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4월 4일 오전 11시 대심판정에서 진행하기로 했다(뉴스아이즈 AI)
4월 4일 오전 11시. 대한민국의 모든 시선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향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헌재의 최종 선고가 생중계와 함께 내려지는 날이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가 발발한 지 123일째이자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111일 만이다.
지난달 25일 변론 종결 이후 38일간의 장고를 거친 헌재가 마침내 선고 기일을 확정하면서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좌우할 거대한 분수령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당시와 마찬가지로 공개 원칙을 적용해 일반인 방청도 허용된다.
헌정 사상 초유의 '6시간 비상계엄'이 불러온 123일간의 거대한 정치적·사회적 소용돌이는 이제 헌법재판관 8인의 최종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국가 원수의 권한이 정지되고 대행 체제가 이어지며 국정이 마비된 지난 4개월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시험하는 가혹한 시간이었다. 이제 모든 갈등을 봉합하고 새로운 헌정 질서의 방향을 결정지을 운명의 시간이 밝았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와 6시간의 긴박한 대치
모든 혼란의 서막은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23분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담화를 열고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했다.
6분간의 담화에서 대통령은 "야당의 주요 정부 관료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와 예산안 삭감이 문제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해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겠다"며 계엄 선포의 명분을 밝혔다.
밤 10시 29분 비상계엄이 공식 발동되자 완전 무장한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 본관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삼엄한 통제 속에서도 시민들과 보좌진은 국회로 몰려들어 온몸으로 계엄군의 진입을 방어했다.
그 틈을 타 본회의장에 집결한 여야 국회의원 190명은 전원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신속하게 가결시켰다. 결국 헌정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는 선포 약 6시간 만인 4일 새벽 막을 내렸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4월 4일 오전 11시 대심판정에서 진행하기로 했다(KTV 캡처)
'질서 있는 퇴진'과 '끝까지 싸우겠다'의 정면충돌
계엄의 총칼은 막아냈지만 정국은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야당은 계엄 해제 직후 곧바로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에 돌입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탄핵이라는 파국 대신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당론으로 추진하며 팽팽히 맞섰다.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 후 첫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사과하며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향후 정국 운영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에 따라 12월 7일 상정된 첫 번째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표결을 거부하면서 정족수 미달로 자동 폐기됐다.
그러나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정국은 12일 윤 대통령의 두 번째 대국민 담화로 다시 폭발했다. 앞선 사과와 달리 야당을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민심은 다시 끓어올랐고 여당 내부의 기류마저 급격히 얼어붙으며 정국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204명 찬성으로 가결된 탄핵안…권한대행 연쇄 교체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 돌변은 결국 여당의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당 내부에서도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12월 14일 야당이 재발의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에는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개표 결과는 재석 300명 중 찬성 204명, 반대 85명, 무효 8명. 마침내 탄핵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는 즉각 정지됐다. 국정 운영의 권한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넘어가며 권한대행 체제가 가동됐지만 대통령의 빈자리는 또 다른 충돌을 낳았다.
한 권한대행이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보류하며 심리 지연을 시도하자 분노한 야당은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마저 통과시켰다. 결국 바통을 이어받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권한대행 체제에 이르러서야 마은혁 후보자를 제외한 2명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가까스로 이뤄졌다. 국가 서열 1, 2위가 연달아 탄핵 심판대에 오르는 헌정 사상 전례 없는 지휘부 공백 사태가 현실화된 것이다.
사법부 난입 폭동과 역대 최장 111일의 헌재 장고
정치권의 극심한 혼란은 거리의 폭력으로 번지며 사회적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1월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자 극렬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건물과 집기를 부수는 폭동을 일으켰고 수십 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이 사태를 기점으로 헌법재판소 주변은 주말마다 탄핵 찬반을 외치는 인산인해의 시위로 둘러싸였다. 위기감 속에서 헌재는 신속 심리 원칙을 내세워 1~2월 사이 매주 두 차례씩 11차례의 변론기일을 여는 속도전을 폈다. 윤 대통령은 3차 변론부터 거의 매번 직접 출석해 계엄의 정당성과 임기 단축 개헌 의지를 거듭 방어했다.
2월 25일 최종 변론을 마친 헌재는 주말을 빼고 매일 평의를 열었지만 고심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특히 3월 8일 윤 대통령이 구속 취소로 석방되면서 재판관 내부의 5대 3 갈등설 등 온갖 억측이 여론의 불안을 자극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넘어 최장기 심리로 남았다.
파면이냐 직무 복귀냐…대한민국의 명운 가를 선고
이제 모든 결론은 4일 오전 11시 헌재 대심판정에서 판가름 난다. 헌법재판관 8인의 평결을 거쳐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결정문을 낭독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만일 '기각'이나 '각하' 주문이 내려지면 윤 대통령은 즉각 직무에 복귀하며 112일간 이어진 권한대행 체제도 종료된다. 반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이 낭독되면 즉시 대통령직을 상실하게 된다.
헌법에 따라 파면 시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므로 공직선거법상 수요일인 5월 28일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전례를 따른 화요일 6월 3일이 유력한 선거일로 꼽힌다. 선고 과정은 20여 분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8대 0 만장일치일 경우 사유를 먼저 설명한 뒤 주문을 마지막에 읽지만 재판관 의견이 엇갈릴 경우 한덕수 총리 탄핵심판 때처럼 주문을 가장 먼저 낭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계엄의 밤부터 이어진 123일의 숨가쁜 여정이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