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우리들. 첫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서 운동장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난 이런 죄를 고백했는데. 넌 무슨 죄를 고백했니? 너한텐 신부님이 뭐라 그랬어? 서로에게 고백을 하고 놀았다.
우린 아직 이병이니까. 별로 그렇게 죄진 게 없어. 우리가 일병이 되면 죄가 조금 다양해질까? 우리가 상병이 되면…… 고백할 게 많아지겠지? 앞으로 들어올 후임들한테, 무슨 죄를 지을지 계획하면서. 우리는 정신없이 웃고 까분다.
웃고 까부는 건 다 좋은데. 성사를 장난으로 생각하진 마. 우리가 방금 나눈 대화도 다음 성사 때 고백해야 돼. 어렸을 때 세례를 받은 동기가 조심스럽게 충고를 하고. 역시 독실한 종교인은 남다르구나. 너는 오늘 무슨 죄를 고백했는데? 우리는 조금 빈정거렸다.
나는 생각으로 지은 죄도 고백하거든. 대부분 끔찍한 것들이라서. 알려줄 수는 없을 것 같아.
팔다리를 잡고 간지럼을 태웠는데도. 너는 절대 고백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겁이 났다. 저 독실한 신자 녀석이.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김승일 시인의 시 '같은 부대 동기들' 전문
이 시는 김승일 시인의 시집 《에듀케이션》에 수록되어 있다.
"군대"라는 폐쇄적이고 엄격한 계급과 규율이 있는 곳에서 한창 자유롭게 지내야 할 청춘이 고해성사를 마치고 "같은 부대 동기들"과 함께 장난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 종교의례를 통한 '자기검열'의 공유가 순수와 불안이 교차되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수치"는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을 나누는 사이는 아주 가까운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폭력의 경계 위에 있는 군대에서는 그런 정서도 놀이처럼 웃고 까불면서 불안감을 이겨내며 서로 의지하고 싶은 심리도 있겠다. 집단의 장난스러운 한때지만 각자의 내면에는 깊고 날 선 어둠이 감춰져 있다. 그곳은 개인이 감시되고 고백을 강요 받고 내면까지 통제하려고 한다.
그렇게 함께 수다 떨던 동기도 한순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 된다. 시는 그 모순 사이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잘 포착하여 의미를 고정하지 않고 계속 변주해 나간다. 독자의 마음도 점점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든다.
분단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 대해, 지금 군대에 있는 군인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필자도 남편에게 셀 수 없이 많이 접했던 군대 얘기지만 앞으로 애정을 갖고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아이즈 앨범' 1999년 어느 겨울 새벽
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얼어 붙은 땅에 노란 납매 그리고 동백
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