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우리 집에 복이 많았다. 숟가락에도 福, 주머니에도 福, 베개에도 福, 횃대보에도 福, 옷고름에도 福, 머리댕기에도 福, 저고리소매에도 금박으로 물든 福이 있었다.
눈만 뜨면 福과 함께 살았지만 한 번도 부자가 되지 못했다. 복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福자가 찍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어도, 福자를 수놓은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다녀도 늘 배가 고팠다.
발끝만 까닥거려도 '복 나간다' 잔소리 많은 엄마는 우리 집에 사는 복이 달아날까 늘 걱정이셨다.
-마경덕 시인의 '넘치는 복福' 전문
마경덕 시인이 쓴 에세이집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에 실린 글이다. 시처럼 짧으면서도 난해하지 않고 잘 읽힌다. 시절을 함께 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쉬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福'이 들어간 사물들이 많았다. 눈만 뜨면 福과 함께 살았지만 대부분 가난하게 지냈던 시절이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쓴 '구조언어학'에는 외부적으로 표기되는 '기표(記票 signifiant)'와 표기되는 말의 의미를 뜻하는 '기의(記意 signifié)'가 나온다. 그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하고 늘 미끄러지며 변형을 일으킨다고 한다.
화자의 집에도 "福"이라는 기표가 넘쳐도 아이러니하게 '풍요'나 '행복'을 의미하는 "복"에는 가닿지 않는다. 한 번도 부자가 되지 못했고, 늘 배가 고팠다. 오히려 어머니는 그 이름뿐인 福이 달아갈까봐 발끝도 까닥거리지 못하게 하신다. 이런 간극들이 결국 결핍이 되고 욕망을 불러온다.
어쩌면 "福"이라는 기표는 어머니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가족과 함께 암담한 현실을 견뎌나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자식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라는 바람을 담고 있는 건지도.
가난을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위트와 담담함으로 독자로 하여금 의미를 만들게 하고 감동까지 선사하는 글이다. 슬퍼도 웃게 된다.
어향숙 시인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