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에 도착했어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 더 많았지만
아무것도 아니면 어때
지는 것도 괜찮아
지는 법을 알았잖아
슬픈 것도 아름다워
내던지는 것도 그윽해
하늘이 보내준 순간의 열매들
아무렇게나 매달린 이파리들의 자유
벌레 먹어
땅에 나뒹구는 떫고 이지러진
이대로
눈물나게 좋아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
여기 도착했어
-문정희 시인의 시 '도착' 전문
이 시는 문정희 시인의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에 실려있다.
가끔 나름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어느날 돌아보면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에 도착'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기대했던 것 만큼 일이 잘 안 풀렸을 수도, 남들은 앞서 가는데 나만 뒤쳐졌다고 실망할 때도 있다.
그러다 달리 생각해보면 '하늘이 보내준 순간의 열매들'이 있었고, 아무렇게나 매달리고 나뒹굴 수 있는 자유도 누렸다. 좀 벌레 먹으면 어떻고, 떫고 이지러지면 어떻는가. 이렇게 좋다고 생각하면 또 다 좋은 거 같기도 하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말자'고 가르친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을 사랑하라'고 한다.
시처럼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나무와 같이 자연의 질서에 맞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과거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지혜도 필요할 것 같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아이즈 앨범' 1999년 어느 겨울 새벽
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얼어 붙은 땅에 노란 납매 그리고 동백
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