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고공에 매달렸던 사람이 600일 만에 지상으로 돌아왔다. 억지 해고로 올라갔고 회사의 외면과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인해 농성을 지속해야 했다.
회사는 공장 문을 닫으면서 17명을 해고했다. 다른 지역에 있는 공장은 156명을 새로 채용하며 운영을 계속했지만 고용승계를 해달라는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
겨울에 고공농성장을 차린 두 노동자는 여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내려오지 못했다. 겨울 내내 가물었고 2월에는 늦게까지 추위가 지속됐다. 4월에 한 노동자가 건강 악화로 내려와야 했다.
긴 기간을 버텼던 노동자 박정혜 씨는 여당 대표의 책임 있는 약속을 듣고 지면에 발을 디뎠다.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팀을 직접 구성하겠다는 말을 듣기 위해 600일을 기다려야 했다. 세계 역사상 가장 긴 고공농성이었다.
그리고 세종호텔 앞 도로 위 10여 미터 높이의 폭 좁은 가설물에는 여전히 서울 세종호텔지부 '후지야'의 주방장이던 고진수 씨가 아직도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바로 아래로 차들이 계속 지나다니는 위태로운 자리다. 그 역시 해고노동자다.
한국현대사에서 고공농성의 역사는 치열했다. 벽과 천장 없는 곳에서 뜨겁고 더운 계절을 나는 것만도 목숨을 거는 일인데, 더하여 단식을 하기도 했다. 황석영이 한국노동사를 집약한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창비, 2020)를 쓰면서 그 시작과 끝에 고공농성을 배치했던 것도 당연해 보인다.
세종호텔지부
왜 그렇게 목숨을 거는가? 평양 평원고무공장 파업 강제해산 이후 을밀대 지붕에 섰던 스물여섯 살 강주룡의 대답은 간단하다. 호소하기 위해서다. "자살하기 위해 나섰다가 사람들에게 호소나 하고 죽자고 지붕에 올랐다"는 것이 1931년에 잡지 《동광》에 실렸다. 박서련이 이 사건을 찾아 쓴 소설이《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 2018)이다.
현장을 찾는 기록노동자 희정이《여기, 우리, 함께》(갈마바람, 2020)에서 제시한 대답인 '임금 체불 정도로는 기자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에는, 좀 더 복잡한 속내가 숨어 있다. 그럼에도 해법은 분명하다. "굴뚝에 오르고, 망루를 짓고, 끼니를 거부하고, 차가운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고 질문이 생겨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이 뒤이은 고공농성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현대 그룹과 경찰, 법원이 가세한 폭력적인 노조 봉쇄 전략에 4월 26~27일 78명이 82미터 높이의 골리앗에 올라갔다.
이런 일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2년 전 백무산의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청사)에는 골리앗 크레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그렸으리라 짐작되는 시가 실렸었다. 고공에서 밧줄 하나에 매달려, 무수한 목숨을 앗아간 일을 하는 노동자를 그는 '깃발 대신 매달린 사람'이라 불렀다.
노동자들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위해서, 파업할 권리를 위해서, 부당해고에 저항하기 위해서, 고용승계를 위해서, 노조 탄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다. 가족을 위해 동료를 위해 앞으로 이 땅에 노동하며 살아야 할 인간을 위해, 항의하는 인간의 목소리를 막아서는 무관심의 벽을 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머무는 하늘은 그들에게 막다른 곳이면서 역설적으로 유일한 길이 열리는 곳이었다. 이제 그 길이 저 허공이 아니라 이 땅 위에 다양한 방식으로 널리 펼쳐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실질적인 대책을 기다린다. 인간의 가치에 대한 신뢰를 담은, 확실한 희망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