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빵집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03-22 23:32:06
  • 수정 2025-03-28 11:44:54

기사수정


빵집은 쉽게 빵과 집으로 나뉠 수 있다

큰 길가 유리창에 두 뼘 도화지 붙고 거기 초록 크레파스로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

우리 집 빵 사가세요

아빠 엄마 웃게요, 라고 쓰여진 걸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 버스 속에서 읽었다 그래서

그 빵집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과

집 걱정하는 아이가 함께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았다

못 만나 봤지만, 삐뚤빼뚤하지만

마음으로 꾹꾹 눌러 쓴 아이를 떠올리며


-이면우 시인의 시 '빵집' 전문



이 시는 이면우 시인의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에 실려있다.


요즘은 빵집도 거의 기업화되어 제빵사가 운영하는 작은 동네 빵집을 찾기 힘들다. 시 속 아이네 빵집도 그래서인지 손님이 많지 않은가보다. "집 걱정 하는 아이"는 빵이 많이 팔려 "아빠 엄마가 웃"었으면 한다. 유리창에 붙인 초록 크레파스로 쓴 삐뚤빼뚤한 도화지 글씨를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 버스 안에서 읽은 화자도 그 마음을 알 거 같다. 자세를 반듯이 고쳐앉고 꾹꾹 눌러 쓴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곡들은 어른보다 아이들이 연주를 더 잘한다고 한다. 기교보다는 음표에 집중하여 순수하게 연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어른들은 그 맑은 여백을 아이만큼 메우기가 힘들다고 한다.


때로는 때묻지 않은 아이의 행동이 어른에게 큰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인다. 오늘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과 집 걱정하는 아이가 함께 있을 것 같은 그런 빵집에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이슈픽] 강선우 의원 '보좌관 갑질' 논란···야당 "사퇴해야" vs 여당 "충실히 소명"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보좌관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문제를 제기한 보좌진들은 "자택 쓰레기 분리수거, 변기 수리 등 사적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5년간 46명이 의원실을 떠났다"며 이례적인 인사 교체가 갑질의 방증이라는 목소리도 높다."변기 수리·쓰레기 분리수거까지"…...
  2. [이슈픽] '외국인 부동산 투기 방지법'···이언주의 허가제 vs 주진우의 신고제 외국인 부동산 투기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여야 의원들이 잇따라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특히 중국인의 국내 주택 소유 비율이 절반을 넘어서면서 규제 강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이언주·주진우 의원, 외국인 부동산 투기 방지법 경쟁 발의7월 9일 이언주 민주당 의원이 '외국인 부동산 투기 방지법'을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
  3.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가족 집에 들어서면 대문 옆에 헛간이 서고처럼 서 있는데 처마 끝에 도서 대여목록 카드처럼 여섯 자루의 호미가 꽂혀 있다. 아버지 호미는 장시간 반납하지 않은 책처럼 한번 들고 나가면 며칠씩 밤새고 돌아온다. 산비탈을 다듬는지 자갈밭을 일구는지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자루만 조금 길면 삽에 가까운 호미, 그 옆에 어머니 호미는 가장 많...
  4.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바이킹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으어어억 하는 사이 .
  5. [이슈픽] 국무회의 첫 생중계에 쏠린 시선···"투명성 강화" vs "긍적적 평가할 뻔" "국민이 정책 논의 과정을 볼 권리가 있다."2025년 7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무회의 전 과정을 국민 앞에 생중계했다. 대통령의 모두발언만 공개되던 관행을 깨고, 1시간 20분 동안 주요 현안에 대한 장관들과의 실시간 토론까지 국민에게 여과 없이 공개했다.정치권의 엇갈린 반응: "투명성 강화" vs...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