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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환상 소녀 최종회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3-29 00:00:02
  • 수정 2025-03-29 06: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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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일어나셨어요? 소녀는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가 내가 있는 테라스까지 나왔다. 소녀는 테라스 난간에 손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와아, 많이들 왔네. 뭐 하는 거니? 방생 기도 법회 하는 거예요. 아유, 버스가 몇 대야, 하나, 둘, 열다섯. 한 버스에 45명 타면, 가족 수 대로니깐 물고기는 더 많겠고. 참, 식사하세요. 나는 소녀가 숫자 세고 계산하는 소리에 골치 아파 테라스 탁자를 손으로 짚고 일어났다. 소녀는 족히 물고기 이천 마리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겠다며 일 층으로 내려갔다. 소녀는 식탁에 놓인 밥상보를 들었다. 밑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소녀는 가스렌즈 불을 켰다. 수저를 놓아주고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주었다.     

“엄마는 어디 가셨니?”

“방생 끝나면 저 사람들이 단체로 식사하고 올라가거든요. 예약된 식당에 일 도우러 갔어요. 이맘때는 식당이랑 건어물전에 불티나요.”

압력밥솥에서 밥을 퍼서 내 앞에 내려놓았다. 바글바글 끓고 있는 냄비가 놓인 가스 불을 끄고 국자를 들었다. 매운탕처럼 붉은 국물을 담은 스텐 국그릇을 내 앞에 놓았다.

“이게 뭐니?”

“우럭 어죽이에요,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이거 방생으로 풀어줬다가 되돌아온 거 아니니? 난 안 먹을래.”

“아유, 어제저녁에도 우럭구이를 잘만 드셔놓고. 세 마리나 드셨잖아요.”

그랬을 리가 없다. 흙바닥에서 몸통을 뒤틀고 있던 물고기를 봤는데 내가 그걸 먹었다고? 나는 소녀를 노려보곤 밥과 밑반찬을 먹었다. 파래무침은 시큼했고, 젓갈은 짰다. 구운 김은 눅눅했고 김치와 나물무침에서 젓갈 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게 어죽을 한 숟갈 떠먹었다. 칼칼한 첫맛에 꾸들꾸들 씹히는 식감이 쫄깃했다. 스텐 그릇을 내 앞으로 바짝 당기고 퍼먹는 나를 보며 소녀는 거봐요, 맛있죠? 했다. 소녀는 이천 마리 중 되돌아오는 몇 마리 물고기를 제외하고 바다로 나가 알을 낳는다고 생각해보면 엄청난 거라고 말했다. 

“제가 어렸을 때는요, 물이 빠진 갯벌에 청거북이 기어 다녔어요. 등에는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꼭 무당집에서 보는 부적처럼 기묘하기도 하고 무서웠어요.”

“청거북 방생은 금지 시킨 지 오래되지 않았어? 너, 몇 살이야?”

소녀는 자신이 서른세 살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소녀를 상대하기 싫어 식탁에서 일어났다. 오늘 아드님이 모시러 오시는 날이에요, 멀리 가지 마세요. 흰 자갈을 깔아놓은 마당으로 나서자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나는 천천히 마당을 벗어나 해안을 따라 걸었다. 간월사로 가는 길 초입에 물때가 적힌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주차장에는 대형버스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흰 면티에 파란 모자를 쓴 청년들이 지휘봉을 들고 길 안내를 했다. 갯벌에는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바다 둑길을 걸어 식당과 건어물전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갔다. 파란 비닐을 깐 좌판 위에 말린 우럭 세 마리씩 담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내려놓던 할머니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왕새우 튀김 다섯 마리 포장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머리를 잘라내고 반을 갈라 말린 분홍 볼락 대여섯 마리를 담아 좌판에 두곤 손을 앞치마에 쓱쓱 닦았다. 

