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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한국 독립운동과 불교' 특별전…일제에 맞선 잿빛 승복의 독립투사들
  • 정해든 기자
  • 등록 2025-04-21 09:29:12
  • 수정 2026-03-13 09: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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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만해·백용성부터 백초월·김성숙까지 호국 영웅 조명
  • - 산사 벗어나 세간으로… 중생 구제가 곧 조국 독립

3·1독립선언서(불교계에서는 백용성과 한용운이 민족대표로 참여했다. 독립기념관 제공) 

깊은 산사, 바람결에 풍경소리만 맴돌던 평화로운 도량에서 승려들이 바랑을 메고 산문을 나섰다. 부처의 가르침은 본디 세속을 떠나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 했으나, 조국의 주권이 짓밟힌 참담한 현실 앞에서 이들은 고통받는 민중이야말로 진정 구제해야 할 '중생(衆生)'임을 깨달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잿빛 승복을 피와 땀으로 물들였던 불교계의 헌신을 되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독립기념관은 4월 22일부터 5월 18일까지 '한국 독립운동과 불교' 특별기획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종교 활동을 넘어, 일제강점기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이 되고자 했던 불교인들의 다각적인 항일 투쟁사를 생생하게 조명한다.



일제의 종교 탄압에 맞선 '조선 불교'의 뼈아픈 자각


일제는 무단통치 시절부터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교묘한 종교 정책을 펼쳤다. '사찰령'을 내려 조선 불교를 총독부의 발아래 통제하려 했고 일본 불교를 유입시켜 전통 불교의 뿌리를 뽑으려 했다. 이번 전시의 1부 '일제의 종교 탄압에 맞서다'는 바로 이 참담한 위기 속에서 싹튼 불교계의 뼈아픈 자각을 다룬다.


백용성과 한용운 같은 선각자들은 전통 불교를 지키는 것이 곧 민족의 혼을 지키는 것임을 꿰뚫어 보았다. 백용성 스님은 일본 불교화에 맞서 '대각교 운동'을 전개하며 한국 불교 전통의 선맥을 지켜냈고, 한문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삼장역회를 설립해 불교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는 단순히 종교 개혁이 아니라, 정법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 조선 민족을 구제하려는 거대한 ‘독립운동’의 밑거름이었다.


전시 2부 '민중과 함께 일제에 저항하다'는 1919년 3·1운동과 그 중심에 섰던 불교계의 활약을 그린다. 만해 한용운과 백용성은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로 참여해 독립선언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불교계의 저항은 소수 지도자들의 서명에만 그치지 않았다.


제주 법정사의 항일무장 투쟁에서 볼 수 있듯, 민중과 호흡하며 최일선에서 일제와 맞선 승려들이 전국 곳곳에 있었다. 한용운 스님은 불교의 본질이 “진흙탕에 들어가 중생을 구하는 것(입니입수·入泥入水)”이라 설파했다. 모든 중생이 평등하다는 불교의 '평등주의'는 곧 제국주의의 억압을 부정하는 사상적 무기였고, 세상을 구원한다는 '구세주의'는 산사를 벗어나 조국 해방의 전장으로 뛰어들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사찰을 넘어선 사투, 비밀결사부터 무장투쟁까지


만해와 백용성 스님이 대중의 사상적 각성을 이끌었다면, 음지에서 맹렬한 실력 행사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전시 3부 ‘사찰을 넘어 독립운동에 헌신하다’는 국내외를 오가며 무장투쟁과 비밀결사를 주도했던 숨은 영웅들을 비춘다. 그 중심에 백초월 스님이 있다.


백초월 스님은 3·1운동 직후 한용운 등이 투옥되며 불교계 지도부에 공백이 생기자, 그 빈자리를 채우며 불교계 독립운동의 총사령관 역할을 자처했다. 중앙학림에 전국불교도 독립운동본부를 조직하고 전국 주요 사찰에서 거둬들인 군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에게 은밀히 전달했다.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서도 주저 없이 항일 비밀결사를 이끌었던 그의 삶은, 타협을 모르는 가장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투쟁 그 자체였다.


불교계의 항일투쟁은 세대를 넘어 진화하며 더욱 다층적인 면모를 띠었다. 신식 교육을 받고 봉선사에서 불교에 입문한 청년 승려 김성숙의 행보는 기존의 지도자들과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3·1운동 옥고를 치른 뒤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조선의용대 창설에 기여하고 의열단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맹활약했다.


특히 그는 조국 해방이라는 지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이념의 벽을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다수의 사회주의 단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무정부주의 운동까지 포용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좌편향적이라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의 본령은 언제나 '민족혁명'과 봉선사에서 수학하며 뿌리내린 '호국불교'의 정신에 맞닿아 있었다. 그에게 이념은 조국을 되찾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궁극적인 목적은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이라는 불교적 중생 구제의 실천이었다.



66점의 유물로 만나는 뜨거운 호국의 숨결과 시대정신


독립기념관은 이처럼 다채롭고 치열했던 불교계의 독립운동사를 66점의 귀중한 유물로 풀어낸다. 회고록, 수기, 일제 재판 기록 등에는 변절과 좌절이 난무하던 시대 속에서도 초지일관 독립을 갈망했던 승려들의 매서운 기개와 생생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관람객들이 당시의 시대정신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참여형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준비했다. 불교계 독립운동가들이 읽었던 서책을 직접 읽어보고, 그들의 숭고한 사상이 담긴 문구로 책갈피를 만드는 체험은 역사를 단순한 과거가 아닌 현재의 울림으로 다가오게 한다.


독립기념관은 "이번 전시가 불교계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종교인의 헌신이 오늘날의 자유와 평화로 이어졌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에서 조국을 구하는 독립투사로 기꺼이 험로를 걸었던 불교인들. 그들의 거룩한 헌신을 기리는 이번 전시는 하반기에 예정된 민족종교(10월)와 기독교(12월) 전시로 이어지며 종교계의 항일 발자취를 완성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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