예요. 복학하고 얼마 안 있어 연세대 1학년 이한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어요. 1980년의 악몽과 겹쳐지면서 광주에서는 최루탄 추방 운동이 크게 일었어요. 이한열 열사가 광주에서 자랐기에 분노는 더 커졌을 거에요. 많은 시민이 사직공원으로, 중앙로로 모였고, 민주화를 갈망하는 함성은 무척 뜨거웠어요.


열우물길 프로젝트 계단 벽화 그리기(2008년)

그 해 6월항쟁과 조선대 농성을 겪으면서 학교는 학생과 교수가 주체여야 한다,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내가 하고 있는 미술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미술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1989년 졸업 후 서울에 와서 '가는패'라는 현장 미술활동 단체에 들어갔어요. 미술의 주인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지요. 노동자들 파업 현장에서 미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도와 걸개그림 제작 등을 했어요. 나중에는 서울 민중미술운동연합으로 확대됐고 그 때 활동들로 1991년 구속되기도 했어요. 


열우물길 프로젝트 타일 벽화 그리기(2015년)이제 벽화 얘기를 좀 할까요? 공공미술로서 벽화 작업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1995년 인천 열우물 달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1997년 IMF가 터진 거예요. 공사판에서 일하던 가장들이 일자리가 없어지니 낮부터 슈퍼마켓에서 술을 마셨어요. 그러다 보니 마을 이곳저곳에서 부부싸움 소리가 들리고, 결국 이혼하는 가정이 생겼어요. 그 사람들의 상황들을 외면할 수 없었죠.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인데, 벽화를 통해 이 사람들과 희망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벽화를 처음 그린 건 1997년이었어요. 해님공부방 벽에 그렸더니 어른들도 좋아했지만,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이후 주민들 요청이 이어졌어요. 2002년 본격적으로 벽화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열우물길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벽화 작업뿐 아니라 미술프로그램, 마을사진전, 영정사진 찍어드리기 등을 2016년까지 했어요. 마을 주민들은 이 프로젝트의 관람자이자 주체였어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산곡동 무지개 프로젝트'도 했어요. 산곡초, 마곡초 아이들, 신협 직원들, 거미동 봉사자들 모두 힘을 모아 마을 벽화 그리기와 다양한 미술 활동을 했어요. 이때 깨달은 게 있어요. 경치 좋은 곳보다 제가 사는 곳을 그리는 게 더 좋더라고요.


산곡동 무지개 벽화 프로젝트(2018년)벽화 전문 봉사단 거미동 대표이신데, 활동이 궁금합니다.


2000년 다음 카페에서 '거미동'을 만들었고 지금은 전국 4,800명 정도 됩니다. 만 명이 넘은 적도 있어요. 서울, 고양, 양평, 부평, 전남, 부산, 경북, 원주 등에서 자체적으로 카페를 통해 활동합니다. 카페나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신청이 들어오면 인건비 없이 재료비만 받고 해요. 주로 복지관이나 학교, 마을길, 기업체 사회 공헌 활동 쪽에서 신청이 들어와요. 


작가님에게 벽화 작업과 회화 작업은 서로 어떤 관계일까요?


맥이 같지요. 다르다고 할 수가 없어요. 삶의 터전과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캔버스가 무엇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같습니다.


     [산곡동 연작] 그 집의 온도, 60.6 x 72.7cm, 종이에 수채, 2021, 부평역사박물관 소장

앞으로 활동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9월 중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열무물마을 연작', '산곡동 연작' 등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작업실 근처 강남시장에서 프로젝트도 열고 싶어요. 그곳 사람들의 삶을 화폭에 담으려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 정신적 태동인 고흥을 나만의 표현 방식으로 전형화, 정형화하고 싶은 게 계획이자 소망입니다.


그간의 활동이 사람 속에서, 사람과 함께, 사람을 그리는 일이었네요. 그 힘의 원천인 고흥에 가보고 싶어집니다. 건강하시고, 계획하시는 일들 잘 이루시기 빕니다.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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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streetart2025-08-18 22:33:34

    첫번째 사진, 니들이 게잡는맛을 알아?의 주인공입니다.
    고요레기자의 아름다운 글과 더욱 아름다운 사진에 매우 공감합니다.
    아주 좋은 기사, 정말 멋진 기사입니다.
    물론 제가 나왔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밤이예요. ^0^/

  • happyday2025-08-18 22:27:23

    작가님 밝게 웃으시는 모습에 저도 밝아지네요.
    벽화로 세상을 밝히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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