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모니터링단 '꼬북단'이 인천의 공공기관들을 대상으로 일회용품 사용 실태를 조사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째다. 나는 올해 처음 꼬북단에 참여해 우리 단체가 있는 남동구의 공공기관 세 곳에 가게 됐다.
빈도 조사는 일회용품 사용이 가장 많은 점심 후 12시 30부터 1시 30분까지 했다. 건물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 몇 명이 일회용 컵을 들고 오는지를 체크했다.
관리 실태는 여러 방면으로 조사했다. 기관 내부에 '일회용품을 사용/반입하지 않는다'는 표지가 잘 붙어 있는지, '분리배출통'은 4종(유리·페트병·캔·종이)을 나눠 하게 돼 있는지, 구내 카페에서는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는지, 개인 컵을 사용할 때 마일리지 같은 할인 혜택을 주는지 등 점검이다.
기관 A는 인천의 광역 단위 기관이다.(꼬북단이 '활동보고서' 발표 전이어서 기관명은 알파벳으로 표기) 청사 입구 배너에는 '일회용품 반입 금지'가 써 있다. 현관에는 다회용 컵을 비치해 들어올 때 바꿔가도록 했다.
12시 반부터 1시까지 166명이 들어왔고 그중 1명이 일회용 컵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약 30명은 정문 말고 다른 출입구로 돌아 들어갔다. 공지가 있었는지 직원들끼리 조사하는 걸 공유했는지 모르지만 돌아가거나 아예 음료를 마시지 않는 방법으로 모니터링을 회피한 것이다.
구내 카페는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개인 컵 사용자에게 마일리지나 할인 등 혜택은 주지 않았다. 분리 배출은 잘 되고 있었다. 쓰레기통을 페트병, 유리, 캔, 비닐, 그리고 종이상자 등으로 나눠 버리게 해 쓰레기 자체가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관리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관 B는 교육지원청이다. 직원 수도 적고 전전날 대통령 선거에 근무한 직원들이 특별 휴가를 많이 써 다소 한산했다. 38명이 입실했는데 일회용 컵을 들고 온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여기 또한 공지가 된 것 같았다. 구내 카페는 없었고 직원휴게실에는 개인 컵이 비치돼 있고, 분리배출도 4종으로 하고 있어 양호했다.
기관 C는 기초자치단체다. 이곳은 출입구가 여러 곳이라 사람이 가장 많은 드나드는 곳에서 모니터링 했다. 147명 중 13명이(민원인 포함)이 일회용 컵을 들고 들어왔다.
일회용품 반입금지 안내는 1층의 가장 출입이 적은 입구 1곳에서만 하고 있었다. 분리배출함도 2종만 분리되는 것이어서 쓰레기가 혼합되는 상황이었다. 전면적인 홍보는커녕 실효성도 없어 보였다. 2층 이상에는 엘리베이터 통로에 '4종 분리배출함'이 있고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구내 카페도 다회용 컵 이용자에게 500원을 할인해 주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 하고 있었다.
문제는 무분별한 종이컵 사용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놀라웠다. 아예 인식하지 않고 있다. 지하 1층 구내식당에서 올라오는 직원들은 대부분 종이컵을 들고 있었는데 확인해 보니 식후 매실차를 종이컵에 먹도록 하고 있었다. 충분히 다회용 컵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인식의 문제는 건물 뒤 프랜차이즈 커피점 이용에서도 발견됐다. 그곳에서는 음료를 대형 사이즈로도 팔고 있는데 "기관에서 사용하는 다회용 컵에는 음료가 다 담기지 않아 일회용 컵을 사용한다"는 답변이 나왔다.(그들은 일회용 컵 판매도 매출로 잡고 있긴 했다) 믿기 힘든 대답이었다. 다회용 컵을 큰 걸로 바꾸면 되는 것 아닌가? 그보다도 음료 사이즈를 작은 걸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세 기관을 모니터링하면서 텀블러나 다회용 컵을 들고 다니는 직원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일회용품 줄이기'는 잠시 모니터링만 피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습관을 바꿔야 하는 일이다. 불시에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일회용품 줄이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지를 가지고 습관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개인만으로는 안 되며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다른 지자체 사례처럼 모든 커피점에서 공용 다회용 컵을 사용하도록 해 소비자가 사용한 컵을 어디서든 반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일부 커피점은 '자사 브랜드 홍보가 더 중요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불매운동이 일어나면 그런 태도를 고수하지 못할 텐데 현재는 쉽지 않다. '일회용품 사용이 문제'라는 인식이 낮다는 방증이다.
분리배출과 일회용품 관련 업무를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청소행정과에서, 광역단체에서는 자원순환과에서 하고 있다. 쓰레기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 알게 해 준다. 청소는 깨끗이 치우는 것이, 자원순환은 자원으로 보고 순환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기관의 직제에서도 쓰레기를 보는 관점이 다르며 그것은 직원들의 의식구조에 영향을 줄 것이다.
특히나 기초자치단체는 주민들이 표준으로 삼고 있는 기관인데 그곳에서 쓰레기를 청소의 대상으로만 보면 지역과 주민도 당연히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인천광역시 내 다른 지자체가 행정 대상 업소를 대상으로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을 지원하는 걸 보면 직제의 차이가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종이컵 사용에 대한 인식은 한때 환경을 위해 자제해야 한다고 떠들썩했다가 어느샌가 문제의식이 사라져 버렸다. 단순히 종이컵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변화가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모니터링은 현상을 살피게 할 뿐 아니라 대안도 생각하기에 효과적인 방법이다. 모니터링은 '꼬북단' 외에도 여러 단체가 하고 있다. 짧은 기간, 일부 기관에서만 하고 있지만 실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시민들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수단이 없고, 행정기관은 수단은 있지만 제도나 정책이 없다. 제도나 정책은 지방의회나 국회, 그리고 자치단체장이 만든다. 모니터링 결과도 의회에 제출되겠지만 소통이 안 되면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행정이 대체로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화하려면 작더라도 실천이 중요하고 동기와 동력 들이 필요하다. 시민운동이 동기와 동력이며 실천이다.
적어도 '종이컵 전쟁'은 이런 방식으로 치러내야 한다. 캠페인과 여론 환기, 정책 제안, 변화 압력 등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다. 시작이 반이며,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게 시민운동이다. 티핑포인트다.
마을기획 청년활동가 송형선은 사단법인 마중물 사무처장을 거쳐 현재 남동희망공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