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때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12-07 00:32:40
  • 수정 2025-12-07 12:21:07

기사수정

어향숙 시인


늘 노래하면서도 노래가 되지 않는 새들과

죽음 이야기 하면서 죽지 않는 할머니

실제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새장이 문을 열었다

말 못하는 새를 찾으러 나섰다

 

악한 사람들도 모르면서

새는

놀란 입술을 가지고 어디로 갔을까

 

누가 새를 찌를 때

새는 여전히 노래할 수 있을까

 

이 나무에서

저 나무에서

벌써 찔린 새들이 다른 목소리로 울고 있다

발견되려는 기쁨을 가지고

 

나뭇잎 밑에 서있는 사람들

얼굴도 모르면서 우는 새를 쳐다보고 있다

노래하는 줄 알았다

서로 보면서도 산산이 흩어져 있다

 

길까지 들린다

숨 쉬는 가슴에서 나오는 아픈 새의 노래

내장까지 긁히는 강물 소리까지

 

나무들이 불안하게 서있다

듣지 않는다

눈을 뜨지 않는 것과 같다

 

새소리가 귀를 유혹했다

강물 소리가 귀를 유혹했다

 

서로 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말한다

 

세계는 해체될 수 있다

귀 하나로 모든 문이 열리다 닫히고

문틈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문자 시인의 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때' 전문 

 


이 시는 계간 《시와 사상》 2024년 겨울호에 실려있다.


시처럼 우리는 소통이 부서진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늘 누군가와 톡으로든 인스타그램 등등으로 무수한 말을 하고 있지만 서로에게 가닿는지는 의문이다. 인터넷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듯해도 마음은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알고리즘 등의 영향으로 점점 더 한쪽으로만 치우치고 불통은 심화되고 있다. 유혹하는 소리를 함께 "보면서도 산산이 흩어져 있"는 존재들이 되어간다.


자크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처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문틈(휴대폰 등등)으로 서로 다른 세계를 살며 말은 서로에게 도달하지 못한 채 미끄러지고 비껴가고 어긋난다. "새"는 할머니-나무-사람으로 변주하며 늘 "발견되는 기쁨을" 욕망하고 노래하지만 노래가 되지는 않는다. 마지막 연의 경고처럼 이런 "세계는 해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각자의 휴대폰을 닫고 옆 사람 말에, 사물들 말에 귀기울이는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될 지도.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수출입동향] 2025년 12월, 수출 7000억 달러 시대 개막…반도체 1734억 달러로 역대 최대 대한민국 수출이 AI 열풍을 타고 7000억 달러 벽을 넘으며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2025년 연간 수출액이 전년 대비 3.8% 증가한 7097억 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일평균 수출도 26.4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심화와 미국의 관세 장벽 등 대외 악재를 뚫고 이뤄낸 성과다.무역수지는 체질 개선에 성공하며 연간 780..
  2.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비빔국수 비빔국수를 시켜 놓고 끼니때마다 비빔국수를 먹을 수 있다면 행복이겠다 싶다가 나는 왜 이 비빔국수가 좋을까 자문하다가 비빔이라는 말에서섞임에 백기 든 사람처럼 잠깐 헝클어지다가 갓 나온 비빔국수를 젓가락으로 뒤섞는다 설기 썬 상추와 채 썬 오이 위에 앙증맞게 얹힌 한 알의 메추리알까지 흰 면을 슬몃슬몃 내주고 무서움도 매...
  3.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나비 가늘고 긴 다리는 망설이고 있었다향기가 더듬이를 떠날 때까지아무도 보지 않는데 가끔은양면을 펴서 평평하게 엎드렸다가꽃빛에 반해서 얼굴을 대는 동안바람은 날개를 붙잡고 꽃대는 휘청거려어디선가 물방울도 듣고 있는펴졌다 구부러지는 입의 모양모았다가 벌어지는 어깨가 넓어진다꽃가루가 묻으면서 공중에서 깊게 무늬들이 박.
  4. [한국은행 경상수지] 2025년 11월 122억 달러 흑자...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조선업 훈풍 2025년 11월, 대한민국 경상수지가 122억4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1~11월 흑자 규모를 1018억2000만 달러가 됐다.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5% 증가한 601억1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외화 유입을 주도했고, 수입은 468억 달러로 0.7% 감소했다. 수출은 늘고 수입은 줄어드는 구조 속에 상품수지는 133억1000만 달러 흑자를 달성하며 전체 경상수지 개선을 ...
  5. [수출입동향] 2025년 12월 수출 695억 달러로 역대 최대…반도체가 끌고 무선통신기기가 밀었다 2025년 12월 대한민국 수출이 새 역사를 썼다. 반도체 업황 회복과 무선통신기기의 선전에 힘입어 지난달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갈아치운 것이다.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3.3% 증가한 695억 달러를 기록하며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2025년 6월 이후 7개월 연속 이어진 증가세다.수입은 4.6% 늘어난 574억 달러를 기록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