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송형선의 희망공간] 텃밭이 있는 마을···도시농업의 미래 엿보기
  • 송형선 활동가
  • 등록 2025-08-11 00:00:01

기사수정

텃밭에서 식물을 심는 남동희망공간 사람들

7~8월 염천에는 식물들이 쑥쑥 자라오른다. 사람들이 기르는 작물들과 함께 들풀들이 서로 영역 다툼을 하는 모양새다. 그 풀들 위로 메뚜기, 사마귀, 방아깨비 들이 맘껏 튀어오른다. 사람이 키우는 듯하지만, 생명들은 스스로 뿌리 내리고 자라고 꽃 피우고 씨앗을 터뜨린다. 


남동희망공간(인천 소재)의 여름 텃밭은 아질아질한 태양빛 아래 온갖 생명이 서로 크겠다고 자랑하는 각축장 같다. 


개발 예정지 작은 땅서 시작한 남동희망공간 텃밭


남동희망공간 사람들은 비어 있는 개발 예정지의 조그마한 땅에 고추와 푸성귀를 심었다. 텃밭의 시작이었다. 이후 텃밭 옆 원두막에서 술 빚기나 영화 보기 모임을 하며 동네 쉼터로 자리잡았다.


희망공간이 동아리에서 시작한 것처럼 텃밭도 동아리 활동의 하나였다. 그러다 독지가와 인연이 닿으며 현재와 같은 규모의 공동체 텃밭으로 꾸려가게 됐다. 


7월의 텃밭 풍경. 감자를 수확한 밭이 빈채로 남아있다.감자를 수확한 후 비어있는 7월 남동희망공간의 텃밭 

동아리처럼 운영되던 텃밭이 이제는 50여 희망공간 회원들이 노동도 관리도 함께하는 농장으로 자랐다. 작물을 키우고 김장을 담가 나누는 공동체 활동의 매개가 됐다. 


텃밭을 왜 시작하게 됐을까? 딱히 이유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땅을 일구고 키우는 일이 즐거운 사람들이 만나다 보니 당연하게 시작하게 됐다.


이곳의 텃밭 절반은 공동으로, 나머지 절반은 회원들이 5평씩 관리하고 있다. 공동텃밭은 나눔의 공간이다. 봄에는 감자를 키워 팔거나 나누고, 가을에는 배추를 키운다. 이곳에서 거둔 배추로 김장을 담가 김치가 필요한 400여 이웃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랑의 김장나눔'으로 벌써 13년째다.  


개인 회원들은 고추, 상추, 옥수수, 고구마, 아욱, 근대 등을 심어 먹는다. 이들은 출퇴근 하며 들르기도 하고 주말에 들르기도 한다. 농사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다. 텃밭을 일구는 이유도 다양하다. 은퇴 후 취미로 하기도 하고, 귀농을 준비하기 위해 하기도 한다. 


희망공간 사람들에게 텃밭은 마음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생명을 경험한다. 일상의 오아시스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심고 키우고 가꾸기를 좋아한다. 텃밭에서 땀 흘리며 수확한 작물을 요리해 먹는 과정이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는 본성을 일깨운다. 


남동희망공간 텃밭 회원 

먹거리 자급과 생활공동체 만들 도시농업


희망공간 텃밭은 이런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시작됐다. 키우고 가꾸고 수확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텃밭을 꾸려가고 있다. 


텃밭은 생명 근원의 즐거움을 줌과 동시에 도시농업의 역할을 한다. 마을활동 관점에서 도시농업은 마을공동체성을 확인하고 생물 다양성 보전하며 로컬푸드운동에 기여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함께 대처할 생태시민 교육의 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도시농업은 도시의 제한된 공간에서 소규모 작물을 키우고 식량을 생산하는 활동으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도시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먹거리를 자급하며 생활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이른바 '사회적 가치'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텃밭은 도시농업운동으로 이어진다. 남동희망공간 텃밭은 품앗이 노동을 하고, 함께 키운 작물을 이웃과 나누는, 공동체 텃밭 기능에 충실하고 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나 인천환경운동연합 등은 여기에 토종씨앗을 보급하는 등 생태농업을 확산하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희망공간 텃밭이 마을공동체성은 확인하고 있지만, 지구생태시민으로서 공동체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생태농업의 의미를 공유하고 토종씨앗을 보급해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탄소에너지 사용을 멈춰야 한다. 그린에너지를 활용하고, 가급적 육식활동을 자제하는 친환경먹거리운동을 펼쳐야 한다. 도시농업운동으로 기후위기시대를 이겨낼 시민으로 성장해야 한다.


공동체 문화도 활성화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술빚기, 텃밭영화 보기, 일일교육활동, 마을사진 찍기, 역사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가능하다.


