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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두만강 푸른 물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6-02-15 08:01:11
  • 수정 2026-02-15 17: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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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고다공원에 갔지 비오는 일요일 오후 늙은 섹스폰 연주자가 온몸으로 두만강 푸른 물을 불어대고 있었어 출렁출렁 모여든 사람들 그 푸른 물속에 섞이고 있었지 두 손을 꼭 쥐고 나는 푸른 물이 쏟아져 나오는 섹스폰의 주둥이 그 깊은 샘을 바라보았지 백두산 천지처럼 움푹 패인 섹스폰 속에서 하늘 한자락 잘게 부수며 맑은 물이 흘러나오고 아아 두만강 푸른 물에 님 싣고 떠난 그 배는 아직도 오지 않아 아직도 먼 두만강 축축한 섹스폰 소리에 나는 취해 늙은 연주자를 보고 있었네 은행나무 잎새들 노오랗게 하늘을 물들이고 가을비는 천천히 늙은 몸을 적시고 있었지 비는 그의 눈을 적시며 눈물처럼 아롱졌어 섹스폰 소리 하염없을 듯 출렁이며 그 늙은 사내 오래도록 섹스폰을 불었네


-이대흠 시인의 시 '두만강 푸른 물' 전문



이 시는 이대흠 시인의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에 실려있다.


파고다공원은 3.1운동 등 우리 민족 근현대사의 상징적 장소다. 그곳에서 어떤 늙은 사내가 온몸으로 "두만강 푸른 물"을 연주하고 있다. '두만강'은 일제시대 수많은 사람과 애국지사가 살길을 찾아 만주로 떠날 때 건너간 한(恨)이 담긴 강이다. 그곳에서 연주되는 "두만강 푸른 물"은 역사의 강이고 민중의 눈물이 흐르는 물이라 할 수 있겠다. 


내 님을 싣고 떠난 그 배는 오지 않더라도 비 오는 일요일에 연주자는 그들을 대신해 오래도록 온몸으로 불고 있다. 화자도, "출렁출렁 모여든 사람들"도, 은행나무 잎새들도 그 푸른 물속에 섞여 함께 물들고 있다. 시를 읽다보면 섹스폰이 늙은 연주자의 몸이고 화자 자신의 정서를 대변한다. 음악인지 비인지 눈물인지 모두가 섞여 젖고 있다.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지 않아도 같은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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