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저리가 날 만큼
벌어질 일은 반드시 벌어진다
작약은 피었다
갈비집 뒤편 숨은 공터
죽은 참새 사체 옆
나는
살아서 작약을 본다
어떨 때 보면, 작약은
목 매 자살한 여자이거나
불가능한 목적지를 바라보는
슬픈 태도 같다.
아이의 허기 만큼이나 빠르게 왔다 사라지는 계절
작약은
울먹거림.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
살아서 작약을 보고 있다
작약에는 잔인 속의 고요가 있고
고요를 알아채는 게 나의 재능이라서
책임을 진다
공터 밖으로 전해지면 너무나 평범해져버리는 고요때문에
작약과 나는
가지고 있던 것들을 여기 내려 놓았다
작약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슬프고 수줍어서 한층 더 작약이었다.
-허연 시인의 시 '작약과 공터' 전문
이 시는 2025년 제 37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약"은 모란과 함께 오뉴월을 대표하는 꽃이다. 우리에게도 친근한 식물이고 뿌리는 건강에도 아주 유익한 약재로 사용된다. 특히 생리통에 효과가 있어 여자와 관계 깊다고 할 수 있다.
향기가 거의 없는 모란이 '앉은 꽃'이라면 향기가 진한 "작약"은 '움직이는 꽃'이다. 봄의 끝자락 "빠르게 왔다 사라지는 계절"에 피어 지저귀던 "참새"가 죽은 "사체"가 있는 생존의 "갈비집" 뒤편 "공터"에서 "목 매 자살한 여자"처럼 "불가능한 목적지를 바라보는 슬픈 태도"로 무언가 말하는 것 같다.
여기서 "공터"가 고정관념 등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대표한다면 "작약"은 자크 라캉과 슬라보예 지젝 같은 이론가들이 주장한 '잉여향유'처럼 "공터"를 향하여 파동치는 어떤 '새로운 변화'이고 사회를 움직이는 '욕망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울먹거림"으로 보여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잔인 속의 고요"인 묵언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화자인 "나"는 알아듣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 "책임"감을 갖고 지켜본다.
그것 또한 "공터" 밖으로 나가면 평범한 또 하나의 죽은 관념이 되기 때문에 "여기" 이 순간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귀 기울이는 "나"는 "작약"과 동일시되어 "슬프고 수줍어서 한층 더 작약이" 되어간다.
꽃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존재 이유'를 감각하게 하는 깊고 높은 시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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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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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