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Sky Safety21〉[대한항공 제공]
1999년 4월 회장이 된 조양호는 '인명 중시의 과학적 경영'을 경영목표로 내걸었다. 전사적인 안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델타컨설팅의 안전대책을 강화한 종합안전대책을 수립하고, 심이택 사장을 중심으로 '임원안전회의(Executive Action Council)'를 설치해 부문별 추진상황을 점검했다. 안전이 회사의 미래와 직결됨을 임직원 모두 공감하도록 1999년 5월 20일 안전운항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안전결의문에 임직원 1만2000여 명이 서명했다.
조양호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기준의 시스템경영'이 가장 잘 구현된 곳이 안전분야다. "적당주의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선 운항관리는 주먹구구식이었다.
김해공항은 해무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는데 김포공항 운항담당이 김해공항 운항담당에게 연락해 "날씨 어때?" 하면 육안으로 보고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띄워!" 하는 식이었다. 김해공항 상공에서 조종사가 시정 확보가 안 되면 몇 차례 선회하다가 그래도 안개가 걷히지 않으면 김포로 회항해야 했다. 김해까지 간 조종사가 회항을 결정하는 것은 부담이 따르게 마련이다. "떴으면 내려야지, 그것도 못 내려?" 하는 비난을 받으며 조종사가 조종술을 불신당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이착륙을 시도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조양호에게 정시성보다 안전이 우선이었다.
'통계 데이터에 근거해 명확한 기준을 따랐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조양호는 "글로벌스탠더드에 준하는 안전관리시스템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공항 지점간 주먹구구로 소통하는 게 아니라 OCC에서 과학적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기상청 자료를 분석하고 시정을 수치화해 '기준'을 만들었다. 그러자 공항마다 불만이 속출했다. 결항, 연착, 출발 지연에 따른 승객들의 불만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다른 항공사들은 같은 공항 같은 시각에 이착륙 하는데 왜 대한항공만 안 되는 거냐?", "조종사들 실력이 중국 항공사들만도 못하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조양호는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 있는 것이 항공서비스"라며 "오해를 받더라도 감수하라"고 했다. 조양호에게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 가치였다. "안전에 협상은 없다"며 "절대로 물러서지 말라"고 했다. 제주 폭설 때 비행기가 뜨지 않자 참지 못한 승객들이 몰려와 지점장에게 항의할 때도 조양호는 영업손실로 이어진다 해도 '절대 안전'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는 창업주 조중훈의 '지고 이기는' 경영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초창기 종합통제센터. [대한항공 제공]
2000년 스카이팀 결성으로 대한항공은 항공서비스 품질을 업그레이드했을 뿐 아니라 안전 품질도 크게 개선했다. 선진 항공사들과 교류를 통해 직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렸는데 대한항공은 스카이팀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부심을 갖게 됐다.
조양호는 그린버그에게 안전 전반을 맡기고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린버그는 2억 달러를 들여 항공기를 현대화하고 체계적인 안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민간인 비행사를 채용하고 승무원들의 영어회화 실력을 끌어올리는 교육프로그램을 완성한 것도 그였다.
2001년 한국은 FAA로부터 '항공안전위험국'이란 예비판정을 받았다. 항공안전은 1차적으로 항공사의 책임이지만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FAA는 한 나라의 항공안전을 평가하는 잣대로 항공사를 관할하는 정부 부처의 조직과 법령 등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있었다.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항공안전에 대해서는 정부도 똑같은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조양호도 정부와 항공사 모두 항공안전의 첨병이라고 여겼다. 그린버그가 "항공안전에서 정부와 항공사는 동반자여야 한다"며 "예비판정이 한국의 '항공안전'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 밝힌 것도 그 연장선이다. 본조사를 앞두고 전직 FAA 전문가들로 구성된 항공안전 전문 컨설팅업체인 ISI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건설교통부를 자문하면서 ICAO 기준을 충족하고 항공안전 전문가를 양성해 10위권 '항공대국'에 걸맞게 할 것을 주문했다. 조양호는 "안전을 위한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안전에는 끝이 없다"고 강조했다.
