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생태계 구축 기업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 시장이 어렵다지만, 진짜 친구는 위기 때 손을 잡는 법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거물 메르세데스-벤츠가 LG에너지솔루션과 다시 한번 손을 맞잡았다.
LG엔솔이 벤츠 계열사와 2조601억 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지난해 LG엔솔 매출의 약 8%나 되는 규모다.
계약 기간은 2028년 3월부터 2035년 6월까지, 무려 7년 3개월이다. 이를 전기차 심장부 북미와 유럽에 공급한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배터리 업계가 숨 고르기에 들어간 지금, LG와 벤츠의 시계는 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벤츠 회장이 서울 온 이유가 'LG와 함께 자동차 세계 기준 만들기?'
이번 계약은 우연이 아니다. 양사 간 신뢰가 단단해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징후는 지난달 서울에서 포착됐다.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은 지난달, 2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가 가장 먼저 챙긴 일정 중 하나가 바로 LG그룹 경영진과의 만남이었다.
칼레니우스 회장은 권봉석 LG 부회장,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 등을 만나 미래차 협업을 논의했다.
당시 칼레니우스 회장은 "LG와는 혁신과 품질, 지속가능성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의 기준을 세울 차량을 함께 만들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LG에너지솔루션 미시간 홀랜드 공장 전경
프리미엄 넘어 '국민 벤츠'까지, 전 차종 포트폴리오 완성
이번 계약이 더욱 흥미로운 점은 공급될 배터리의 '정체'다. LG엔솔은 지난해와 올해 벤츠와 3차례 대규모 계약을 맺으며 약 150GWh 물량을 확보했다.
이전 계약들이 주로 고성능 전기차에 들어가는 '원통형 46시리즈' 배터리였다면, 이번 계약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번엔 벤츠의 '중저가형 전기차 모델'에 탑재될 가능성을 높다는 것이다. 벤츠는 2027년까지 신차 40종을 쏟아낼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실현하려면 S클래스급 최고급 모델뿐 아니라, 엔트리급 모델이 필수적이다.
LG엔솔은 하이엔드용 '원통형 46시리즈'부터 보급형을 위한 '고전압 미드니켈(Mid-Ni) 파우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까지 풀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이번 계약은 LG가 프리미엄 시장을 넘어 보급형 시장에서도 벤츠의 핵심 파트너로 낙점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번 수주는 유럽 시장에서 'K-배터리'의 자존심을 세울 반전 카드로도 평가받는다. 그동안 유럽 시장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운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공세가 거셌다. LG엔솔이 유럽의 자존심인 벤츠와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시장 판도를 다시 흔들 기회를 잡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구체적인 차종은 고객사와 협의한 것이 있어 밝힐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번 계약이 갖는 무게감을 가볍지 않다. 한국 배터리가 '가격'이 아닌 '가치'로 글로벌 시장을 다시 장악할 수 있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