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우리가 면회를 갔던 다음 날 새벽에 죽었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뽑아 타래를 만들어 목을 친친 감았다고 했다. 나는 내 혀가 뱉어낸 말 때문에 죄책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휴학계를 내고 온 날, 일층의 빨간 파라솔에 허물어질 것처럼 앉아있는 여자를 봤다. 엄마를 간통죄로 고소했다가 아빠의 부탁으로 고소취하를 해준 여자였다. 여자는 나를 보자마자 물을 달라고 했다. 보기에도 몸과 입이 바싹 말라 보였다. 나는 스파게티 가게 안으로 들어가 물 한잔을 떠왔다. 여자는 물을 천천히 마셨다. 여자는 이곳을 떠날 것이라 말했고 아빠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여자에게 아빠가 지방에 내려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여자가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봉투 끝을 한번 접고 다시 또 접었다. 아빠에게 전해달라고 말하고 여자는 정맥이 도드라진 팔로 탁자를 집고 일어나더니 마당을 가로질러 나갔다. 나는 이층으로 올라가 봉투 안의 서류를 읽었다. 봉투째 가스렌즈에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분무기로 불을 끄고 물티슈로 재를 닦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법의관의 소견서였다. 자살한 엄마의 뱃속에 12주 정도 되는 태아가 있었다. 엄마는 내 말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 낙태도 불가능한 그곳에서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눈을 찌르는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멀리 있는 군인 초소에서 서치라이트를 비췄다. 서치라이트는 바다의 수면을 샅샅이 들춰내고 내가 있는 바위 쪽을 훑었다. 서치라이트의 불빛에 뾰족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림자를 만들었다가 다시 어둠으로 뭉쳐졌다. 바위 무리는 얼마 멀지 않는 곳에서 끝났고 다음은 방파제였다. 사각뿔 모양의 테트라포드 콘크리트 블록이 이어졌다. 나는 서치라이트가 다가오기 전에 바위를 건너뛰었다. 바위에서 내려 모래사장에 발을 디뎠을 때야 다리가 후들거리며 모래 위로 고꾸라졌다. 신발을 벗어 모래를 털어내고 파도 편의점에 들어갔다. 거무스레하고 비쩍 마른 명태 같은 남자는 여전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컵라면을 꺼내들고 물을 끓여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남자가 말없이 느릿하게 일어나 방 한쪽에 설치된 가스렌즈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불을 켰다. 나는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밖으로 나가 바다 쪽으로 갔다. 왼쪽 끝을 보았다. 트레일러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트레일러를 보며 뒷걸음질 하다가 발목에 미지근한 물이 닿았다. 종아리 굵기의 파이프 관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바다로 흘러들었다. 비누 거품이 그대로 남은 물에서 역한 하수구 냄새가 났다. 남자가 트레일러 앞까지 와서 우는 이유를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어제 울지 않았다.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먹었다. 남자는 텔레비전을 켜놓지 않았고 라디오도 듣지 않았다. 적요하고 눅눅한 공간에 이따금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컵라면 국물까지 모두 마시고 지폐를 냈다. 남자에게 거스름돈을 받으며 말했다.
“어제는 왜 안 울었어요?”
