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깁스, 터리사 H. 바커 지음 / 정지인 옮김 / 더퀘스트 / 19,500원
알츠하이머를 조기 발견하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을까? 신경퇴행성 질환 앞에서도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 방법은? 과학자의 언어로 풀어낸 치매 투병기는 우리 모두의 생존 매뉴얼이 될 수 있을까?
더퀘스트에서 30년 동안 치매 환자를 치료해 온 신경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대니얼 깁스가 쓴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를 펴냈다.
"2006년 여름, 있지도 않은 빵 냄새를 맡으면서 장미 향은 맡지 못했다."
어느 날 저자에게 알츠하이머 전조 증상이 찾아왔다. 그는 신경과학 지식으로 이 이상신호를 감지했고, 곧 스스로 뇌 건강 추적을 시작했다.
2015년 그는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담담했다. 10년 전부터 '인지예비능(cognitive resilience)'을 높이는 생활 습관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운동, 독서, 언어 게임, 균형 잡힌 식단—이 모든 것이 뇌 회복력을 키웠다.
인지예비능이 의학적 치료는 아니지만 정신적 삶을 지켜준다는 것으로 뇌에 회복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다.
알츠하이머의 평균 진행 속도는 8~10년. 깁스는 발병 8년이 지난 지금도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알츠하이머병 발병 가능성을 50% 낮추는 약이 있다면 우리는 기적이라 부를 것이다. 운동이 그 약이다."
이 책은 과학적 조기 진단, 생활 습관 개선, 인지예비능 개념을 상세히 소개한다. 병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연구와 강연, 글쓰기를 이어가는지도 보여준다. 저자는 "절망에 굴복하기보다 선택지를 찾고 결정을 내리면 자신감과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알츠하이머병이 공포와 두려움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아 있는 희망을 증언한다"는 저자는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 묻는다.
이 책은 의학서이기 전에 인간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가족, 직업적 정체성,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자기 존엄 등 저자의 이야기는 지난해 MTV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다.
그래서 이 책은 삶의 의미를 끝까지 지키기 위한 준비이자, 절망 속에서도 소중한 것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삶은 언제나 참 좋은 것"이므로.
대니얼 깁스(Daniel Gibbs)는 신경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였다. 30년 넘게 알츠하이머와 치매 환자를 진료하고, 연구·교육도 했다. 현재는 강연과 집필로 '뇌 건강의 결정적 시기'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A Tattoo on my Brain》를 썼다.
터리사 H. 바커(Teresa H. Barker)는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공동 저자다. 작가들과 협업하며 의학, 창조적 노년, 양육 등 주제를 강렬한 서사로 담아내고 있다. 《스트레스에 강한 아이의 비밀》《디지털 시대, 위기의 아이들》등을 썼다.
정지인은 인문·사회, 자연과학, 심리학, 의학 분야의 번역을 하고 있다. 《호라이즌》《그래서 지금 기분은 어때요?》《자연에 이름 붙이기》《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우울할 땐 뇌과학》《욕구들》《마음의 중심이 무너지다》《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장미의 나라》《바람의 집》등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