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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수행자의 노래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6-02-28 22:32:57
  • 수정 2026-02-28 22: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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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를 높여놓고 설거지를 한다

세제 향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설거지에는 설거지의 도가 있어

먼저 더운물에 그릇을 불리고

거품을 일으켜 애벌 씻은 다음

부드럽게 헹구고 물을 찌워

마른 행주로 닦아 말리면 뽀송해진 그릇들이 좋아한다

어느 과정 하나 소홀하면 안 되고

깊고 얕고 넓고 좁고 그릇에겐 그릇의 품성이 있어

마땅히 예로써 존중해야 한다

아내는 내가 설거지를 해놓으면 좋아한다

어떤 때는 그릇에 얼룩이 그냥 있다거나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고 해도

그러한 지적으로 나의 공부는 나날이 깊어간다

애들이 식기세척기를 사준다 해도

기계는 일은 알지만 살림의 도리를 모르고

마지막으로 행주를 짜 널고

바라보는 재계(齋戒)의 기쁨을 모른다

어떤 날은 이 일 말고 하는 일이 없기도 하지만

그릇을 닦는 일은 세상을 닦는 일이고

나의 경계는 나날이 높아간다  


-이상국 시인의 시 '수행자의 노래' 전문



이상국 시인의 신간 시집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에 실린 시다.


불교에서는 바닥을 쓸고, 물을 긷고, 밥을 짓고, 그릇을 닦는 등을 깨달음의 과정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화자도 그 과정의 일부를 "수행"한다.


식사를 준비하든, 설거지를 하든 음악을 틀어놓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일'이 아니라 "수행"으로 변환된다. "수행"은 도(道)를 닦는 것이고, '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존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이것은 노자의 '도가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노자에게 '도'란 거창한 진리가 아니고 물 흐르듯 사물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자연스러운 행위라 말할 수 있다.


화자는 "설거지"라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고 관계를 새롭게 배운다. 그릇에게도 사람처럼 "깊고 얕고 넓고 좁은" 그릇의 품성이 있어 각기 다름을 인정하고, "마땅히 예로써 존중해야"한다. 그릇을 존중하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고, 바로 그 세계에 속한 자신을 존중하는 일이다.


만약 기계를 사용하면 이런 그릇과의, 아내와의 관계를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릇 닦는 일이 곧 세상을 닦는 일이고, 자신의 경계를 높이는 일이 된다.


시인은 깨달음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다고, 누군가를 위한 작은 '실천'이 곧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읽다보면 내면이 참 맑아지는 시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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