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평선이 그어져 있다 그 부분까지 끓는 물을 붓는다 오랜 기간 썰물이던 바다, 말라붙은 해초가 머리를 풀어 헤친다 건조된 시간이 다시 출렁거린다 새우는 오랜만에 휜 허리를 편다 윤기가 흐른다 순식간에 만조가 되면 삼분 만에 펼쳐지는 즉석바다, 분말스프가 노을빛으로 퍼진다 그 날도 그랬지 끓는점에 도달하던 마지막 1°는 네가 이유였다 주의사항을 무시한 채 추억의 수위는 수평선을 넘나들고 앗, 끓는 바다를 맨 입술로 그 날의 너처럼 빨아들인다 그 날도 노을빛이 퍼졌다 그 흔적, 바다가 몰래 훔쳐보았다 그 바다에 추억을 데이고, 입안이 까실하다 텅 빈 용기 안, 수평선이 그을려 있다
-안시아 시인의 시 '새우탕' 전문
안시아 시인의 시집 《수상한 꽃》에 실려있는 시다.
이 시를 끌고가는 중심은 "수평선"이다. 컵라면의 '물선 표시'가 "수평선"으로 인식되는 순간 "바다"라는 공간이 오고 기억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끓는 물은 삼분 만에 만조가 되어 용기 속 말라붙은 내용물과 건조된 시간을 출렁이게 한다. 분말스프는 노을빛으로 번지고 면발은 물결이 되고 새우는 휜 허리를 편다.
그때의 바다처럼 끓는 점에 도달하던 마지막 1°는 네가 이유였다. 주의사항을 무시한 채 수평선을 넘나들며 끓는 면을 맨 입술로 "그날의 너"처럼 빨아들인다.
"끓는 점"은 과학적 수치이지만 시에서는 '심리적 임계'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바르트는 <애도일기>에서 '사랑은 단 1그램의 감정으로 전체를 뒤흔든다'라고 했다. 기억 만으로도 추억을 데이고 입안을 까실하게 한다. 그날의 감정을 호출하고 몸의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도 "텅 빈 용기 안에 수평선이 그을려 있"다. 부재 속에서도 흔적은 남아있고 그 흔적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간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면서 물질적 상상력을 펼치고 이미지들을 형상화해가는 시인이 그려진다. 참 맛깔스러운 시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아이즈 앨범' 1999년 어느 겨울 새벽
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얼어 붙은 땅에 노란 납매 그리고 동백
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