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자 수 및 자살률, 2014-2024(자료: 통계청)
대한민국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는 40대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1983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암을 넘어섰다. 육체적 질병보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더 많아진 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만4872명이나 된다. 전년보다 894명이 늘어나며 하루 평균 40.6명이 세상을 등졌다. 이는 2011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9.1명으로 치솟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의 뼈아픈 후폭풍과 복합적 위기
과거 외환위기나 동일본대지진 등 대형 재난이 지나간 뒤 2~3년의 시차를 두고 자살률이 폭증했다. 이번 수치도 코로나가 남긴 사회경제적 충격의 영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2022년 약 37만3000명이던 사망자 수가 2023년 35만2511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늘었다.
인구 고령화도 사망자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80세 이상 사망자가 전체의 54.1%를 차지해 10년 전보다 15.3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30대부터 50대까지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장년층의 위기가 심각하다. 전체 자살자 가운데 50대가 3151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40대 사망 원인에서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은 26.0%를 기록해 암(24.5%)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실직과 소득 감소, 빚 부담 등 경제적 위기와 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 고립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중장년층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유명인의 죽음을 모방하는 베르테르효과와 지역 사회의 정신건강 전문 인력 부족 현상도 사태를 키운 요인이다.
남성이 여성의 2.5배…불명예스러운 OECD 1위
성별에 따른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남성 자살률은 41.8명으로 16.6명을 기록한 여성보다 2.5배 높았다. 전년과 비교해 여성은 0.2명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남성은 3.5명이나 늘어 증가 폭이 훨씬 가팔랐다.
연령대별 자살률을 살펴보면 80세 이상 노년층이 78.6명으로 압도적인 최고치를 보였다. 국제 사회와 비교하면 한국의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연령표준화 자살률을 적용하면 한국은 26.2명이다. 이는 회원국 평균인 10.8명보다 2.4배 높은 수치로, 일본과 에스토니아를 제치고 여전히 압도적인 1위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응급실 연계부터 AI 감지까지, 국가 총력전 돌입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닥뜨린 정부는 12일 '2025 국가 자살 예방 전략'을 내놓으며 총력 대응을 선언했다.
우선 응급실과 119, 지역 정신건강센터를 촘촘하게 연결해 자살 시도자에게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위기 대응 체계를 짠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상담 전화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온라인에 퍼진 자살 유발 유해 콘텐츠를 상시로 감시해 차단한다.
전국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자살예방관을 새로 두고 전담 조직을 꾸려 지역 단위의 현장 대응력을 끌어올린다. 여러 부처의 협력을 지휘할 범정부 추진본부도 설치해 흩어진 취약계층 지원 정책을 하나로 모은다.
이상원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국가적 위기 상황임을 강조하며 예산과 인력을 대폭 늘려 자살 예방 정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