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강매역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09-21 00:42:46
  • 수정 2025-09-21 10:44:15

기사수정


강매역은 아득했다

봄과 가을 사이에 있었다

새들과 맨드라미가 와서 자주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할 일도 없고 한 일도 없이 배가 고파지면

나는 강매역 개찰구에 서 있는 사람이 궁금해져서

아득히 논밭 사이를 건너 강매역에 가서 표를 끊었다

백마나 송추쯤에 내려서

다시 강매역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강매역은 아득했다

새들과 맨드라미와 내가 자주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일도 생겨나지 않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류근 시인의 시 '강매역' 전문



2025년 《녹색평론》 가을호에 실려있는 시이다.


"강매역"은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역인데 1971년에 개업했다가 행신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2009년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2014년부터 재개되어 운행되고 있다.


그래서인가 시에서도 "강매역"은 특정한 시공간에 고정되지 않고 현실과 상상 사이, 그 경계에 자리하는 느낌이다. 머무르고 싶지만 곧 떠나야하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아득한 공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새들, 맨드라미와 함께 자주 안쪽을 들여다보아도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 기다림과 부재를 동시에 경험하는 곳이다.


시를 읽다보면 무언가 아득하지만 마음은 홀가분해짐을 경험하게 된다. 언젠가 떠나야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이 목적없는 기다림이겠다 싶다. 그러다가도 빅터 터너가 말한 리미널리티(Liminality)가 떠오르기도 한다. 기존의 질서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새로운 질서가 교차하는 '과도기적 경계'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긍적적인 변화를 꿈꾸게 한다.


지금은 여름과 가을의 경계이다. 도착과 출발, 한 일과 할 일 "사이"에서 예전과 다른 가을을 계획하는 것도 멋진 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한국은행 소비자동향] 2026년 1월 소비심리 훈풍…'집값·금리 상승' 전망도 꿈틀 2026년 새해, 소비 심리가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10.8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달보다 1.0포인트 오른 수치로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소비자들이 경제 상황을 과거 평균(2003~2025년)보다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지수를 끌어올렸다. 6개월 전과 비..
  2. [수출입동향] 2026년 1월, 수출 600억 달러 시대 개막…반도체 끌고 미국·중국 밀었다 대한민국 수출이 2026년 새해 첫 달부터 유례 없는 대기록을 세우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6년 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1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33.9%나 급증한 658.5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1월 수출 중 처음으로 600억 달러 선을 돌파한 실적이자 8개월 연속 해당 월의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수...
  3. [경제포커스] 연봉 올랐는데 실수령액은 그대로?…2026년 건보료·국민연금 동반 인상 김당황 씨는 지난달 연봉협상에서 5% 인상이라는 기분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1월 월급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실수령액이 예상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연봉은 올랐는데 통장에 들어온 돈은 지난해 12월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1월 월급날을 예상한 김 씨의 스토리다. 새...
  4. [한국은행 국내총생산] 2025년 GDP 1% 턱걸이 상승…4분기는 0.3% 감소 실질 GDP 속보치는 분기 마지막 월의 실적 자료를 모두 이용하지 못해 추후 공표할 GDP 잠정치와 차이가 있을 수 있음한국 경제가 2025년 연간 1.0% 성장을 힘겹게 달성했다. 웃을 수만은 없는 성적표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2025년 4/4분기 및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지난 4분기 실질 GDP는 전기 대비 0.3% 감소하며 '역성...
  5. 국경 노리는 코카인·케타민…관세청, 2025년 마약밀수 3.3톤 적발 대한민국 국경이 마약과의 전쟁터로 변모했다. 관세청이 발표한 '2025년 마약밀수 단속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경 단계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1256건, 중량은 무려 3318kg이나 됐다. 전년 대비 건수는 46%, 중량은 321%나 폭증한 수치로 관세청 개청 이래 역대 최대 규모다.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후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여행자를...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