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인천시청에서 안학섭 선생 송환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재명정부는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역사적 책무를 안고 있다. 그 돌파구가 바로 '안학섭 송환'이라는 인도주의적 조치에서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송환이 단지 한 개인의 생을 위한 호소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생존 비전향 세계 최장기수 안학섭 선생(96세) 송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인천에서도 28일 송환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안학섭선생송환을촉구하는인천시민들'은 "안학섭 선생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간첩이 아닌 전쟁포로"라면서 본인의 뜻에 따라 즉각 송환하라고 촉구했다.
미군철수투쟁인천본부 지창영 공동대표 사회로 열린 이날 기자회견은 경과보고와 정세일 생명평화포럼 상임대표·용혜랑 진보당 인천시당위원장·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 상임대표·이적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공동단장의 송환 촉구 발언, 기자회견문 낭독 순으로 이어졌다.
용혜랑 위원장은 "제네바협약과 국제인권 규범에 따르면 전시 포로는 본국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면서 "전쟁의 상처이자 분단의 산물인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 선생 포함 여섯 분을 송환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이성재 상임대표는 "96세의 노병 안학섭 선생은 죽음을 앞두고 정치적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며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닌 인도주의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적 공동단장은 "안학섭 선생 송환은 민족의 문제"라며 남북관계를 고려해 북으로 바로 갈 수 없다면 "통일부의 승인 하에 제3국을 통해 북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판문점 송환으로 우리의 자주 의지를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안학섭 선생의 뜻"이라고 밝히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안학섭 선생은 8월 20일 북으로 가기 위해 임진강역에서 걸어서 통일대교 남단 검문소까지 갔으나 허가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절박한 송환 요구에 통일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하는가 하면 BBC 등 외신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 선생은 1953년 4월, 한국전쟁 중 남측으로 내려와 '전쟁포로'가 됐는데 송환되지 못했고, 오히려 간첩 혐의로 43년간 옥고를 치렀다. 2000년 9월 '비전향 장기수 1차 송환' 때 63명이 북으로 돌아갔지만 안 선생은 분단 극복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신념으로 남녘에 남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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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