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시아의 호모룩스(Homo Lux) 이야기] 우주의 응원
  • 박정혜 교수
  • 등록 2025-01-06 00:00:01
  • 수정 2025-01-14 21:48:22

기사수정


 새해다. 축하를 주고받기가 미안할 지경이다. 무안 공항의 통곡과 함께 새 아침이 밝았다. 이곳저곳에서 명복을 빌고 있다. 답답하고 원통한 마음이 새해로 이월되었다. 세월호 참변 때는 ‘바다’라는 단어를 꺼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철새’라는 단어가 그렇다. 바다나 새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도 ‘새’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가 꺼려진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나날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든 것이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 같다.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일밖에 남지 않은 것만 같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뒤틀리고 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다. 무연하게 자신을 내팽개치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온 세상이 째려보고 쏘아보는 것 같다. 어깨는 처지고 가슴은 휑하다. 돌연 낙엽 하나가 내려앉았다. 그게, 뭐 대수인가? 그저 낙엽인데? 어쩐지 가슴이 뭉클거린다. 바람은 수천 개의 손가락을 움직인다. 나무는 수만 개의 지문을 연다. 햇살은 수억의 햇살을 머금는다. 그때, 고달프고 스산한 마음을 알고 있다며 하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김사인의 시 ‘조용한 일’의 전문은 이러하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 고맙다 /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난은 물러나지 않았고 혼란은 멈추지 않았다.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며, 분열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거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막막하다. 걷잡을 수 없는 혼동으로 어수선하기만 하다. 그 순간에 내려앉은 낙엽쯤이야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렇지가 않다. 몽글거리는 가슴으로 보면, 보인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소질이 ‘신비로운 것에 대한 놀라움’이라고 했던 독일 작가 괴테의 말처럼 경이로움이 스며든다. 너무 많기에 오히려 보이지 않는 눈과 귀를 가진 하늘이 슬쩍 잎사귀 하나를 곁에 떨궈준다. “염려하지 말라,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될 것이다.”라며. 

 

 그런데도 자꾸만 한숨이 쉬어진다. 그저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해결이 되는 걸까? 언뜻 보면, 긍정을 담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데도 조용히 여명은 다가오고 있다. 어쩌겠는가. 어김없이 새해가 왔고, 희망을 부르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렇게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려고 하면, 놀랍게도 들린다. 온 우주가 보내는 강렬한 응원이! 지금은 ‘희망’을 말할 때다. 여전히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다. 

 

 

 

 

 

 

 



 *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 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덧붙이는 글

박정혜 교수는 시-2006년 <시와 창작>신인상과 2015년 <미래시학>신인상을 받았고, 소설-2004년 <대한간호협회 문학상>과 2017년 <아코디언 북>에 당선되었다. 현재는 심상 시치료 센터장이며 전주대학교 한국어문학과,전주비전대학교 간호학과, 한일장신대학교 간호학과, 원광보건대학교 간호학과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가스공사, 10억 투자해 평택 가스화재훈련센터 내 실내 체험관 새단장 한국가스공사가 평택 가스화재훈련센터 내에 실내 체험관을 새롭게 단장해 국민과 임직원을 대상으로 재난안전 체험 교육을 시행한다.가스공사는 21일 김환용 안전기술부사장 등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체험관 개관식을 진행한 것. 김 부사장 등은 재난 교육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 시설 안전성과 교육 효과성을 점검하는 시간도 ...
  2. 인천의 문화·도시 연구 위해 인문학자·문화예술인·도시행정가·언론인·시민 모였다···19일 '인문도시연구소' … 인천문화와 도시 연구자들이 <인문도시연구소>(Humanistic City Institute)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연구소는 구월동에 마련했다. 19일 개소식에는 인문학자와 문화예술인, 도시행정가, 언론인,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인천과 도시에 관한 인문학적 연구 및 연구방법론 체계화, 인천과 도시에 대한 정보 및 연구 ...
  3. 하나은행, 국민·농협·신한·우리·IBK과 공동 본인확인서비스 MOU 체결···"인증서 부정사용·금융피해 방지한다" 하나은행이 21일 국내 주요 은행(국민·농협·신한·우리·IBK)과 함께 은행권 공동 본인확인서비스 추진 및 마케팅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금융권 인증서는 금융기관 특유의 강화된 다중 보안 시스템을 갖췄으며, 이용자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본인확인' 수단이다. 그동안은 은행별로 사용했는데 이...
  4.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멀리 쑥꾹 쑥꾹 쑥꾹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
  5.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건망증1 창문을 닫았던가출입문은 잠그고 나왔던가계단을 내려오면서 자꾸만 미심쩍다다시 올라가 보면 번번이잘 닫고 잠가놓은 것을퇴근길 괜한 헛걸음이 벌써한두번이 아니다오늘도 미심쩍은 계단을그냥 내려왔다 누구는마스크를 쓴 채로 깜박 잊고가래침도 뱉는다지만 나는그런 축에 낄 위인도 못된다아마 잘 닫고 잘 잠갔을 것이다혼자 남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