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김주성의 한시 한 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유래
  • 김주성 기자
  • 등록 2025-05-30 07:41:43
  • 수정 2025-06-04 14:25:24

기사수정

5월말이니 봄이 다 간 셈이다. 날씨는 더워지고 해를 피하게 된다. 봄을 보내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무거움에 짓눌려 있다. 꽃이 피고 아름다움이 더할수록 답답함과 슬픈 감정도 함께 일어난다. 4·19혁명, 5·18광주민중항쟁, 4·16세월호 참사 등 희생으로 그러잖아도 봄 같지 않았는데, 지난해 12·3내란을 일으킨 세력들이 지금까지도 득세를 부리고 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도 그랬다. 박정희의 죽음으로 18년 유신독재가 끝나고 민주의 시대가 올까 기대했는데, 전두환 신군부가 국가 권력기관을 접수하고 집권 야심을 드러냈다. 이때 김종필이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며 '춘래불사춘'이라 했다.

 

당나라 때 동방 규가 지은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온다. 땅이 큰 중국이 셀 것 같지만 예전엔 중국 북쪽의 유목민족들이 훨씬 셌다.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이 되면 말을 튼튼히 살찌워서(天高馬肥 천고마비) 중국의 변경에 쳐들어와서 사람들을 죽이고 인마와 물자를 약탈해 갔다.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한(漢)나라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물과 세폐를 바쳐서 평화를 샀다.

 

한나라의 일곱 번째 임금에 와서야 북쪽에 사는 흉노족을 정벌하고 위신을 세운다. 주변 여러 나라도 제압했고 그래서 무제(武帝)다. 11대 임금인 원제(元帝) 때는 흉노의 14대 선우(單于)인 호한야가 한나라에 입조해 한나라의 사위가 되기를 원해 왕소군을 하사받았다.(기원전 33년) 

 

원제는 궁녀가 많아 화공(畫工)들에게 궁녀를 그리도록 명하여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불러들였다. 원제에게 선택되려는 궁녀들은 화공에게 뇌물을 주고 아름답게 그려달라고 했다. 왕소군은 돈이 없어 뇌물을 주지 못했고 화공은 그런 왕소군을 추하게 그렸다. 


원제는 그림을 보고 왕소군을 호한야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림과는 다른 절세의 미인이 그를 따라 가는 걸 보게 됐다. 원제는 원통해 했지만 이미 늦은 일, 신의를 저버릴 수 없었다. 격노한 그는 왕소군을 그린 화공 모연수의 목을 쳤다고 한다. 


흉노로 간 왕소군은 35살에 일생을 마쳤다. 본명은 왕장(王嬙)이며, 중국의 4대미녀 중 하나로 꼽힌다. 700년이 흐르고 나서야 왕소군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시가 지어졌다. 이백(李白)이 지은 <왕소군>도 있다.


 

       昭君怨 소군원

                                                  동방 규

 

漢道初全盛  한도초전성
朝廷足武臣 조정족무신
何須薄命妾 하수박명첩
辛苦遠和親  신고원화친

掩涕辭丹鳳  엄체사단봉
銜悲向白龍 함비향백룡
單于浪驚喜 선우랑경희
無復舊時容  무복구시용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왕소군의 원한


한의 다스림 처음 번성하여

조정에는 무신들 넘쳐나건만 

어찌 하필 박명한 아녀자인가 

고생스러운 화친 길 멀고도 멀다 


눈물을 삼키며 궁궐과 작별하고 

슬픔을 머금고 흉노 땅으로 향하네

선우는 놀라 그저 기뻐하지만

예전의 낯빛을 다시 찾을 길은 없구나

 

 오랑캐 땅이라고 어찌 꽃풀조차 없으랴만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자연히 허리띠가 느슨해져도

 몸매를 위한 것은 아닐지어니···

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아이즈인터뷰] 허유미 시인, 물의 뿌리가 뿜어내는 숨비소리에서 핀 짜디짠 꽃밭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네, 반갑습니다. 이렇게 먼 곳에 사는 시인까지 그러니까 제주도까지 찾아주시고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뷰 전에 요즘 생활의 관심사를 살짝 들어볼까요?  요즘은 '월동 준비를 어떻게 하나'로 고민을 넘어 고심하고 있습니다. 매년 염려하는 난방과 김장 그리고 저에게 겨울은 '창...
  2. [아이즈인터뷰] 이병국 시인, 시·공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입체적 감각의 문장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시와 평론 쓰는 이병국입니다. 반갑습니다.  한 해가 가기 전 꼭 마무리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요.  올해는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아요. 연초부터 가을까지 박사 학위논문을 썼고 여름에는 아파트에 입주해 새로운 장소를 경험하고 있네요.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하는 한 ...
  3. 2025년 포엠피플 신인문학상 주인공 22세 이고은 "시 없인 삶 설명 못 해" 올해 《포엠피플》신인문학상은 22세 이고은 씨가 차지했다. 16일 인천시인협회 주관하고 인천 경운동 산업단지 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1,351편의 경쟁작을 뚫고 받은 것이다. 행사 1부는 《포엠피플》 8호 발간(겨울호)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2022년 2월, 문단의 폐쇄적인 구조를 타파하고 회원들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기치 아래 창간된 계..
  4.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새우탕 수평선이 그어져 있다 그 부분까지 끓는 물을 붓는다 오랜 기간 썰물이던 바다, 말라붙은 해초가 머리를 풀어 헤친다 건조된 시간이 다시 출렁거린다 새우는 오랜만에 휜 허리를 편다 윤기가 흐른다 순식간에 만조가 되면 삼분 만에 펼쳐지는 즉석바다, 분말스프가 노을빛으로 퍼진다 그 날도 그랬지 끓는점에 도달하던 마지막 1°는 네가 ...
  5.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같은 부대 동기들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우리들. 첫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서 운동장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난 이런 죄를 고백했는데. 넌 무슨 죄를 고백했니? 너한텐 신부님이 뭐라 그랬어? 서로에게 고백을 하고 놀았다.  우린 아직 이병이니까. 별로 그렇게 죄진 게 없어. 우리가 일병이 되면 죄가 조금 다양해질까? 우리가 상병이 되면…… 고백할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