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걸 시인
나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아니, 볼 수 없다는 말이 맞겠다. 어찌어찌 살다가 시력을 잃었다. 그 이유 탓에 눈이 보일 때 본 장면들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그때마다 영화 속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문장으로 꾸려보면 그렇지가 않다. 소중했던 이야기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뉴스아이즈'에 게재할 산문집을 정리하며 확실히 깨달았다. 정황 전달이 미숙한 문장들과 신변잡기이다. 세상에 내어놓은 여러 권의 시집도 마찬가지이다. 새삼 부끄럽고 독자들에게는 미안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것이 속일 수 없는 내 삶이다. 흰지팡이를 펴고 울퉁불퉁한 문장 위를 걸어온 지 스무 해가 넘었다. 가끔 불안했고 지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 걸음이 다시 걸어 나갈 수 있는 원초적 힘을 생각했다.
등단 초기부터였다.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 말했다. “남들과 다른 지점이 읽힌다”고 말했다. 그 인사치레에 나는 과하게 으쓱했다. 그것이 내가 살아낼 수 있는 힘이었다. 여전히 부족함을 안다. 그러나 조금은 더 뻔뻔해지고 싶다. 그 버릇이 어디 가랴. 내가 겪은 소중한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담지 못한 산문들을 이곳에 내어놓으려 한다. 변명이 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완벽은 없다. 그러한 꿈은 애초에 꾸지 않는다. 문장 위를 뒤뚱뒤뚱 걸을 뿐이다. 힘이 다하는 날까지 멈춤 없이 걸을 뿐이다.
손병걸 시인은 2005년 부산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푸른 신호등』,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통증을 켜다』,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가 있고 산문-『열 개의 눈동자를 가진 어둠의 감시자』, 『내 커피의 농도는 30도』가 있다. 수상은 『-구상솟대문학상』,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인국무총리상』, 『민들레문학상』, 『중봉조헌문학상』을 받았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아이즈 앨범' 1999년 어느 겨울 새벽
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얼어 붙은 땅에 노란 납매 그리고 동백
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