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세일'을 장착한 HMM의 5만톤급 중형 유조선(MR탱커) '오리엔탈 아쿠아마린'호
5일, HMM의 5만 톤급 중형 유조선(MR탱커) '오리엔탈 아쿠아마린(Oriental Aquamarine)'호가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출항했다.
엔진 소음이 가득했던 갑판 위로 높이 30m, 폭 10m의 하얀 구조물이 솟아올랐다. 바람의 힘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풍력보조추진장치 '윙세일(Wing Sail)'이다. 대항해시대를 호령했던 범선이 최첨단 기술을 입고 21세기 바다로 귀환한 것이다.
연료가 곧 비용, 바람이 해답이다
HMM이 윙세일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강화되는 글로벌 환경 규제와 치솟는 연료비라는 이중고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집약도(CII) 규제와 EU의 배출권거래제(ETS)는 해운사들에게 '탄소와의 전쟁'을 강요하고 있다.
2025년 시행된 'FuelEU Maritime' 규정은 온실가스 집약도가 높은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에 벌금을 부과한다. 이제 탄소 배출은 곧장 비용 청구서로 돌아온다.
윙세일은 항공기 날개와 유사한 공기역학적 구조로 설계됐다. 바람을 받아 양력을 발생시켜 선박의 추진을 돕는 것이다.
윙세일을 단 배는 운항 조건에 따라 연료 소모량을 5~20%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 HMM의 설명이다. 연료를 덜 쓰면 탄소 배출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바람이 돈이고 경쟁력이다.
HMM이 국내 해운업계 최초로 풍력보조추진장치 '윙세일'을 도입하며 친환경 선박 전환에 속도를 낸다.
'Made in Korea'로 완성한 친환경 항해
오리엔탈 아쿠아마린호에는 HD한국조선해양이 개발한 '하이윙(Hi-WING)'이 장착됐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5년 6월 시제품 개발에 성공하고 창원에서 육상 실증을 마쳤다.
조선사와 해운사가 손을 잡은 '팀 코리아'의 합작품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하드웨어와 제어 기술을 제공하고 HMM은 실제 운항 데이터를 통해 기술의 유효성을 검증한다.
'하이윙'은 기존 원통형 로터세일(Rotor Sail)과 달리 날개 형상을 띠고 있다. 악천후나 항구 접안 시에는 '틸팅(Tilting, 날개를 접는)' 기능이 있어 안전성까지 확보했다.
HMM은 "컨테이너선대에 이어 벌크선대에도 효과적인 친환경 설비를 갖추게 됐다. 선대의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성장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HMM
세계는 '바람의 전쟁' 중…영국 윈드윙·스웨덴 오션버
바다 위 '탄소 제로' 경쟁은 뜨겁다. 세계적 곡물 기업 카길(Cargill)은 2023년 미쓰비시 상사 소유의 벌크선 '픽시스 오션(Pyxis Ocean)'호에 영국 바(BAR)테크놀로지스가 개발한 37.5m 높이의 '윈드윙' 2개를 달고 시험 운항에 나섰다.
스웨덴의 '오션버드(Oceanbird)' 역시 최대 80m 높이의 윙세일을 자동차 운반선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선사들이 앞다퉈 윙세일을 도입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메탄올이나 암모니아 같은 차세대 친환경 연료가 완전히 상용화되기 전까지 풍력은 가장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탄소 감축 수단이기 때문이다.
HMM은 향후 2년간 축적될 실운항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제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윙세일 도입을 벌크선대 전체로 확대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바람을 이용해 바다를 건너던 인류의 오래된 지혜가 첨단 기술과 만나 다시 한번 해운업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2026년 HMM의 윙세일이 일으킬 '바람'이 대한민국 해운업을 어디로 이끌지 주목된다.