텃밭 가꾸기 끝난 후의 남동희망공간 회원들 도심 텃밭 가꾸기로 에너지 소비 줄이고, 생태환경 조성

 

그런 모든 상상이 실현 가능할까?  도시 텃밭이 생태적으로 만들어져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면 다양한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남동희망공간 텃밭은 긍정성과 더불어 한계도 있다. 

 

도시텃밭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하고, 가능하면 이웃들이 함께 경작할 규모가 돼야 한다. 그래야 매일 아침저녁으로 작물을 살피며 이웃과 만나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다. 여가 시간도 충분해야 한다. 새벽에 나갔다가 저녁이 늦어야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라면 텃밭은 언감생심이다. 생명을 키우는 일에는 꾸준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농사짓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텃밭을 경작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도심 곳곳에 주차장을 확보해야 하듯 삶터 여기저기에 적은 돈으로도 농사지을 텃밭을 만들어야 한다. 기후위기시대, 식량위기를 대처할 방안이 될 수 있다. 


도심의 텃밭은 좋은 점이 많다. 먹거리 문제로부터 생기는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도, 생태환경을 조성하는 데 요긴한 방법일 수도 있다.


20여 년 전부터 다양한 도시농업운동이 펼쳐지고 있고, 2011년 도시농업지원법이 만들어졌다. 정부는 정부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여러 제도를 만들어 도시농업을 지원하고 있다. 남동구도 2017년 도시농업지원법을 제정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남동희망공간 회원들의 '희망 텃밭' 

도시 자체를 '5도 2촌' 공존할 공간으로 만들자


마을을 거닐다 보면 주차장과 담벼락 한편 손바닥만 한 땅에서 흙을 일구고 작물을 키우는 이웃들을 본다. 큰 화분에 고추를 심고, 스티로폼박스에도 이것저것 키운다. 이런 이웃들에게 몇 평이라도 함께 경작할 땅을 주면 그 자체로 좋은 '마을 텃밭'이며 그곳에서 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요즘에는 '5도 2촌' 라이프 스타일이 각광 받고 있다.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시골에서 산다는 말이다. 그러나 두 곳에 주거공간을 들고 매주 이동하며 생활하는 삶은 시간은 물론 에너지 자원 낭비가 아닐까. 


도시 자체가 '5도 2촌'을 공존할 곳이면 어떨까. 4일은 직장에서 일하고, 3일은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 먹거리 일부를 해결하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농업위기와 환경문제, 도시인의 정서 안정과 여가생활, 마을공동체 형성에 좋은 방안이다. 인구가 줄어 늘어가는 빈 주택을 굳이 건축물로 활용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공동텃밭으로 만들고 녹지도 함께 늘려간다면 우리 삶터가 쾌적해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마을기획 청년활동가 송형선은 사단법인 마중물 사무처장을 거쳐 현재 남동희망공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이슈픽] 강선우 의원 '보좌관 갑질' 논란···야당 "사퇴해야" vs 여당 "충실히 소명"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보좌관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문제를 제기한 보좌진들은 "자택 쓰레기 분리수거, 변기 수리 등 사적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5년간 46명이 의원실을 떠났다"며 이례적인 인사 교체가 갑질의 방증이라는 목소리도 높다."변기 수리·쓰레기 분리수거까지"…...
  2.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가족 집에 들어서면 대문 옆에 헛간이 서고처럼 서 있는데 처마 끝에 도서 대여목록 카드처럼 여섯 자루의 호미가 꽂혀 있다. 아버지 호미는 장시간 반납하지 않은 책처럼 한번 들고 나가면 며칠씩 밤새고 돌아온다. 산비탈을 다듬는지 자갈밭을 일구는지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자루만 조금 길면 삽에 가까운 호미, 그 옆에 어머니 호미는 가장 많...
  3.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바이킹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으어어억 하는 사이 .
  4. [이슈픽] 국무회의 첫 생중계에 쏠린 시선···"투명성 강화" vs "긍적적 평가할 뻔" "국민이 정책 논의 과정을 볼 권리가 있다."2025년 7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무회의 전 과정을 국민 앞에 생중계했다. 대통령의 모두발언만 공개되던 관행을 깨고, 1시간 20분 동안 주요 현안에 대한 장관들과의 실시간 토론까지 국민에게 여과 없이 공개했다.정치권의 엇갈린 반응: "투명성 강화" vs...
  5. [새책] 일과 자유, 삶의 품위를 묻는《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현재를 희생하며 꿈꾸는 노동자들의 삶 택배기사, 물류센터 상하차, 패스트푸드 배달, 주유소 직원, 쇼핑몰 경비원, 온라인 쇼핑몰 창업 등 현장에서 일하며 인간의 품위와 자유를 고민한 한 청년의 기록이 있다. 고된 노동 속에서 마법 같은 순간을 발견하고 글쓰기를 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월북에서 일하는 이들의 기쁨과 슬픔을 기록한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를 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