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마셔도
혼자가 아니어서 좋다
흙바닥을 쪼던
딱딱한 부리 속에
부드러운 혀가 숨어 있다
귀를 기울이면
그윽한 말 중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말이 있다
원망, 그 한마디 말보다
날개를 키워왔다는 말
내 목구멍을 핥아줄 때
두 눈을 잃은
절망의 부기가 가라앉는다
식어가는 찻잔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 말까지 마시고 나면
세상 구석 미세한 소리조차 받들어 마시는
창문 밖 저 귀가 큰 겸손한 고요
덩치 큰 어둠의 입술도 달싹거린다
-손병걸 시인의 시 '작설차를 마시며' 전문
이 시는 손병걸 시인의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에 실려있다.
'작설雀舌'은 보통 곡우(4월 20일) 전후에 딴 찻잎 새순을 말한다. 꼭 '참새의 혀'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화자는 이 작설차雀舌茶를 혼자 마셔도 혼자가 아니어서 좋다고 말한다. 흙바닥을 쪼던 부리 속 부드러운 혀들이 그윽한 말을 들려준다고 느낀다. 그 말들은 "원망"보다 "날개를 잘 키워왔다"고 위로해 준다. 찻잔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정성스레 마시면서 세상 구석 미세한 소리조차 받들어 음미해 본다. 귀가 겸손해질수록 덩치 큰 어둠의 입술도 달싹거리는 것 같다.
손병걸 시인은 나이 서른 즈음에 두 눈을 잃었고 그후 오랫동안 탄광굴에 갇힌 짐승처럼 절망으로 골방에 움츠려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새벽, 출근하는 이웃들 발소리가 마치 빛처럼 겹겹이 쌓인 어둠을 뚫고 들려왔단다. 그래서 그 희미한 빛으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열 개의 손가락 끝과 다른 감각들이 눈을 대신한다. 특히 소리로 많은 것을 잘 본다. 언젠가 모인 사람들 목소리만 듣고도 키, 몸무게까지 정확하게 맞춰 놀랬던 일화가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 쓴 '작설雀舌'이란 시에 "一啜雲腴雙眼明 운유차 한 모금 마시니 두 눈이 밝아진다"는 구절이 나온다. 아마 시인도 이런 운유처럼 깊은 작설차雀舌茶를 마시며 눈이 밝아질 것 같은 큰 위안을 받고 시적 사유도 깊어졌으리라 짐작된다. 시의 울림이 크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듯 절망 안에서도 희망은 어느 구석에선가 숨쉬고 있다. 그 희망이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간절히 원한다면 반드시 빛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도 인류사상 최고의 곡이라고 일컫는 '교향곡 9번 합창'을 작곡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차를 한 잔 마시고 싶다. 뜨거운 물이 찻잎을 우려내는 시간을 기다리며 공간 가득 퍼지는 은은한 향을 음미해도 좋을 것 같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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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