FOM 개정 출판 기념. [대한항공 제공]
기술 발전에 따라 첨단 비행기들이 나오고 있어 조종훈련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그린버그는 시뮬레이터를 도입하고 조종사 훈련과 평가를 유수의 외국 훈련기관에 위탁했다. FAA 수준으로 운항규정도 강화해 실제처럼 훈련했다. 여러 국가에서 온 조종사들을 하나로 묶는 데도 노력했다. 안전 업무에 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판단한 조양호는 그린버그를 필두로 외국인 안전전문가를 계속 영입했는데 글로벌 항공업계의 안전 동향을 빠르게 파악해 안전보안 정책에 지속적으로 적용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미국 US항공에서 안전담당임원을 지낸 조지 스나이더(George H. Snyder, Jr.)를 상무로 영입한 것도 그래서였다. 미국항공사협회 안전위원회의장을 지낸 스나이더는 미국 교통안전위원회와 연방항공국 등 항공안전단체들과 교류했다. 이후 조양호는 데이비드 헌찡어(David Huntzinger), 피터 존 블레이크(Peter J. Blake) 등을 영입해 안전보안실을 맡겼고, 이어 미셸 고드로(Michel Gaudreau)가 2013년부터 7년간 대한항공의 안전보안을 책임졌다. 또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안전책임자였던 로페즈 메이어 질베르토(Lopez Meyer Gilberto)가 안전업무를 이어 받아 총괄했다.
정비사 출신 운항본부장
조종사 평가를 외부에 맡기니 그간 정실인사 관행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조양호는 이참에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겠다 작정했다. 조양호는 보잉에 기상 체크, 승무원 훈련, 시뮬레이션, 모의비행훈련 전반을 맡겼다. 보잉 안전전문가들이 대한항공을 타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정밀하게 들여다보게 했다. 조종사들이 후배 조종사들을 훈련하고 심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춘 것이다. 공군 출신이 대부분이었는데 선후배 사이라고 봐줄 수 없게 됐다.
괌사고에서도 군 출신 조종사들간 역학관계가 작용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비사 출신인 이광사를 운항본부장으로 보낸 것만으로도 조양호가 안전을 위해 관행을 깨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조종사, 특히 공군 출신이 운항본부장을 맡는 것이 관례여서 반발이 적지 않았다. 조양호는 이광사에게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 내부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공군은 대한항공이 원하는 조종사가 아니라 인원만 채워 일방적으로 보냈다. 대한항공이 스크리닝하겠다고 해도 공군에서 협조가 되지 않았다. "전역했는데 불합격하면 어떻게 먹고사느냐?"며 공군 선배인 운항본부장이 인정에 이끌려 합격시키는 식이었다. 운항본부장이 전결하던 채용을 인사부로 이관했지만 인사부도 인력수급이 우선인지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양호는 이런 문화가 합리적인 판단을 막고 급기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개혁이 시작됐다. 조양호는 "운항본부장이 인사부로부터 전결권을 가져와 책임인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사관학교 기수, 근무지 인연 등을 배제하고 조종능력에서 인성까지 자질을 정밀 심사해 조종사를 선발하게 됐다.
델타컨설팅에 따라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혁신을 추진했다. 1998년 국제민간항공기구부속서(ICAO ANNEX)에서 정한 국제표준 및 선진 항공국 운영 기준을 도입해 운항 부문의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제도와 절차, 인력 운영 제도 등을 개선했다. 같은 해 운항조직도 2BU(Business Unit) 10팀에서 5BU 15팀으로 확대 재편해 전문성을 추구했다. 국제표준의 운항기준 운영과 기술지원을 위해 운항표준BU와 기술지원BU를 신설하고 BU장부터 실무자까지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했다.
1999년 '노사화합을 통한 안전운항' 결의대회. [대한항공 제공]
조종사 교육과 훈련 체계도 개선했다. 1999년 6월 세계 최고 조종사훈련기관인 미국 FSB(국제항공안전보잉훈련국)에 조종사 훈련과 평가를 위탁했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공동 제작한 프로그램에 따라 FSB가 조종사 시뮬레이터 훈련과 심사를 담당했다. FSB 교관과 검열관이 운항훈련원에 상주하며 조종인력과 자체 검열관을 양성했다.
운항승무원 채용과 양성을 출신에 관계없이 일원화하고 기장 승격 기준을 비행 3500시간에서 4000시간으로, 부기장 임명 후 5년, 착륙 횟수 350회 이상, 기장시험 합격자로 요건을 강화했다. '기장은 소형기와 대형기를 두루 경험한 후 승격한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기장 승진 연한을 늘리자 부기장 기간이 길어진 조종사들의 반발이 극심했지만 조양호는 안전을 위해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1999년 10월에는 편조 형태에 따른 승무시간, 비행근무 제한 시간을 규정하고 국제 기준의 피로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비행시간에 비례하는 최소 휴식시간을 신설했다. 운항규정을 전면 개편하고 FOM(비행운영교범), POM(조종사운영매뉴얼), PQS(조종사자격기준), FTPM(비행훈련정책매뉴얼), LCPM(검열운항승무원 지침서), FIG(비행강사지침서) 6개 매뉴얼을 신설해 운항 절차와 기준 표준화는 물론, 합리적 검열로 우수 조종사를 확보할 수 있었고 정보의 공유와 접근이 용이해졌다. 비상상황에서 대처할 조종실자원관리(CRM)와 LOFT(라인지향비행훈련) 교육과정도 강화했다.
