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공제부금 일액 인상 추이 [자료: 건설노동부, 뉴스아이즈 AI]30일 아침, 꽃샘추위가 가시자 건설현장에도 모처럼 훈풍이 불었다. 건설노동자의 일일 퇴직공제부금이 노·사·정 역대 최초 합의를 거쳐 8700원으로 대폭 오른 것이다.
이주안 플랜트건설노조위원장은 "하루 6200원으로는 밥 한 끼 사 먹기도 힘들고 최저시급에도 훨씬 못 미친다"며 투쟁결의대회를 이어가는 현실이었다. 이번 대타협으로 건설노동자들은 더 나은 노후를 꿈꿀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을 얻게 됐다.
건설현장 떠도는 노동자 위한 유일한 생명줄
건설근로자 퇴직공제제도는 1998년 처음 세상에 나왔다. 현장 이동이 잦아 근속기간을 채우기 어렵고, 그 탓에 법정 퇴직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용·임시직 건설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사업주가 노동자의 근로 일수를 건설근로자공제회에 신고하고 매일 공제부금을 납부하면, 노동자가 건설업을 완전히 떠나거나 만 60세가 되었을 때 근로 내역을 합산해 퇴직공제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적립 금액은 늘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2017~2020년 노동계의 치열한 투쟁 끝에 하루 6200에서 300원 오른 6500원이라는 금액을 쟁취했지만, 이후 물가 상승에도 5년째 동결 상태를 면치 못했다.
퇴직공제금이 건설노동자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만, 최근 건설 경기 침체로 불안 요소도 커졌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2024년도 사업연보'를 보면, 2024년 퇴직공제금 지급 인원은 32만9449명으로 전년 대비 7.2% 늘었다. 지급액은 8680억5300만 원으로 같은 기간 34% 증가했다. 노동자 1명당 평균 263만5000원을 받아 2023년보다 25.1% 늘어난 수치를 보였다.
반면 미래의 퇴직금을 쌓고 있는 노동자는 줄었다. 2024년 공제부금 적립 근로자는 166만9505명으로 전년보다 4.4% 감소했다. 납부액 역시 9468억 원으로 1% 줄었고, 적립 일수도 1억4729만3000일로 3.5% 감소했다.
고금리와 고물가 속에 건설사 경영이 악화하고 신규 공사가 줄어든 여파가 노동자들의 적립금 감소로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2025년 건설 노동자 지원사업 현황 [자료: 국토교통부]
민간공사 사각지대 꼼수 막고 연금화 정책 드라이브
정부가 이번에 퇴직공제부금을 8700원으로 올린 배경에는 단순히 금액 인상을 넘어선 정책적 청사진이 담겨 있다. 바로 '퇴직공제금의 연금화'다.
현재 건설노동자의 퇴직공제금 수준은 법정 퇴직금 대비 66%에 불과하다. 일시금으로 한 번 받고 끝나기 때문에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책임지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
이에 정부는 전 사업장에 퇴직연금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기조에 발맞춰, 건설노동자의 퇴직금 역시 평생 받을 수 있는 연금 형태로 전환하려 한다.
이를 위해 건설근로자공제회는 2025년 9월 '퇴직공제금 연금화 및 특별퇴직공제금 지급체계 개선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개인 불입금 적립이나 타 연금과의 연계 등 다양한 방식을 살피고, 장기근속 노동자에게 추가 금액을 주는 특별퇴직공제금(7년 이상 30만 원, 10년 이상 50만 원, 15년 이상 100만 원)의 한도와 지급 방식도 상향할 계획이다.
연금화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적립액 확보가 필수적이기에 이번 8700원 인상은 정책 실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치였다.
사각지대 해소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50억 원 이상 민간공사에만 퇴직공제 가입 의무가 있다 보니, 일부 민간 기업들은 공사를 잘게 쪼개는 분리발주 꼼수로 적립을 피해 갔다. 퇴직공제금액 인상과 함께 민간공사 적용 범위를 공공공사처럼 1억 원으로 확대해 편법을 없애야한다.
제도 도입 30년을 앞두고 이루어진 이번 8700원 대타협이 건설노동자의 진정한 노후 안정을 여는 튼튼한 주춧돌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