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한항공 통제센터 오픈 [대한항공 제공]
하인리히법칙
2007년 '하늘을 나는 호텔' A380을 도입한 대한항공은 시승식을 가졌다. 기자 시절 시승기에 올라탄 내가 몰래 2층으로 올라가 맨 앞줄에 앉은 조양호에게 다가간 순간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반환점인 제주 상공에 부는 거센 비바람 탓이었다.
중심을 잃고 무릎 위로 넘어진 기자를 조양호가 붙들어 옆자리에 앉혔다. 얼떨결에 동석한 기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응시하는 조양호의 기세에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절차를 무시하고 기습인터뷰를 시도한 기자에게 조양호가 쏘아붙였다. "벨트부터 매시오!" 기자는 10분 가까이 야단맞듯 안전교육을 받고 나서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조양호에게 무례함은 안전불감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양호는 회장이 된 날부터 대한항공의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자처했다. 한 임원은 "미주지역본부장 시절 하루에 100대 가까운 항공기가 머리 위에 떠 있음을 생각하면 순간순간이 아찔한데, 회장님은 전 세계 상공에 수백 대가 떠 있는 것을 늘 염두에 두셨다"고 말했다.
1974년 입사 이래 조양호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항공기사고 때문에 경영수업을 받는 내내 전전긍긍했다. 20만 개에 달하는 부품이 들어가는 복잡하고 정교한 항공기는 그만큼 철저하게 정비하고 관리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자재와 정비 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조양호는 "적어도 부품이나 정비 문제로 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각오로 혁신을 거듭해 자재와 정비 품질 관리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원칙과 기준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사고는 계속 발생했다. 기체 결함이나 정비 불량이 아니라면 원인은 자명했다. 조종술과 운항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조양호도 모르지 않았지만 인사와 교육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건재하고 부친과 함께 회사를 일군 선배 경영진이 오랜 기간 구축한 조직관리 방식과 인사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친에 존경을 넘어 경외심을 가진 조양호에게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한항공은 1980년대 이후 2~3년 간격으로 사고가 발생하자 1990년대 이후 비행운영품질보증(FOQA), 안전장려금제를 시행했다.
기내 점검하는 한진그룹 조중훈 창업회장과 조양호 선대회장(왼쪽). [대한항공 제공]
1930년대 미국 여행보험사 매니저 헐버트 하인리히(Herbert W. Heinrich)는 7만5000건의 사고를 분석해 '1: 29: 300법칙'을 만들었다. 하나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같은 원인으로 29차례의 작은 사고가,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부상 당할 뻔한 사건이 300번이나 있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조양호도 크고 작은 항공기사고와 사소하게 보이는 사고 징후를 예의주시하며 분석했는데, 하인리히가 그랬던 것처럼 '사고를 막으려면 근본 원인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1986서울아시안게임, 1988서울올림픽 개최 후 해외여행 자율화로 대한항공은 취항노선과 운항편수가 급속도로 늘고 조종사를 비롯한 승무원 수도 해마다 배가됐다. 국내선도 성수기에 표를 구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하면서 대한항공은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불어난 인력을 제대로 교육하고 관리할 시스템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경영도, 안전도 '공학'이라고 생각한 조양호는 회사 규모가 커지고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한 운항과 안전 관리가 늘 불안했다. 사장이 된 지 몇 해가 지났는데도 환골탈태할 추진력을 확보하지 못한 자신이 답답했다. 1997년 여름, '하인리히의 법칙'은 예외 없이 대한항공을 강타했다.
넘어야 할 고비, '니미츠힐'
1997년 8월 6일 0시 42분, 대한항공 KE801편 B747-300 여객기(HL7468)가 괌 아가나(Antonio B. Won Pat)공항 착륙 직전 바로 앞 언덕 니미츠힐(Nimitz hill)에 부닥쳤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자 팔순을 바라보던 조중훈 회장이 노구를 끌고 괌으로 날아가 지휘할 생각까지 했는데 은퇴한 옛 임원들까지 불러들여 태스크포스팀을 꾸리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었다.