나는 궁금했다. 왜 유독 볼락은 머리를 잘라내고 말리는 것일까. 가자미, 명태, 조기, 우럭은 머리까지 말렸다. 어떤 것은 통째 말리고 어떤 것은 머리를, 배를 가르고 말립니까. 이렇게 머리를 떼어내고 배를 갈라 꾸들꾸들 말린 것을 왜 물고기라 부르지 않습니까. 바다에서 갓 잡은 물고기를 생선이라고 부릅니까. 바다에 살아 있는 우럭을 왜 생선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나는 오랫동안 그런 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긴 나무 막대기에 주름 잡아 꽂아놓은 어묵을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먹었다. 어묵은 미지근했던 것이 두 세입에 차갑게 식었다. 

“새우, 저 펜션 가서 데워 잡술거지유?” 

“네.”

할머니는 새우를 흰 종이봉투에 담아 줬다. 나는 금세 기름이 스며든 종이봉투를 받아 들고 어묵을 하나 더 먹었다. 

“일이 없을 때면 늘 암자로 가 바다 끝에 앉아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물 때 상관없이 드나들던 때였지. 허공에 연결해놓은 줄을 잡아당겨 움직이던 갯배가 있었는데. 그이 땜에 없애버렸잖아.” 

할머니는 손을 허공에 올렸다 옆으로 휙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그냥, 휙, 바다로 떨어지더라고.”

나무 널빤지를 연결해 만든 갯배에 올라탄 이들 중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비구니 한 명, 공양주 보살 할머니, 지금은 건어물전 할머니가 된 젖가슴을 풀어헤치고 햇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 여자. 그리고 바다에 휙, 빠져버린 여자.

나는 스웨터 주머니에서 끝이 나달나달 해어진 사진을 꺼내 보였다. 

“아유, 몇 번을 말해유? 나랑 같이 요 횟집에서 일했다니깐. 방도 같이 썼시유. 매번 올 때마다 물어보고 그러우?”

할머니의 투박해진 말투에 놀라 나는 사진을 얼른 스웨터 주머니에 넣고 돈을 냈다.

“그이가 댁네 외숙모라면서유? 엊그제 아드님이 그러시더구만.”


정형외과 병원 원무과 대기 공간에는 늘 대형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연일 무섭게 비가 쏟아졌던 여름 장마가 끝날 무렵, 병원 세무 조사를 받았다. 세무서 직원들이 원무과를 돌아다니며 서류와 컴퓨터 하드를 떼어냈다. 원무과 직원들은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가볼 만한 여행지, 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내가 텔레비전 화면을 돌아봄과 동시에 바닷물에 위에 섬처럼, 유람선처럼 떠 있는 절이 보였다. 소개하는 아나운서가 말했다. 달이 뜨면 솟아나는 절입니다.

그제야 나는 외숙모가 환상이 아닌, 실제 저곳으로 갔구나, 생각했다. 석영에게 말했더니 그는 곧바로 가보자고 했다. 석영은 이리로 내려오면서 중간중간 운전대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임신으로 봉긋한 내 배를 문질렀다. 배가 뭉치지 않냐, 허리가 아프지 않냐, 배고프지 않냐 물었다. 석영과 내가 서산 간월사에 도착했을 때 달이 뜬 저녁이었고 절은 바다 위에 덩그러니 솟아있었다. 

나는 물이 찰박찰박거리는 갯벌을 걸어 간월사 쪽으로 갔다. 바다 위로 흰 나비 떼가 날아다녔다. 나는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가 왜 눈을 가렸는지 까먹었다. 손을 내렸을 때, 내 앞으로 하얀 새가 날아다녔다. 나는 검은 바위에 앉아 뭍을 바라보았다. 탐스러운 작약이 핀 장독대가 떠올랐다. 외숙모, 너무 늦게 왔어요. 소녀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은 어제의 일처럼, 아니, 지금, 이 순간처럼 또렷했다. 고추장을 푸러 가야 하는데. 

“할머니이, 물때에요, 어여 건너오세유. 아드님 오셨시유.”

소녀는 파란 들통을 들고 나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소녀의 뒤에 검은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석영이 손을 흔들며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검은 양복이 꼭 상복처럼 보였다. 나는 목을 꺾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쪽 허공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듯 밀려 들어오는 물의 양을 헤아릴 수 없었다.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슬픔을 골라내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검은 돌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음주부터는 '불탄 공장'이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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