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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곤 교수의 과학·교육·기술·현장] 대한민국 디지털 헬스케어의 길을 묻다
  • 이선곤 교수
  • 등록 2025-05-20 00:00:01
  • 수정 2025-05-22 13: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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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헬스케어의 새로운 패러다임(6회)
  • - 기술은 수단이다, 중심은 언제나 인간이어야 한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환자의 표정 뒤에 숨은 불안을 읽고 "괜찮습니다"는 말 속의 두려움을 감지하는 것은 인간의 직관과 공감이다. 기계는 정확할 수 있지만 따듯하지 않다. 기술은 의사의 판단을 돕는 도구일 뿐, 인간의 삶을 대체할 수 없다. 기술이 결코 만능이 아니다. AI 진단 시스템, 원격 의료 플랫폼, 건강관리 앱이 늘어나고 있지만 기술만으로는 환자와의 '신뢰'를 형성할 수 없다. 기술이 의료에 도입될수록 인간 중심의 철학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기술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그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고령자, 농어촌 주민,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이들에게 퍼스널 헬스케어 기술은 '의료 혜택'이 아니라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격차는 단순한 기술 숙련도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 접근성, 건강 정보 이해력, 사회적 지원체계 등 복합적 구조에서 비롯되는 불평등이다. 기술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혁신이 아니라 배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기술이 사람을 중심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통 언어와 기준, 즉 표준화가 필요하다. 국제표준기구 ISO와 HL7, IEEE 등은 AI 진단 시스템, 원격 진료, 건강정보 교환에 대한 국제적 표준을 수립하고 있으며 디지털 건강관리 산업의 신뢰성과 상호 운용성을 보장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대, HL7의 FHIR(Fast Healthcare Interoperability Resources)는 병원 간, 국가 간 의료정보를 안전하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공통 프레임워크로퍼스널 헬스케어의 글로벌 확장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된다. 표준화는 단지 기술적 호환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인간 중심 의료를 제도화하는 윤리적 장치이기도 하다. 기술은 언제든 발전할 수 있지만 신뢰와 공공성은 표준이라는 시스템 위에서만 자란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와 의료 인력을 보유했음에도 퍼스널 헬스케어 분야는 '제도', '표준', '공공 인프라' 등에서 준비가 매우 미비하다.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은 여전히 AI 의료기기를 기존 의료기기법 내에서 다루고 있으며 SaMD(Software as a Medical Device) 등 국제적 분류 체계와의 정합성도 떨어진다. 미국 FDA나 유럽 MDR 수준의 독립적이고 유연한 규제 체계 수립이 필요하다. AI는 고정된 기능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비정형' 기술이다. 따라서 FDA처럼 AI 의료기기를 소프트웨어형 의료기기(SaMD)로 별도 분류하고, 사전 승인을 통해 관리하되 업데이트 가능성을 반영한 유연한 사후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이 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환자는 AI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설명을 들을 권리조차 갖지 못한 채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기술 신뢰의 첫걸음은 설명 가능성과 인증에서 시작된다.


둘째, 헬스케어 데이터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 및 활용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다. 유럽연합의 GDPR처럼 데이터 소유권을 환자에게 귀속시키고, AI 판단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수 있는 설명 가능성 원칙을 법제화해야 한다. 데이터가 플랫폼 기업이나 병원의 서버에 저장되고 사용자는 자신의 데이터에 접근조차 못 하는 구조는 명백한 데이터 주권 침해다. EU는 GDPR을 통해 환자에게 데이터 열람·수정·삭제·이전의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며, AI 결정에 대한 '설명을 들을 권리(Right to Explanation)'까지 법제화했다. 한국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통해 건강정보에 특화된 데이터주권 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셋째, 현재 민간 병원과 기업에 분산된 의료 데이터를 통합하고 공공 인프라화 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유럽이 추진하는 EHDS(European Health Data Space)처럼 한국도 신뢰 기반 공공 건강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연구, 정책, 치료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의료 데이터는 병원, 보험사 등 다양한 주체에 분산돼 있다. 이에 따라 동일 환자의 진료 정보조차 통합 분석이 어려운 실정이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정밀 의료'를 지향한다면 데이터의 통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가 주도 건강 데이터 플랫폼(Korean Health Data Platform)을 구축해야 한다. 이 플랫폼은 공공성을 갖추되 민간과 유연하게 연계해 연구·정책·산업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 중심의 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야 한다. EHDS(European Health Data Space)와 같은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할 시점이다.


넷째, 고령층·저소득층·장애인 등 정보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헬스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기술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AI·원격의료·건강 앱 등이 고도화될수록 그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본 역량(Literacy)이 의료 접근성의 새로운 기준이 된다. 이들 정보 취약 계층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몰라 병원 진입부터 막히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전국 보건소,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디지털 헬스 리터러시 교육을 제도화하고 사회복지사, 간호사, 헬스코치 등과 연계된 현장형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포용적 기술사회'다.


의료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존엄과 윤리, 사회적 신뢰는 더 중요해진다. 기술이 중심이 되는 순간 의료는 감정 없는 분석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의료는 기계가 치료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체계에 기술이 더해지는 구조여야 한다. 기술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 그 철학을 구현하는 도구가 바로 표준화며 그 철학을 실현하는 공간이 바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디지털 헬스케어의 미래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기술이라는 날카로운 도구를 손에 쥐고 있다. 그 도구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는 제도와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 그런 맥락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기술이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국가가 나서야 한다. 단순한 기술 개발 지원이 아닌 '사람 중심, 데이터 윤리 기반, 표준화된 신뢰 생태계 구축'과 같은 실천이 대한민국이 디지털 헬스케어 선도국으로 가는 최적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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