심이택 사장과 임무를 교대하고 잠시 서울대책본부에 들어와 있던 조양호의 생각은 달랐다. 반복되는 사고를 기존 방식으로 수습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이 기회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결심했다. 사고를 확실하게 매듭짓고 미래를 대비해 환골탈태해야 했다. 그 일을 해낼, 아니 해내야 할 사람이 자신임도 알았다. 조양호는 조중훈 회장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뜻을 거스르는' 직언을 했다.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를 포함한 모든 개혁의 전권을 위임받은 조양호는 다시 괌으로 날아갔다. 한진가(家) 세대교체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조양호는 미주지역본부 관리보좌역 이광사를 괌으로 불렀다. 자재·정비본부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 온 이광사와 함께 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측에 "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수습작업을 서울대책본부로 이관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책임을 대한항공이 지겠다"는 조양호의 결연한 의지에 유해 발굴에 지쳐 있던 NTSB도 협조하기로 했다. 조양호는 공항을 나서면서 미안함과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다.
2000년 1월 13일 NTSB 보고서에서도 확인됐지만 괌사고의 주원인은 운항승무원의 과실이었고 아가나공항의 부적절한 장비 운용이 부수 요인이었다. MSAW와 ILS 외 안전장치들은 정상 작동하고 있었고, 비슷한 시각 다른 비행기들은 악천후에도 문제 없이 착륙했기 때문이다. 이전 사고들은 대부분 테러에 의한 것이었지만, 괌사고는 ‘휴먼 에러’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안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귀국하기 며칠 전 조양호는 현장에서 회의를 소집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비장하게 말문을 열었다. "돌아가면서 사고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 보시오." 조양호는 고통스럽지만 ‘사고와 마주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정곡을 찔러 얘기하지 못했다. 뭐라고 말하든 특정 부서에 책임이 돌아갈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조양호가 생각하기에 조종사들의 책임은 명백했다. NTSB의 조사에서도 관제사 과실과 조종사 과실이 모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은 대한항공의 책임이었다. 관제사가 잘못된 신호를 보내도 조종사가 똑바로 대응했으면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다. 조종술의 문제가 있었음이 분명한데도 침묵하는 사고조사위원들을 보며 조양호는 실망이 컸다. 바로 그때 이광사가 소신을 밝혔다.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때 운전자가 누구냐에 따라 등을 기대고 맘놓고 가기도 하고, 다리를 모으고 전방을 주시하며 긴장한 채 가기도 하는데, 하물며 비행기를 타고 갈 때야 오죽하겠습니까? 저는 우리 비행기를 타고 다닐 때마다 솔직히 편하지 못합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서 조양호는 이광사에게 "다른 항공사들에 비해 근무조건이 부족하지 않고 안전교육에 그렇게 힘쓰는데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며 고통스러워했다. 대한항공은 괌사고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건설교통부로부터 1년 6개월간 국제노선을 배분받지 못하게 됐고, 한·중 수교가 됐는데도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 취항할 기회를 놓쳤다. 아시아나항공이 급성장한 것도 이 시기다.
미국도 신규 취항을 불허했는데 미 국방부(펜타곤)는 직원들에게 대한항공 비행기 탑승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캐나다와 독일도 특별 안전점검을 요청하는 등 대한항공의 국제 신인도는 바닥에 떨어졌다. 보험사들의 기피 대상이 됐고 보험갱신요율도 급등했다. 급기야 항공동맹 '스타얼라이언스'로부터 안전기준 미달을 이유로 가입을 거절당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조양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격납고 점검하는 한진그룹 조중훈 창업회장과 조양호 선대회장(왼쪽). [대한항공 제공]
FSF 안전진단과 '델타컨설팅'
조양호는 객관적 평가와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항공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항목들을 상식선에서 이해하는 문화가 만연해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조양호는 세계 최대 항공안전 비영리단체인 항공안전재단(FSF, Flight Safety Foundation)에 정밀진단을 맡겼다. 1998년 4월 한 달 동안 운항, 정비, 객실, 여객·화물운송, 보안에 이르는 전 부문에 걸쳐 안전진단을 한 FSF는 "운항 기준과 제도를 국제표준으로 정비하고 선진 운영체제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괌사고로 '스타얼라이언스' 가입이 무산되면서 조양호는 새로운 항공동맹체를 결성하기로 하고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와 함께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안전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친구인 줄 알았던 항공사들마저 안전성을 문제삼아 스카이팀에서 대한항공을 배제하려고 했다. 한번 각인된 '사고항공사'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경쟁사였다.
조양호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대한항공을 스카이팀에서 배제하려는 항공사들에게 "얼라이언스는 친구가 되는 것이며 어려울 때 돕는 게 진짜 친구디.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것이 동맹의 진정한 가치"라고 설득했다. 델타항공의 반대가 극심했는데 조양호는 델타항공 역시 1990년대 초까지 잦은 사고로 미국인들의 비난과 기피 대상이었지만 미연방항공규정(FAR)에 따른 안전 강화 프로그램을 추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항공사로 거듭난 것에 주목했다.
