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버리고
네가 다가올 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뒷목을 핥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교회 십자가가 네 귀에 걸려 찢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빨갛게 물들어 일렁거렸다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더는 바다가 두렵지 않다고
이 배는 오래됐고 안이 다 삭아버려서
더 타다가는 우리 정말 하늘로 간다고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을 보면서
실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너를 보면서
눈 밑에서 해가 타는 것을 느꼈다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이 시는 고명재 시인이 쓴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유원지에서 놀이기구 '바이킹'을 탔을 때의 느낌을 아주 실감나게 표현했다. 생동감 넘치는 풍경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쾌락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할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짧은 순간의 상황 묘사와 심리 표현이 아주 섬세하게 표현되어 같이 바이킹을 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망해가는 유원지(세상)가 될 대로 되라고 끝까지 밀어낸 배(가정)를 떠올릴 수도 있다. "너"와 "나"는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서로에게 공포가 된다. 내가 다가가면 너는 날아가 버리고 너가 다가오면 나는 등 뒤 바람을 즐기며 딴짓을 한다.
서로 신뢰를 못하니 힘든 순간에도 서로를 부르지 않게 된다. 대신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주문만 외고 있었다. 내리막길에서도 빨갛게 물든 분노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너를 보며 배(가정)를 더 타다가는 함께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대충 타면 된다는 불안한 '사회'와 두려움 없이 함부로 대하는 '부부'는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시 같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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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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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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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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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