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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옥 산문] 별 같은 존재
  • 김원옥
  • 등록 2025-08-20 00:00:01
  • 수정 2025-08-20 21: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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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몽골에 간 적이 있다. 파란 하늘의 나라로 알려진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이곳저곳 며칠 동안 보게 되었다. 울란바토르에서 북동쪽 90km 떨어진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유산지인 테를지공원은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있는 특이한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여남은 명의 원주민이 말을 데려와 1달러를 내고 타라고 유혹한다. 나는 가장 몽골인처럼 생겼다고 생각되는 아저씨에게 1달러를 주고 사진 한 장 찍을 허락을 받았다. 초상권을 지불한 셈이다. 


칭기즈칸의 고향 몽근머리트에도 갔다. 그의 고향이라 해도 유적도 없고 숲이 우거져 있을 뿐이다. 유목민의 음식문화 체험 과정에서 양을 잡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유목민의 어느 집에 도착할 때 한 마리 양은 앞마당에 있는 작은 나무에 묶여 있었다. 양은 두려움에 떨며 그 큰 눈에는 눈물조차 그득 고여 있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무 주위를 뱅뱅 돌거나 오줌을 질금질금 지리기도 하였다. 예리한 칼로 신경이 없다는 목덜미 어느 부분을 조금 가르고 그 구멍으로 손을 넣어 숨통이라는 가느다란 2센티 정도의 붉은 신경줄 같은 것을 꺼내자마자 양은 가만히 누웠다. 


이것은 삽시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서 사라진 것이다.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배를 가르고 가죽을 벗기는 동안 양은 우리가 흔히 보는 살코기로 변하고 있었다. 8년을 살고 그 헌느(양)는 그렇게 이 지상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약육강식의 기막히게 냉정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양에게 고통 없이 죽는 배려를 했다.


풀이 가장 많이 자란(무릎 정도) 7월 10일에 나담축제가 열리는데, 그때가 아니지만 우리 일행을 위해 미니 축제를 열어 보여준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로 되면서 전통적 풍습은 일종의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씨름과 말달리기에서 1, 2, 3등을 한 사람에게 우리는 상금을 주었다. 즉석에서 나는 축하한다는 말을 배워 상금을 줄 때마다 '바이르후르기'라 말해 주었다. 


예술, 역사, 음식, 전통, 종교 등 우리를 위한 여러 가지 문화행사를 보았지만 그래도 몽골은 말과 양이 드문드문 있을 뿐인 너무도 맑고 조용한 나라, 유목민들처럼 푸른 하늘과 초원 그 사이에서 나도 말 타고 두어 시간 정신없이 달린 나라, 가슴이 탁 트이고 무상무념의 상태로 갈 수 있는 나라, 여명이 사막의 모래 물결을 아름답게 비추는 나라, 아들은 재산(말과 양)을 지켜야 하기에 재산을 관리할 능력을 기르기 위해 딸들을 공부시키는 나라, 키 작은 꽃들이 들판 가득 나브죽 엎드려 있는 나라, 곳곳에 어워(성황당)가 있는 나라, 시멘트로 지은 호텔 대신 게르가 있는 나라, 모래광야에 뿌연 물이 흐르는 톨강과 붉은 물이 흐르는 헬렌강이 있는 나라, 부처님께 언제나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나라, 몽골의 마지막 황제 복도 8세의 주치의였던 이태준 열사가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하다가 러시아의 볼쉐비키혁명으로 몽골로 밀려나 정권을 장악한 러시아 백군에게 체포되어 총살당한 나라, 짐승의 뼈일 것 같은 것들이 오랜 세월의 풍상에 허옇게 그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나둥그러져 있는 풍장(風葬)의 나라, 왕이나 촌장의 무덤일 거라는 돌무덤이 있는 나라다.


몽골 초원에서의 밤은 특별했다. 한국에서는 2,000여 개 별을 셀 수 있다는데 8,000개쯤 별을 셀 수 있는 히말라야 산꼭대기와 더불어 몽골은 세계 3대 별 관측지라 한다. 세상의 별들이 모두 모인 듯 손에 닿을 듯한 주먹만 한 별들이 내 앞으로 와르르 쏟아질 것 같다. 


별하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가 있다.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로 아기예수께 가 엎드려 경배하고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선물로 드린다. 황금은 왕권을, 유황은 신성을, 몰약은 죽음을 통한 희생을 의미한다. 별은 예부터 행인에게 길안내자였다. 사막이나 바다에서 길을 잃었을 때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아갔다고 하지 않은가. 


한 나라를 움직이는 권력의 정치 능력 여하에 따라 국민의 삶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 이제는 자신의 측근만을 지키려고 애쓰지 않고 고통 없이 양을 보내는 몽골인의 배려와 같은 따뜻한 책임감으로서, 들판에 나브죽 엎드려 피어난 꽃처럼 겸손한 정치인으로서 유황과 몰약을 선물로 받을 자격이 있어 국민의 가슴이 탁 트이는 나라를 만들 수는 없을까. 몽골의 밤하늘처럼 맑고 밝은 별, 사람들이 감탄하며 바라보는 별같이 아름다운 권력의 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김원옥 시인

덧붙이는 글

김원옥 시인은 『정신과 표현』으로 등단했고 숙명여자대학교 불문과,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루앙대학교 불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양대, 숭실대 등에 출강했고 인천광역시 문화원협회장 및 인천시 연수문화원장을 역임했다. 역서로는 -「실존주의」 (폴 풀끼에, 탐구당), -「사랑은 이름표를 묻지 않는다」 (앙드레 피에르 드 망디아르그, 예전사) 등이 있고 시집 「바다의 비망록」, 「시간과의 동행」, 「울다 남은 웃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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