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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소요 5편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9-13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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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는 머그 컵을 들어 남은 커피를 마시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소요의 팔을 잡았다. 

“양산을, 양산을 하나 사야겠어. 붉은 것으로.”

소요는 다시 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연기를 내뿜으며 몸을 나를 향해 다가왔다.

“한 가지만 묻자, 너는 그 섬에서 살고 싶니?”

소요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나는 대답을 못 하고 컵만 만지작거렸다. 소요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말없이 일어나 커피숍을 나갔다. 한 달 전, 소요는 서류를 가지고 섬에 왔었다. 소요는 여자가 사라졌을 때 당시, 섬 해안에서 모래를 퍼 갔던 선박과 선박회사를 조사해 찾아냈다. 그들이 어떤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위험을 알리는 팻말도 없이 불법으로 모래를 퍼 생긴 구덩이에 빠져 여자가 죽었다고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이었다. 소요는 우리에게 증인을 서고 서류에 사인해 달라고 했다. 서류를 당시 선박회사에 제출할 것이고 거절할 경우, 언론사와 환경단체에 노출할 계획이라 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 사람 넋은 저기에 있는데.”

아버지는 마당 아래 펼쳐지는 먼바다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버지와 내가 사인을 하지 않자 소요는 우리의 도장을 만들어 찍을 것이라고 했다. 소요가 떠난 후 아버지는 술을 마시기 위해 목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무엇을 보았니, 무서운 것을 보았어요, 그건 꿈이란다, 그러니 어서 꿈에서 빠져나오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아요, 저기 무리에서 벗어나 천천히 날아가는 새가 보이니, 저렇게 뒤처진 새가 나쁜 꿈을 물고 날아갈 거야, 새에게 말해버려, 그리고 잊어라. 아버지의 목선에 앉아 붉은 양산을 펴서 들었어요, 아버지는 물때를 잘 알았어요, 아버지는 바닷물에 휩쓸려 내려가다 그물에 걸린 생선을 끄집어냈어요, 바로 눈앞에서 모래언덕이 솟아올랐어요, 풀등이었어요, 그 풀등 한가운데 긴 머리카락이 온몸을 치렁치렁 휘감고 있는 거대한 생선이 있었어요, 팔딱거리지 않았지만, 생선은 은빛으로 빛났어요, 생선의 눈에 구멍이 뚫려 있었어요, 구멍에서 모래가, 반짝거리는 은빛 모래가 흘러내렸어요, 풀등이 점점 더 넓은 모래언덕을 드러낼 때까지 나는 그것에 시선을 두었어요, 아버지의 목선이 풀등 가에 닿았을 때, 그것이 여자라는 것을 알았어요.


여자가 아버지를 졸라 목선에 올라타면서부터 섬마을 사람들은 대놓고 아버지를 나무랐다. 여자가 발목까지 내려오는 하늘거리는 치마를 손으로 잡고 여객선에서 내릴 때부터 아니꼬워했던 터였다. 게다가 여자는 공판장 평상에서 벌어지는 술판에 끼어들었다. 뱃 사내들의 고기잡이 경험에 호기심을 드러냈고 시시한 농담에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었다. 여자는 목선에 오를 때면 늘 양산을 펼쳤다. 붉은 꽃이 그려진 양산은 바다에서 금세 눈에 띄었다. 목선에 커다란 꽃 하나가 피어 바다를 떠다니는 것 같았다. 목선의 움직임은 섬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렀다. 여자는 아버지가 그물에서 건져낸 해삼을 칼로 도려내 주면 쪽쪽, 받아먹었다. 그즈음 나는 아버지의 목선이 출항하거나 회항할 때 모래를 퍼 올리고 있는 커다란 선박을 자주 목격했다. 먼바다에 있던 선박은 차츰차츰 섬 가까이 왔다. 이른 새벽 혹은 늦은 밤에 해안가까지 바짝 다가왔다. 나도 보았고, 소요도 보았다. 여자도 보았고, 섬주민들도 봤을 거였다. 여자는 만나는 섬주민을 붙잡고 선박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주민들은 여자의 말을 못 알아듣는 척했다. 여자가 불법 모래체취, 라는 말을 꺼냈을 때 주민들이 오히려 화를 내며 여자의 말을 막았다. 여자가 아버지를 설득해 섬관리 위원회에 전화를 걸도록 했다. 처음엔 아버지도 여자의 말에 동조해 바닷속 모래를 마구 퍼내면 본류대 방향이 바뀌고 물골을 헤아릴 수 없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섬관리 위원회 본부에서 조사를 위해 밤에 해경을 보냈을 때는 정작 선박이 나타나지 않았다. 해경은 형식적으로 두 번 더 왔다가 아버지에게 허위신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술기운에 여자의 어깨를 후려쳤다. 그리고 소문이 돌았다. 여자가 섬 사내들을 유혹한다는 소문이 아버지의 귀에까지 닿았다. 가끔, 여자는 녹색 술병을 들고 해안가에 묶어놓은 목선에 오르기도 했다. 양산으로 술병을 가리고 바다를 향해 앉아 술을 마신다는 것을 소요와 나는 알았다. 술에 취한 여자가 잠들었을 때, 아버지가 공판장을 지나 목선으로 다가갔다. 공판장 앞에 섬 여자들이 모여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소요와 나는 나무를 베어내어 시야가 넓어진 마당에서 바다를, 아버지의 목선을 내려다보았다. 


-계속-


박정윤 소설가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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