조양호는 "델타도 불과 10년 전 항공기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사고로 비난과 조롱을 받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의 안전한 항공사로 거듭나지 않았느냐. 안전성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우리에게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델타는 조양호의 논리에 압도돼 스카이팀 가입 반대 의사를 철회했을 뿐 아니라 조양호의 요청에 따라 적극적으로 안전컨설팅(Delta Consulting)을 해주기로 했다.
'델타컨설팅'은 운항·객실·정비·운송·보안 등 안전 관련 부서를 대상으로 동시에 진행됐다. 모든 조종사를 심사하고 FSF의 진단 결과를 보완해 분야별 개선 계획을 세워 실행했다. 조양호는 의식 개혁, 교육 혁신, 안전시설 투자에 이르기까지 안전 혁신을 이루고자 했다. 19개월 동안 200억 원을 투자한 델타컨설팅을 통해 델타항공에 적용된 정책과 절차를 수용하고 제도와 절차를 국제표준인 FAA 기준에 맞췄다.
항공오케스트라 지휘자 'KAL OCC'
1999년 FSF와 델타는 대한항공에 "운항통제센터(OCC)를 구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조양호는 새 운항통제시스템 도입을 위해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US항공 시스템을 확인하고 비교했다. 절차와 기준보다 경험에 의존해 운항 결정을 내리는 관행은 조종사들이 무리한 상황에서 안전을 위한 과감한 판단을 주저하게 해 사고 가능성을 높였다. 조양호는 운항 전 과정에 대해 기장과 운항관리사에게 공동 책임을 부여하고 경험이 아니라 정보에 의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조양호는 델타항공과 FAA 기준으로 객실안전 매뉴얼을 재구성하고 안전훈련 과정을 신입·정기·복직 과정으로 전문화했다. 델타항공에 위탁해 안전전문강사를 양성하고 컴퓨터기반교육(CBT)을 위해 CBT에 필요한 컴퓨터 12대 등을 도입하고, 비상탈출 훈련용 모형기, 항공기 출입문 개폐 실습 장비도 확충했다.
1999년 2월 FOQA(Flight Operations Quality Assurance) 분석을 전 기종으로 확대하고 조종사의 개인 참고용으로 활용하던 자료를 회사 차원 교육에 활용했다. 3월에는 안전보안실 기종담당자(Fleet Manager)를 임명해 기종별로 관리하고 안전전문기관에 교육을 위탁했다. 6월에는 최신 안전 동향과 정보를 담은 도 발행했다. 대한항공의 전산화, 디지털화를 주도했던 조양호는 안전 부문에도 IT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 글로벌 안전 기준에 맞는 항공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자체적인 안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강화된 안전관리 IT시스템을 도입했다.
1999년 US항공이 쓰던 미국 젭슨(Jeppesen)의 첨단 비행계획 시스템과 기상정보·비행감시 시스템을 도입할 때도 조양호의 얼리어답터다운 혜안이 적중했다.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아메리칸항공 같은 항공사들이 쓰는 소프트웨어는 슈퍼컴퓨터용이어서 실시간 업데이트가 어려운데다 큰 장비를 들여오면 유지비가 커지고 인원도 많이 필요했다. 조양호는 중형 항공사인 US항공이 사용하는 젭슨 제품을 선택했다. PC 기반인데다 온라인으로 업데이트를 해주어 투자 대비 효율이 높았다.
조양호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할 때 '소스코드(source code)'를 달라고 요구하는 게 원칙이었다. 시스템을 개발해 기존 프로그램을 대한항공에 적용하기(customizing) 위해서였다. 판매사들은 소스코드를 좀처럼 주려 하지 않았지만 꼭 팔아야 하면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조양호는 젭슨에 소스코드를 요구하는 대신 유지보수를 맡겼다. 안전과 직결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소스코드를 가지고 통제센터 시스템을 자체 업데이트, 업그레이드 하면 위기 발생시 리얼타임으로 대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안전에서는 소스코드를 받는 원칙을 깬 것이다. 조양호에게 안전보다 우선하는 원칙은 없었다.
