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창작의 근원은 결핍에서 출발하였다. 무엇인가를 창작한다는 것은 독자들을 위한 것과,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끌어낸다는 것은 결핍에서 피어 오른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 대한 '불안'이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저곳'에 손이 닿지 못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부지런히 꿈꾸는 것이다. 마블의 한 캐릭터 닥터스트레인지처럼 시간을 돌리는 것이다.
이 마음은 이곳의 폭력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일 수 있고, 개인적인 억압에 대한 거부일 수 있고, 사회적이거나 개인적인 폭력이 아닌 무기력이라는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아폴리트의 〈지중해의 끝, 파랑〉(2025)은 난민의 절규를 담아내기 위해 창작되었고, 현홍아선의 〈그곳에서〉(2025)는 외롭고 높고 쓸쓸히 살아가야 했던 어느 한 제주도 해녀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창작되었다. 이소베와 백종민의 〈살아만줘요〉(2024) 역시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반디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마영신의 〈락이〉(2025)는 예술가의 소외에 대해서 다룬다.
이처럼 가장자리에 놓인 존재의 '불안'과 '결핍'은 창작의 밑거름이 된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에서 우리는 '결핍'과 '소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오시로 고가니의 단편 〈바다 밑바닥〉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결핍에 의해서 피어오르는 '흔적'에 대해 노래하기보다는 안정적인 '결핍(?)'이 창작의 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이 목소리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공식적으로 뒤바꾸는 것이기도 해서 주목을 요한다. 이 목소리가 우연일지라도 동시대 젊은 작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이 감각은 보편의 성질을 품는다.
『해변의 스토브』 152p, 183p
〈바다 밑바닥〉의 주인공 모모는 직장인이다. 모모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시인 가스밍과 소설가 이이피가 그들이다. 이들은 예술가 그룹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모모 역시 과거에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세 친구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삶을 살아내지만, 창작에 있어서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 가스밍과 이이피는 경제적으로 어려울수 있지만 자신의 작업을 묵묵히 해내는 긍지있는 예술가들로 묘사되고, 모모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타협한 인물로 그려지니 그렇다.
이런 현실 속에서 모모는 괴로워한다. 현실적으로 먹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고백하는 친구들에게 전적으로 위로를 보내기보다는 "너희에겐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도 남는 재능과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갈 용기"가 있다며 친구들을 오히려 선망한다. 모모는 그 누구보다도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스스로 예술적 재능이 없다고 믿기에 이런 시기심이 분출된 것이다.
모모는 회사 생활하며 안정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모모에겐 이 안정이 부끄럽다. 예술가로서 온전히 서 있지 못하는 것이 괴롭다. 모모에겐 글을 쓰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결핍이 된다. 중요한 것은 만화가가 이 괴로움을 형식적으로 훌륭하게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단편 제목이 암시하듯이 현실에서 괴로워하는 모모의 장면이 연출될 때면 영락없이 물밑에서 유영(游泳)하는 모모가 그려진다.
아니다. '유영'은 잘못되었다. 물고기처럼 바닷속을 힘차게 유영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외롭고 고독하게 바닷속을 힙겹게 걷는다. 바다속에서 자유롭게 물고기는 유영할 수 있지만, 인간인 모모는 물속에서 몸도 마음도 불편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에게는 물갈퀴도 지느러미도 힘찬 꼬리도 없다. 이런 답답함이 만화의 형식으로 연출됨으로써 독자들에게 모모가 느껴야 했던 심리적 압박을 대신 전달해 준다.
하지만 모모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남편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선다. 그는 매슬로(Abraham Maslo)의 다섯 단계 욕구이론을 모모에게 이야기해줌으로써 모모가 서 있는 위치가 자연스럽다고 위로한다. 피라미드로 구성된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 욕구가 채워지면 마지막으로 '자아실현의 욕구'를 원한다는 것이다. 모모의 친구들에게 "집필은 먹고사는 문제라 피라미드의 아래, 토대"에 해당되니, 생리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모는 이제야 회사원의 신분으로 생리적 욕구를 충족했으니 역설적으로 지금이야말로 자아실현에 해당되는 소설 쓰기를 할 때라는 것이다.
논리적인 이 말을 듣고 모모는 순간 멈칫한다. 세상이 갑자기 다르게 감각된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세계관에 놓여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세계관에 놓여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오히려 모모의 재능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 자체였던 것이다. 이 예술적 사건 이후 만화가는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모의 모습을 연출한다. 똑같은 모모였지만 모모의 위치가 창작자로 변모되는 순간을 수면 위로 올라오는 장면으로 연출해 독자들에게 다른 미래를 만져보게 한다.
이 장면이 중요한 것은 만화적인 형식의 상쾌함도 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도 전복을 꾀하고 있어서다. 예술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지점이 '결핍'의 소산이라는 입장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경이 원안을 제공하고 마영신이 만화를 그린 텍스트 <호도>(2024)에서 비춰지는 예술가의 모습은 지독하게 고통스럽다. 임신중지와 폭력에 허우적 거리는 호도의 삶은 결핍에서 피어오르는 상처로 인해 창작이 유지된다. "지독히 괴롭고 열악한 상황에서 그림이 더 잘 나왔던 거 같다"는 분노와 증오의 창작적 열망이 오히려 빛을 발한다. 물론, 이런 창작의 원동력도 무시할 수 없는 예술의 영역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감각이 예술 전반을 옹호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오시로 고가니의 〈바다 밑바닥〉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만화가는 얼마든지 소소한 일상의 재현과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예술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스밍과 이이피가 결핍 속에서 이뤄낸 창작물을 부정하기보다는 이들과는 다른 또 다른 지점의 예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만화가는 잘 표현된 '형식'적 연출과 '내용'으로 성공적으로 연출했다. 이와 같은 입장을 만화가는 하이쿠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평범하고 재밌는 인생, 오늘은 돌고래가 물위로 끌어 올려준 것 같은 날"이라고 말이다. 평범한 예술가가 등장하는 동시대의 풍경을 이 만화는 온전히 잡아낸다.
윤움 / 문종필평론가
문종필 평론가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 「좋은 곳」 「무제」를 발표하며 만화평론을 시작했다. 문학평론집 〈싸움〉으로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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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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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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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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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