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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트레일러 소녀 3편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7-19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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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올림픽이 열릴 계획인 작은 도시에는 펜션과 전통 한옥을 많이 짓는다고 했다. 아빠는 트럭에 한옥용 기왓장을 실어 배달했다. 트럭에 검은 기왓장을 가득 실은 사진을 핸드폰으로 보내왔다. 아빠와 나는 하루에 두세 번 통화를 했고 서로 사진을 주고받았다. 나는 바다 모래사장까지 올라온 미역 사진을 보냈고 아빠의 첫사랑인 촌스런 여자가 만든 요리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여자는 가까운 금진항에 배가 들어오는 새벽에는 항구로 갔다. 공판장에서 생선 배를 가르는지 몸통을 손질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침식사시간 전에는 비린내 가득한 앞치마를 한 채로 돌아왔다. 낮에는 공장에서 진미 오징어를 포장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낮 시간에는 식탁에 앉아 수능 대비 문제를 풀었다. 계획한 것을 모두 풀고 나면 모래사장을 걸었다. 내가 걸은 모래사장은 점점 확장 되었지만 보이는 바다는 항상 똑 같았다. 여자는 집으로 오기 전에 항구에 있는 공판장에서 생선을 사왔다. 나는 여자가 올 시간이면 비릿한 생선과 간장이 어우러지는 냄새를 상상했다. 순식간에 배가 고파졌다. 여자의 요리는 이상야릇한 모양이었지만 맛은 제법 있었다. 여자는 요리를 단 한 가지씩만 했다. 나는 일주일간 돌김만 뜯어먹다가 생선조림을 한 젓가락 맛보게 된 것이 이젠 여자의 요리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흐물흐물한 생선에 김치를 넣은 국은 처음엔 보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이젠 물곰치국에 들어있는 생선 애와 곤이, 이리까지 후룩 삼켰다. 물론 음식을 담는 그릇이나 상 차리는 솜씨는 여전히 형편없었다. 미학과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트레일러 바디에 기대 울던 남자는 잊을 만하면 나타났다. 남자는 언제나 약간은 취한 듯 보였고 바다를 향해 앉아 소리 내 울었다. 한 시간 가량 울다가 바다에 오줌을 누고 모래언덕을 걸어 나왔다. 한 번도 바다에 뛰어든 적도 없었고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신기한 것은 남자가 바다 앞에 앉아 울다 돌아가는 것을 꼭 확인해야만 나는 잠이 왔다. 남자가 오지 않는 날에는 바다 전체가 어둡고 파도 소리가 거세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다가 외로워 보였다. 이제, 남자가 울 시간이 다가왔다. 

남자는 울 준비를 하는 듯 벌써부터 흔들거리는 걸음걸이로 걸어오다 바다를 향해 앉았다. 나는 아틀라스팀 구스다운 점퍼를 꺼내 걸쳤다. 만약을 위해 트레일러 리모컨과 핸드폰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트레일러에서 나갔을 때 남자는 울고 있었다. 나는 남자와 삼 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앉았다. 눅눅한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엉덩이에 닿은 축축한 모래는 차가웠다. 남자의 울음에 타넘어 온 파도가 리듬을 맞췄다. 검은 미역이 조금씩 모래 언덕으로 밀려왔다. 시커먼 미역이 밀려오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울기 시작했다. 기가 죽은 파도 끝자락에 밀려 올라오는 미역이 자살한 엄마의 머리카락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눈물이 떨어지다가 이내 울음이 커지면서 어깨를 뒤흔들며 울었다. 어깨가, 몸이, 울음이 소금처럼 바다에 저며졌다.


엄마가 어떻게 아빠처럼 속없고 가난한 사람을 사랑했고 결혼까지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젊은 욕망을 채우기 급급해서 서로에게 파고들다 내가 생겨버렸는지도 몰랐다. 엄마의 집에서 결혼을 반대했지만 딸이 고생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지 외할아버지는 역삼동의 집을 내주었다. 언덕에 있었지만 마당도 제법 넓었고 건물 실 평수도 꽤 되는 이층 양옥집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벌어오는 월급으로 본인 치장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피부 관리를 받아야했고, 단골 피트니스 클럽에도 다녀야 했다. 동창 모임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해야 했고,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옷은 일이초의 고민 없이 사야했다. 엄마는 친정 나들이 갈 때마다 카드 값을 메워달라고 매달렸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엄마는 돈의 무서움을 알았다. 엄마는 살림집을 이층으로 옮기고 일층에 스파게티 전문집을 냈다. 마당에 빨간 색 파라솔을 설치하고도 늘 자리가 부족했다. 점심시간이면 근처 직장인들이 미리 전화해 예약 주문할 정도로 바빴다.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마당이 바글거렸다. 엄마는 매니저를 고용하고 밖으로 나돌았다. 그 무렵 나는 명동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통학을 했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대치동에 있는 원룸으로 가 영어와 수학 과외를 받아야했다. 과외가 끝나면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미술을,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일요일에는 과천에 있는 승마장으로 가야했다. 엄마는 아빠를 설득했다. 나를 픽업하고 뒷바라지하는 고용인에게 주는 돈이 아빠의 월급보다 많다는 말에 아빠는 할 말이 없었다. 아빠는 학교 셔틀버스가 서는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대치동의 원룸에서 내가 수업을 받는 동안 아빠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기다렸다. 압구정동 아파트는 주차 공간이 부족해 아빠는 차를 세 네 번은 빼줘야 했다. 내 일정이 끝나면 우리는 일층에서 스파게티를 먹었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함께 영어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볼 때면 아빠는 꾸벅꾸벅 졸았다. 방학 기간 중 필리핀에 가 어학원을 다닐 때에도 캐나다 연수 코스를 갈 때도 언제나 아빠와 갔다. 엄마는 우리가 쓰고 다니는 돈을 벌기 위해 너무나 바쁜 사람이었다. 아빠는 엄마 앞에서 주눅이 들었고 무엇을 의논하는 것이 아닌 허락을 받는 관계였다. 그러니깐 애초에 아빠는 독한 가시를 삼킨 거였다. 살을 찢어내서라도 빼냈어야 하는 가시를 괜찮다고 목에 걸고 살았다. 엄마는 해외골프장 건설을 위해 투자를 했고 친구들을 투자자로 끌어 모았다. 필리핀 현장까지 답사했지만 골프장이 완공 되었을 때 주인은 따로 있었다. 중간에서 소개를 해주던 남자는 돈만 긁어 받은 후 사라졌다. 재판 날 엄마에게 사기죄뿐만 아니라 간통죄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사는 아빠의 기분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엄마의 죄를 낱낱이 파헤쳤고 까발렸다. 아빠는 간통을 고소한 여자를 찾아가 합의했다. 아빠와 함께 엄마에게 면회를 갔다. 아빠는 엄마에게 아픈 곳이 없는지, 밥은 괜찮은지, 춥지는 않은지, 기다리겠다고, 힘을 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나는 아빠를 먼저 면회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엄마한테 말했다.


“죽어버려.”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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