공군 출신만으로 조종사 확충이 어렵다고 내다본 조양호는 일반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2003년 한국항공대 비행훈련원에 이관했다. 항공대 APP(Airline Pilot Program)를 통해 연간 60여 명의 조종사를 배출하는데 미국 명문 비행학교 FSA의 실무교육도 받을 수 있다. APP를 수료하면 1000시간 비행을 채울 수 있어 항공사 지원이 가능하다.
1999년 대한항공-FSB 조종사 훈련 위탁 계약. [대한항공 제공]
低비용항공의 高안전운항
조양호는 진에어에도 대한항공과 똑같은 안전기준을 적용했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국내 저비용항공사들과 비교해 보면 이상적인 수준이었다. 조종사 지원 가능 비행시간을 대한항공과 똑같이 1000시간 이상으로 한 저비용항공사는 진에어뿐이었다. 대부분 200시간 이상이면 충분했고 까다롭다고 해도 250시간 이상이면 가능했다.
일반 항공사 조종사보다 급여 수준이 낮은데 지원 요건은 일반 항공사 수준에 맞추다 보니 진에어에 지원할 수 있는 조종사는 그만큼 줄어들어 인사팀의 애로가 컸지만 조양호는 '1000시간' 기준을 끝까지 고수했다. 심지어 대한항공이 대학의 위탁을 받아 양성한 조종사들마저 진에어의 지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경쟁사에 뺏기고 있었다. 김재건 당시 진에어 대표가 "조종사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읍소해도 조양호는 "저비용항공사라고 저안전항공사로 만들 거냐?"며 일축했다. 안전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도 없다는 원칙을 지킨 것이다.
'안전항공사'로 거듭나다
조양호는 괌사고 이후 안전운항을 위해 20년 동안 1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 2008년엔 안전관리시스템(SMS)을 구축하고 2009년엔 안전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세이프넷'을 개발해 도입했다. 대한항공이 '안전항공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것은 안전시스템 구축을 위한 회사 차원의 투자와 시스템 구축이 외국인 임원의 노하우와 맞물려 시너지를 냈기 때문이다. 2001년 11월 미 국방부는 대한항공을 '안전 적격 항공사'로 지정하고 직원 출장 때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도록 권고하던 조치를 해제했다. FAA가 한국을 항공안전 '2등급' 국가로 판정한 상황에서 인정한 것이어서 의미가 컸다.
대한항공 조종사 승급식. [대한항공 제공]
대한항공은 민간항공수송평가위원회에 안전운항 개선 프로그램을 제시했고, 미 국방부 실태조사팀이 대한항공을 방문해 조종사 근무 규정 등 조종사 관리 실태와 훈련 및 평가에 대한 해외위탁, 조종실 문화 등을 확인했다. 첨단 안전장비 장착 실태와 비행자료분석 시스템, 안전경보시스템 등을 정밀 점검하고 완벽하게 개선된 것을 확인했다. 2000년 3월 캐나다 교통부도 대한항공을 방문해 안전점검을 하고 '이상 없음'을 확인했다.
대한항공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빠르게 회복했다. 절대 안전운항이 항공사 경영의 기본 명제며 사회적 책무임을 통감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온 결실이었다. 델타항공과 에어프랑스도 2002년 4월 코드쉐어(공동운항편)를 복원했다. 코드쉐어 복원으로 대한항공의 이미지가 향상된 것이 아니다. 대한항공이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했기에 코드쉐어가 복원된 것이었다. 대한항공은 2005년 국내 항공사 최초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IOSA(IATA Operation Safety Audit) 인증 항공사가 됐다.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언론들도 "대한항공이 꾸준한 노력으로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양호는 '한 번 더 사고 나면 죽는다'는 각오로 안전운항에 사활을 걸었다. 조양호의 '안전혁신'으로 대한항공은 1999년 8509편 화물기 추락사고를 마지막으로 2000년 이후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무결점' 지향으로 현재 보험료가 가장 낮은 항공사가 됐다. 괌사고는 대한항공 반세기 역사에서 가장 아픈 사건이자 회사의 안전관리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조양호는 그 후로 안전의식이 흔들릴 때마다 괌사고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