젭슨 프로그램은 2000년 7월 현업에 적용됐는데 그래픽화면을 통해 비행 계획, 비행 감시, 기상데이터 분석을 활용하면서 통제센터의 업무처리 능력이 대폭 강화됐다. 10월 사고조사 전문조직 'Go Team'도 신설했다.
델타의 운항안전 전문가가 대한항공의 조종실을 점검할 때 기장이 햇빛이 눈부시다며 전문가가 앉은 쪽 창문을 신문지로 가리자 오히려 "조종사는 어떤 경우라도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컴퓨터를 맹신하고 자동항법장치에만 의존하는 것도 지적하고 "기장과 부기장이 체크리스트를 복명복창 하면서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어 커뮤니케이션에도 문제가 많다고 했다.
조양호는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델타의 전문가를 2000년 1월 운항·정비·통제·객실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했는데 그가 바로 해리 데이비드 그린버그(Harry David Greenberg)다. '대한항공 최초의 외국인 임원'으로 기록된 그린버그는 델타항공 운항본부장 출신으로 운항정보시스템인 '델타프로그램'을 개발해 안전성을 높인 주역으로 대한항공으로 옮기기 전 항공컨설팅업체 컴패스그룹을 이끌었다. 이러한 노력을 토대로 안전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트레이닝센터 시찰. [대한항공 제공]
조양호는 2000년 8월 본사에 흩어진 팀을 한데 모아 종합통제센터(OCC)를 구축했다. 각 부문이 떨어져 있으면 위급 시 연락을 주고받다 시간만 보내기 일쑤지만 한데 모여 있으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조양호는 "항공업무가 오케스트라라면 OCC는 지휘자"라고 명명했다. 2002년에는 안전품질평가팀을 신설해 전략계획, 지상안전, 비행안전, 안전품질평가, 항공보안 5개 팀으로 확대해 안전운항 체제를 확립할 조직적 기반을 구축했다.
조양호는 2004년 OCC를 지금의 시스템으로 갖추었다. 대한항공 OCC는 각종 상황에 가장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운항관리사, 기상전문가, 승무원스케줄러, 정비사 등 안전운항 관련 모든 분야의 직원들이 하루 3교대, 1년 365일 한 곳에 모여 끊임없이 협업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상조종사'로 불리는 운항관리사는 항공기가 계획된 항로로 가는지 살피며 이·착륙 확인, 비행계획서 작성 등을 하고 돌풍이나 제트기류 등이 발생하면 재빨리 다른 항로를 찾아가도록 유도한다. 정비사는 정비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기령과 상태에 맞게 정비한다. 2016년 OCC 옆에 정비본부를 합류시켜 항공기 운항의 핵심인 정비문제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 했다.
하루 450편에 달하는 비행편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로 안전 운항에도 만전을 기했다. 80인치 대형 스크린에 운항 중인 모든 항공기의 레이더 항적을 1분 간격으로 표시하는 비행감시화면(ASD)을 띄워 놓았다. 비행기마다 편명과 고도가 숫자로 표시되는데 수십 개의 비행기 항로가 노란색 점선으로, 구름 위치, 제트기류, 한랭전선 등 기상정보는 기호로 빼곡하게 나타난다. 운항정보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스크린 양 옆 4개 모니터로 전 세계 속보가 방송된다.
이 시스템을 통해 이륙 준비부터 비행, 착륙까지의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날씨, 공항상황 등 각종 정보를 항공기에 제공한다. 출발 48시간 전부터 기상예보와 도착공항 상황을 파악해 최적의 항로를 찾아 조종사에게 비행계획을 전달한다. 개별 모니터로 항로와 고도, 특정 지역 통과시간, 연료량 등을 체크해 정상 운항하고 있는지 살핀다. 비행계획과 차이가 나면 빨간색으로 표시가 뜨고 경보가 울린다. 긴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OCC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까지 대비했다. 1년에 2회 사장이 참여하는 훈련을 통해 사고에 대비하도록 했다. 한번은 폭우로 전기시설이 침수돼 정전이 됐다. 자가발전설비가 있지만 전기가 아웃될 수 있어 서울 등촌동 비상대피시설로 이동했다. 평소 훈련이 도움이 됐다. OCC 구축 뒤 인명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은 동남아, 중국 항공사들은 물론 유럽 항공사들도 대한항공 OCC를 견학한다. 운항통제 인력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1998년부터 54명을 미국 쉐필드(Sheffield)비행학교 FAA운항관리사과정(Aircraft Dispatcher Course)에 보냈고 전원 FAA운항관리사 면허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