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착한 곳은 비린내 가득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마을이래야 바다를 쳐다보며 열 집 남짓 일렬로 줄지어 있는 것이 끝이었다. 아빠는 왼쪽 끝 집 앞에 트럭을 세웠다. 집 옆에 있는 공터는 가파른 절벽 산과 인접해 있었고 산 중턱에는 군인 초소가 있었다. 나는 트럭에서 내려 저릿한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내가 생각했던 바다가 아니었다. 넓은 모래사장 대신 가파른 모래 언덕이 있었고 그나마 모래 언덕에는 억센 미역이 시커멓게 올라와 있었다. 물미역 냄새와 비린내가 뒤섞여 속이 뒤집혔다.
“아빠, 이런 촌구석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랐어?”
아빠는 씨익 웃으며 외벽을 새파랗게 칠한 대문 없는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근거림은 슬리퍼를 신으며 반갑게 달려 나오는 여자를 보며 급속도로 멈춰버렸다. ‘맙소사, 저런 여자가 아빠의 첫사랑이었다니.’ 여자는 수줍은 기색도 없이 아빠를 보고 얼싸 안았다. 촌스럽고 짜증나는 스타일이었다. 억수로 반갑네, 야가 니 딸이나, 완전 인형이구나. 이게 뭐나? 난 비행긴 줄 알았네, 쟈가 살 집이나, 최신식이네. 나는 여자와 말을 섞기도 싫었고 저런 여자와 아빠가 첫사랑을 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배고프나, 손 씻고 들어와. 아빠와 나는 마당 수돗가에서 손을 씻었다. 손을 씻은 아빠가 바다를 돌아보고 웃었다. 아빠의 허리선까지 바다가 배경이 되어서인지 웃음이 새파랗게 튀어 오르는 것 같아 괜히 심술이 났다. 여자는 둥그런 알루미늄 상에 흰 밥과 고추장 국물을 풀어놓은 대접 하나만 떡 올려놓았다. 기가 막힌 것은 아빠가 그런 상을 보고 눈을 빛내며 바짝 다가앉았다는 거였다. 야, 지방 가자미 물 회구나. 아빠는 여자가 컵에 따라주는 소주를 마시고 대접을 들어 국물부터 마셨다. 밥을 물 회 대접에 붓고 비볐다. 숟가락으로 국물이 넘치도록 한 숟가락 퍼 입에 떠 넣었다. 입에 넣자마자 곧바로 한 숟가락을 미리 퍼 놓았다. 나는 젓가락으로 대접에서 양파와 회를 골라 먹었다. 회를 씹다가 곧바로 뱉어냈다. 생선살에서 뼈가 씹혔고 비린내가 났다. 야가, 노랑 가재미를 먹을 줄 모르는 구나. 여자는 실망한 표정으로 일어나 부엌으로 가더니 돌김을 가져왔다. 여자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야, 추운데 아직도 돌김을 직접 하나? 그럼 바위틈에 개락인데 뭣 하러 돈 주고 사먹어. 여자의 억센 말투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럴 마음도 안 생겼다. 그나마 밥을 김에 싸서 간장에 찍으니 먹을 만했다. 여자는 아빠가 마신 컵에 자신이 술을 따라 마셨다. 술을 마시고 입술을 손으로 훔쳤는데 술꾼 같고 촌부 같아서 쳐다보기도 싫었다. 나는 밥을 먹고 발딱 일어났다. 아빠, 화장실 가고 싶어. 여자가 마당에도 화장실이 있고 마루에도 신식 화장실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는 트레일러 놓을 자리를 여자와 상의했다. 마당 안은 화장실과 수돗가로 인해 공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여자의 집 외벽에 바짝 붙여놓기로 했다. 큰 윈도우는 바다를 향해 있고 오른쪽 보조 윈도우는 여자의 마당을 향했다. 여긴 안 위험해, 저기 산 중턱에 군인 초소 있잖아, 쟈들이 밤낮으로 지켜줘. 아빠가 트레일러의 물탱크와 여자네 수도관을 연결하고 자가 전기 발전기를 설치하는 동안 여자는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었다. 간장 졸이는 냄새가 마당을 지나 트레일러 안까지 스며들었다. 음식냄새에 겨우 진정된 속이 다시 뒤집혔다. 이거 도루묵 조림 냄새 아냐? 그렇지, 벌써 또 침이 괴지? 나는 여자네 집 쪽 트레일러 윈도우를 닫아버렸다.
잠결에 술 냄새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빠는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내 뺨에 비볐다. 저리 비켜. 에이 우리 천사 화났어? 촌스런 첫사랑 아줌마랑 키스했어? 잤어? 무슨 말을 그렇게 밉게 해. 앞으로 여자 만날 때 나한테 허락 받아, 엄마한테 그렇게 당해놓고 여자가 좋아? 흐허. 아빠는 여자 보는 눈이 너무 없어. 내 딸이 천사라는 것은 알아. 그럼 앞으로 천사 말 좀 고분고분 들어. 어, 그래.
무언가 휙, 지나가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동시에 바다로 면한 트레일러 윈도우에 그림자가 지나갔다. 무선 LED 조명까지 덩달아 흔들렸다. 나는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뺐다. 월드 뉴스를 말하던 앵커의 목소리 대신 파도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 숲에 어떤 소리가 섞여 들렸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모래 구덩이를 파헤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아니, 사람의 울음소리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배 모양의 LED 조명을 들고 윈도우 쪽으로 갔다. 검고 평평한 바다에 달빛만 반짝였다. 소금을 뿌려놓은 김 같았다. 파도도 없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할 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곧이어 쿵하고 누군가 트레일러를 쳤다. 핸드폰을 들고 윈도우로 갔다. 방충망을 들어 올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한 남자가 트레일러 바디에 기대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딱하기도 해라. 엄마한테 지독하게 당한 아빠도 저렇게 소리 내 울진 않았다. 나는 남자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먼 바다에 조그맣게 출렁이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촌스런 첫사랑 여자는 저 불빛이 오징어 배라고 했다. 나는 촌스런 여자가 몹시 거슬렸고 못마땅했지만 여기 있는 동안은 그냥 봐주기로 했다. 어차피 난 구 개월 후에는 기숙사로 돌아갈 거였다. 트레일러 바디에 기대 울던 남자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바다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가파른 모래 언덕을 훌쩍 타넘으며 바다로 향했다. 나는 남자가 바닷물에 뛰어드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 어디로 신고를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남자는 바다 앞에 서 있기만 했다. 잠시 후, 몸을 부르르 떨더니 뒤돌아서며 지퍼를 채웠다. 남자는 휘적휘적 모래언덕을 타올라왔다. 취했는지 모래 속에 발이 빠지는지 걸음이 위태로웠다. 남자는 곧바로 트레일러로 걸어왔다. 바다를 배경으로 품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선해 보이는 것일까. 키는 커다랬다. 전체적으로 거무스레했고 삐쩍 마른 선한 인상이었다. 남자는 다시 트레일러 바디에 기대 울기 시작했다. 정말 딱했다.
“저기요, 여기 제 집이거든요?”
남자는 창밖을 내다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옷소매를 당겨 눈을 비볐다.
“당신 누구요? 왜 거기 있소?”
“내가 누군지 알 것 없고, 여긴 내 집이니깐 딴 데 가서 우세요.”
남자는 바지 주머니를 뒤지더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고 바다를 향해 섰다. 담배를 한 개비 다 피우고 오른쪽, 파도 편의점 쪽으로 걸어갔다.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