그제야 남자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양쪽 눈썹 끝이 처진 눈에서 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트레일러의 단점은 가구 배치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바다로 면한 창 앞에 식탁이 놓여 있지만 의자에 앉으면 바다 귀퉁이와 하늘만 보였다. 의자의 위치를 바꾸려 해도 고정되어 있었다. 소파를 펼치면 침대가 되었지만 침대로 만든 상태에서는 화장실에 들어가려면 몸을 옆으로 돌려야 했다. 무엇보다 빨래를 하고 널 공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여자가 말한 신식 화장실에 놓인 세탁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세탁기 안에는 여자의 빨래가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부엌에서 요리용 집게를 가지고 와 여자의 빨래를 집게로 집어 대야에 담아놓고 몇 개 안되는 내 옷가지를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여자의 마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눈 바로 앞으로 새파란 물이 몰려드는 바다였다. 갈매기 무리가 모래 언덕에 뒤엉켜 있는 미역을 뒤적거렸다. 미역 사이에 잔멸치라도 있는지 갈매기들이 서로를 할퀴며 덤벼들었다. 어지러운 갈매기 소리에 속이 울렁거렸다. 여자는 요즘 풀이 죽었다. 아빠가 머물렀던 사흘 동안 나는 저녁 시간만 되면 트레일러에서 나갔다. 뾰족한 바위가 있는 바다를 지나 테트라포드 콘크리트 블록이 있는 방파제를 지나 배가 들어오는 항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아빠는 트레일러에서 잠들어 있었다. 첫날에는 내 핑계를 댔을 거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나를 기다려야 했고 상처로 비뚤어진 나를 어떻게 올바르게 제자리로 돌아가게 할 것인가에 대해 여자와 걱정하느라 술과 시간을 낭비했을 거였다. 그러나 다음 이틀 동안에도 아빠는 여자에게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자신의 첫사랑에게 예의상 포옹도, 키스도 하지 않았을 거였다. 분명했다. 당신, 여자 있어? 엄마는 아빠와 싸움 끝에 꼭 그렇게 말했다. 아빠는 기가 막혀했다. 당연했다. 아빠는 다른 여자를 사귈 용기도 없었고 엄마의 몸을 휘어잡고 파고들 마음도 없었다. 세탁기가 끝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내 옷가지를 꺼낸 후, 여자의 낡고 후줄근한 옷을 집게로 들어 세탁기 안에 넣었다. 며칠 전에 새로 산, 아빠가 머무는 내내 입고 있었던 꽃무늬 원피스를 집어 들었을 때, 여자의 후줄근해진 외로움을 봐버렸다. 아빠는 과외를 위한 원룸이 밀집한 대치동에서 나를 기다리며 교복을 줄여 입은 여학생을 숱하게 봤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여학생을 보며 아빠는 욕망을 혼자서 해결했다. 수학선생의 위경련으로 예상시간 보다 일찍 나온 날, 나는 까맣게 선팅 된 아빠의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문을 두드렸을 때 아빠의 당황하던 표정과 행동을 기억했다. 아빠가 급하게 차창을 열어놓았지만 말할 수 없는 비릿한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더워. 나는 뒷자리의 창문을 열었다. 원룸 입구 계단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살색 스타킹 속의 팬티까지 보이도록 다리를 벌리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는 여학생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싶었다.
울고 있던 남자는 내가 옆에 앉자 울음을 멈췄다. 나는 입을 벌렸다. 입 안 가득 들어온 바람이 가슴에 얹혔다. 저 미역은 매일 저렇게 올라오나요? 봄 내내 올라와. 오늘은 어떤 시인이 죽었나요? 김수영. 술을 마시고 걸어가다 마포구 구수동에서 인도로 뛰어든 좌석버스에 치였어. 그 시인이 죽은 날이어서 우는 거군요. 거짓말, 거짓말이다. 촌스런 여자는 파도 편의점 총각이 딱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왜요? 말 해 뭐해. 말한다고 딱한 사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럼, 애초에 말을 말던가, 입이 무거운 척 하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촌스런 여자가 입이 무겁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남자는 야상재킷 주머니에서 녹색 소주병을 꺼내 마셨다. 나도 좀 줘 봐요. 거, 휴학생이 자꾸 술 마셔도 되나? 남자는 머뭇거리다 병을 건네주었다. 나는 한 모금을 마시고 남자에게 병을 돌려주었다. 남자는 병을 받지 않고 다른 주머니에서 병을 꺼냈다. 우리는 말없이 각자 녹색 병을 들고 마셨다. 아빠는 오늘도 연락이 없었다. 경찰도 별다른 기록이 없었다고 말했다. 흥진기업 경리는 아빠가 한 달 일하고 월급을 받은 날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빠가 이곳에 사흘 동안 머물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니, 나는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인 첫사랑 여자의 집 옆에 트레일러를 놓자고 했을 때, 눈치 챘다. 트레일러가 이 바다에 도착했을 때부터 어떤 예감을 받았다. 아직 예감은 확인된 바가 없다. 그렇지만 자꾸 눈물이 났다. 남자가 코를 훌쩍이며 울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하늘에는 누군가 칼로 후벼 파놓은 상처처럼 날카로운 달이 떠 있었다. 큰 파도가 바다 속의 모래 언덕을 타넘고 몰려왔다. 자살한 엄마의 머리카락 같은 시커먼 미역이 내 발목을 휘감았다. 젖은 미역 냄새가 났다.
-다음주에 새로운 소설 ''이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