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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가을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09-27 23:34:18
  • 수정 2025-09-28 13: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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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온다

가을은 뭉게구름처럼 뭉게뭉게

온다.

먼 산 산마루를 타고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가슴 뭉클하게 온다.

가을이 온다.

가을은 시냇물처럼 투명하게 온다.

물 아래 모래 한 알까지

모래무치 한 마리 은비늘까지

또릿또릿 셀 수 있게 

투명하게 온다.


-권영상 시인의 시 '가을' 전문



이 시는 <구방아, 목욕가자>라는 동시집에 실려있다.


아이의 마음처럼 참 맑은 시다. 시인은 직유적 표현을 통해 가을이 뭉게구름처럼 뭉게뭉게, 시냇물처럼 투명하게 온다고 표현했다. 이런 계절의 변화는 외부세계의 현상이지만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어느새 뭉클져 옴을 느낄 수 있다. 물 아래 모래 한 알까지, 작은 물고기 은비늘까지 또릿또릿 셀 수 있게 눈과 마음도 투명해지는 것 같다.


가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존재들이 현현(顯現)하는 계절이다. 그것을 느끼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것은 우리들 몫이다. 올 가을은 물 속의 모래 알갱이, 작은 물고기의 은비늘까지도 또릿또릿 셀 수 있게 눈과 마음이 맑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공감하는 그런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모두 빛나는 가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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