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으로 가른 봄배추 속에는 꽃대가 꽃망울을 송송송 단 채로 쪼개져 있다
눈물을 흘리며 썰던 대파도 꽃대 속에 꽃망울을 알알이 박아 놓았다
뱃속에 이렇게 많은 알이 슨 것을 보니, 죽어서도 눈감지 못하고 뚜룩뚜룩 쳐다보는 것을 보니, 몸속, 무늬가 졌겠어, 아득하고 아득해져서 깊은 길이 났겠어, 생선 배를 가르며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봄에는 왜 이렇게 알 밴 것들이 많을까,
배란기 때마다 체온이 올랐겠지, 입덧으로 신 음식이 먹고 싶었을 거야, 낳을 때까지 먹고 싶던 홍옥 한 알처럼, 입이 달았을 거야, 생각했다
그래서 봄만 오면 바람이 단가, 살갗이 툭툭 갈라지며 저렇게 꽃이 피고 몸속, 지울 수 없는 무늬가 지는가, 배가 불룩해 지는가,
목이 메어왔다
산더미만한 배를 안고 다리가 퉁퉁 부은 임신중독증의 그 여자가 신발 밑창 자르는 일을 부업으로 한다면서 끓여 내오던, 그,
야, 배고프면 잠도 안 오잖아, 물기 고인 눈으로 웃던, 그, 봄,
-강미정 시인의 시 '불룩한 봄' 전문
강미정 시인의 시집 《상처가 스민다는 것》에 수록된 시다.
반으로 가른 봄배추 속 꽃대를 보며, 눈물 흘리며 썰던 대파 꽃대 속 꽃망울을 보며, 생선 뱃속 많은 알이 슨 것을 보며, 화자는 봄에 임신했던 여자를 떠올린다. 육체화 시킨 봄 이미지를 통해 임신과 출산의 기쁨 뒤에 고통을 감내하는 여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봄을 품어야 꽃을 피우듯 몸에 길을 내고 무늬를 만들어야 어미가 될 수 있다. 상처를 낸 것도, 긴 시간 상처가 스미도록 참아낸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이 아닐까.
요즘 활짝 핀 진달래꽃을 보며 인내했을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향숙 시인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